단순한 축구 경기가 아니다. 국가의 자존심이 걸린 전쟁이다.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온 관심은 11일 오전 4시 카타르 알바이트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2022 카타르 월드컵 8강전에 쏠려있다. 중세 말 116년(1337~1453년)에 걸쳐 전쟁을 벌였던 두 나라는 서로에게 지는 걸 무엇보다 싫어한다. 특히 축구라면 더욱 그러하다.

◇”사자 먹을 시간” VS “음바페 뒷주머니로”

신경전은 이미 시작됐다. 프랑스 신문 레퀴프는 지난 5일 폴란드와의 16강전 승리 후 킬리안 음바페(24·파리 생제르맹)의 사진과 함께 “신이시여, ‘우리들의’ 왕을 지켜 주소서”라는 제목의 기사를 1면에 냈다. 영국 국가인 “신이시여, 왕을 지켜 주소서”에서 따온 제목으로, 8강 상대 잉글랜드에 대한 경쟁심을 드러낸 것이다. “사자를 먹을 시간이다”라는 노골적인 제목을 단 프랑스 매체도 있었다. 사자는 잉글랜드 대표팀의 상징이다.

영국 매체들도 뒤지지 않는다. 영국 더선은 음바페가 청바지 뒷주머니에 갇혀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는 사진을 올리며 “카일 워커는 8강전에서 음바페를 주머니에 가두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잉글랜드의 오른쪽 수비를 보는 워커(32·맨체스터 시티)는 주로 왼쪽에서 뛰는 음바페와 정면충돌할 예정이다. 음바페 등 프랑스 선수들이 우스꽝스럽게 웃고 있는 사진들만 골라 보도한 영국 매체도 있다.

“음바페를 주머니 속으로” 잉글랜드의 조롱 - 프랑스 공격수 킬리안 음바페가 청바지 뒷주머니에 갇혀 고개만 내민 듯한 모습. 영국 더선이 9일 기사와 함께 실었다. /더선

팬들도 열띤 응원전을 펼친다. 카타르에서 월드컵 경기들을 관람하던 잉글랜드 팬들은 프랑스와의 대결이 성사되자 항공편을 곧바로 미뤘고, 영국에 체류하는 프랑스인 수백여 명은 런던의 주점을 미리 ‘점령’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양국 경찰 당국은 경기 후 발생할 수 있는 소음·소동에 예의 주시하고 있다. 현지에선 11일 경기를 두고 대규모 도박이 이뤄질 것을 우려해 중독을 경고하는 기사도 속속 나오고 있다.

◇월드컵 외나무다리 대결은 처음

이번 대결은 모처럼 성사된 ‘진검 승부’다. 앙숙인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가장 최근 맞대결은 5년 전인 2017년 친선경기(3대2 프랑스 승)였다. 월드컵 맞대결은 그보다 한참 전이다. 두 나라는 월드컵에서 2차례(1966·1982) 만났는데 모두 조별리그 경기였다. 둘 다 잉글랜드가 이겼다. 월드컵 토너먼트에서 외나무다리 대결을 벌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객관적인 전력은 프랑스가 우세하다는 평이다. 역대 전적은 17승 5무 9패로 잉글랜드가 앞서지만 대부분 1990년대 이전에 거둔 승리들이다. 2000년 이후 전적은 프랑스가 4승 2무 1패로 크게 앞선다. 프랑스는 1998 자국 대회 우승 이후 2000년 유럽 선수권에서 다시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기세를 이어갔다. 비록 2002 한일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으로 ‘직전 대회 우승국은 다음 대회서 부진하다’는 징크스를 만든 당사자가 됐지만, 2018 러시아 월드컵 우승 후 이번 대회에서 순항하며 2회 연속 월드컵 우승을 노린다. 그 중심엔 4경기 5골로 월드컵 득점 선두를 달리는 음바페가 있다. 노장 올리비에 지루(36·AC밀란)도 이번 대회에서 혼을 불사른다.

하지만 잉글랜드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다. 잉글랜드 선수단 몸값은 12억6000만유로(약 1조7340억원)로 세계 1위다. 젊으면서도 능력 좋은 선수가 많다는 의미다. 잉글랜드는 16강까지 4경기 12골을 퍼붓는 강력한 화력을 선보였는데, 주드 벨링엄(19·도르트문트), 부카요 사카(21·아스널), 필 포든(22·맨체스터 시티) 등 어린 선수들이 고루 득점포를 가동했다. 4경기에서 2실점에 그칠 만큼 수비도 견고하다. 잉글랜드는 1966 자국 대회 월드컵 이후 매번 미끄러지며 종가(宗家)의 자존심을 구겼다. 2018 러시아 대회에서 4강에 올랐으나 크로아티아와 연장 승부를 벌인 끝에 졌다. 2020년 유럽 선수권에서는 준우승에 그쳤다.

잉글랜드의 워커는 “음바페한테 골 넣으라고 레드카펫을 깔아 줄 생각은 추호도 없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임하겠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주장 위고 요리스(36·토트넘)도 “큰 전투가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