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파울루 벤투 감독과 2002년 거스 히딩크 감독./뉴시스·조선일보DB

2022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을 이끈 파울루 벤투(53) 대표팀 감독. 그는 한국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원정 16강을 이끈 외국인 감독이다. 2018년 7월 사령탑에 올라 본인만의 뚜렷한 축구 철학을 보여준 벤투 감독은 선수들 사이에서 신망이 두텁다. 벤투 감독의 모습에서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끌었던 또 다른 외국인 감독, 거스 히딩크(76)가 보인다는 이야기가 많다.

◇새로운 전술 제시

벤투 감독이 한국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들고 온 전술은 ‘빌드업 축구’다. 수비진에서부터 뚜렷한 목표를 가진 패스로 전진하는 방식이다. 문전으로 공을 멀리 보내 승부를 거는 기존의 한국과는 달랐다. 상대가 강할수록 더 높은 완성도가 요구되기 때문에 월드컵에서는 상대적인 약팀인 한국이 수비 위주로 임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했지만, 벤투 감독은 결국 대표팀의 체질을 바꿔 16강 진출을 일궈냈다.

2001년 1월 부임한 히딩크 감독은 18개월 동안 ‘압박 축구’를 한국에 이식했다. 수비는 수비수만 하는 것이라는 기존의 인식을 깨고 위치와 상관없이 공을 가진 상대 선수를 포위하는 전술로 한국을 4강으로 이끌었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파울루 벤투 감독이 11월 29일(현지시간) 오후 카타르 도하 알 에글라 트레이닝센터에서 선수들 훈련을 지켜보고 있다./뉴시스

◇스타 길들이기

올해 여름부터 벤투 감독은 ‘왜 이강인을 쓰지 않느냐’는 원성을 여러 곳에서 들었다. 스페인에서 뛰는 이강인(21·마요르카)이 소속 팀에서 매 경기 좋은 경기력을 선보이던 때였다. 결국 벤투 감독은 지난 9월 평가전 때 1년 6개월 만에 이강인을 소집했지만, 경기에는 내보내지 않았다. 그렇게 월드컵과 멀어지는 줄 알았던 이강인이 최종 명단에 깜짝 발탁됐다. 그리고 첫 경기였던 우루과이전에서 교체 출장하며 활약했고, 두 번째 가나전 때는 후반에 그라운드로 들어오자마자 조규성의 골을 도왔다. 포르투갈과의 3차전은 선발 출장하며 16강 진출에 크게 기여했다.

과거 히딩크 감독, 안정환과 닮은 점이 많다. 히딩크 감독은 2002 월드컵이 열리기 넉 달 전인 스페인 전지훈련에 나서면서 안정환을 부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4일 뒤에 다시 소집하고 나서도 말을 걸지 않는 등 안정환이 월드컵에 나설 것이라는 확신을 주지 않았다. 간절함을 얻은 안정환은 이탈리아와의 16강전 연장 후반에 2대1로 앞서는 역전골을 넣으며 활약했다. 훗날 히딩크 감독은 “당시 안정환은 과하게 아름다웠다. 몇 가지 과정을 거쳐야만 재능을 발휘할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2002년 6월 7일 한국의 히딩크 감독이 선수들과 경주 시민운동장에서 훈련으로 땀을 흘리고 있다./조선일보 DB

대회 중 선수단의 힘을 북돋는 방법도 비슷하다. 벤투 감독은 지난달 25일 열린 브라질-세르비아전에 코치 2명을 보냈다고 공개적으로 알렸다. 이에 선수들은 16강 진출을 확신하는 감독을 보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히딩크 감독도 16강 이탈리아전 전날 8강에 올라올 스페인과 아일랜드의 맞대결을 직접 보면서 비슷한 메시지를 선수단에 준 바 있다.

◇다른 점도 확실한 둘

둘에게도 차이는 있다. 벤투 감독은 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서서히 대표팀 문화를 바꾼 반면, 히딩크 감독은 1년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족집게 과외’를 통해 대회에 임했다.

발탁한 선수도 달랐다. 벤투 감독은 손흥민, 김민재 같은 이미 대표팀의 중심이었던 선수를 주로 쓰는 등 깜짝 발탁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은 알려지지 않았던 최진철, 김남일 등을 주전으로 기용했고, 그전까지 부동의 주전 스트라이커였던 이동국과는 함께하지 않았다. 경기 운영 방식에서도 보수적인 벤투 감독과 임기응변에 능한 히딩크 감독은 다르다.

히딩크 감독은 지난 5월 “지금 대표팀이 우리보다 좋은 성적을 내기를 빈다”며 “결승에 못 가더라도 세계가 보고 싶어 하는 축구를 펼치기를 바란다”고 응원을 보냈다. 벤투 감독은 오는 6일 브라질과의 16강전을 지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