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퍼트를 마친 쩡야니(36·대만)는 울고 있었다. 기자회견 때도 북받치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탓에 자꾸 말이 끊어졌다. ‘무적(無敵)’으로 군림하던 20대 시절, 이유도 모른 채 골프가 망가져 끝없이 추락했던 시간과 재기를 위해 쏟아부은 10여 년의 노력이 동시에 떠오른 것 같았다. “매일 ‘다시 시상대에 설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지난 10년은 꼭 엊그제 날씨처럼 어둡고 험했어요. 그러다 마침내 햇살이 비치네요.”
쩡야니가 끔찍했던 입스(yips·알 수 없는 이유로 익숙한 동작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현상)를 이겨내고 12년 만에 다시 우승컵을 들었다. 그는 26일 대만 타오위안의 선라이즈CC에서 끝난 LET(유럽 여자골프투어) ‘위스트론 여자 오픈’에서 14언더파로 우승했다. 쩡야니가 마지막으로 우승한 건 2014년 1월 TLPGA(대만프로골프) 투어 ‘타이펑 오픈’으로 무려 11년 9개월 전이다. 애초 4라운드로 치러질 예정이던 대회는 계속된 악천후로 2라운드로 축소됐다. 쩡야니는 25일부터 이틀 동안 이어진 1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 9개를 잡았고, 2라운드에서 5타를 더 줄였다. 2위 아멜리아 가비(뉴질랜드)를 4타 차로 제치고 우승 상금 20만달러(약 2억8700만원)를 받았다. 그는 “마지막 조로 경기한 게 너무 오랜만이라서 긴장했다”면서 “공동 선두에서 다시 앞서나간 다음부터 일부러 몸짓도 크게 하고, 샷도 더 당당히 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10여 년 만의 우승 세리머니가 어색한 듯 보였다. 살짝 굳은 얼굴로 같이 경기한 선수·캐디와 인사한 그는 18번홀 그린 밖으로 걸어가 두 팔을 들며 환호했고, 달려온 가족·코치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렸다. “18번 홀까지도 내 점수가 맞는지 스코어보드를 보고도 믿기지 않았어요. 이런 기분 정말 오랜만입니다.”
쩡야니는 2011년 2월부터 2013년 3월까지 109주 연속 여자 골프 세계 1위를 지키며 ‘여자 타이거 우즈’라고 불렸다. 그런데 2014년 마지막 우승 이후 골프 역사에서 비슷한 사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갑작스러운 몰락을 맞았다. 허리와 고관절 부상으로 신음했고, 기술적으로는 퍼트 입스(yips)가 가장 큰 문제로 다가왔다. 그는 “퍼트할 때 너무 무서워 정말 많이 울었다”고 했다. ‘마음의 병’으로 불리는 입스 피해의 대표 사례로 여겨졌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바닥부터 다시 시작했다. 특히 그를 괴롭혔던 퍼트는 여러 시도를 거쳐 올해부터는 왼손잡이처럼 해보기로 했다. 오른손잡이인 그는 드라이버와 아이언샷은 하던 대로 하다가 그린 위에서 퍼트만 왼손잡이처럼 방향을 바꿔서 했다. 다행히 효과가 있었다. 오른손으로 할 땐 손이 떨려 퍼터를 제대로 잡지도 못할 정도였는데, 왼손으로는 볼이 똑바로 굴러갔다. 지난 8월 메이저 대회인 ‘AIG 여자 오픈’에서 컷 통과에도 성공했다. 그가 LPGA 투어 대회에서 컷을 통과한 건 6년 10개월 만이었다. 최근 TLPGA 대회 ‘징마오 여자 오픈’에서 6위에 올랐고, 바로 이어진 대회에서 꿈에 그리던 정상에 올랐다.
36세에 다시 챔피언이 된 쩡야니의 부활에 골프계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적”이라며 흥분하고 있다. 세계 1위 선수가 단기간에 완전히 무너진 것도 놀랍지만, 10년이 훨씬 지나서 다시 정상에 오른 사례는 어떤 투어에서도 찾기 어렵다.
쩡야니의 전성기 시절 LPGA 투어에서 경쟁했던 전 세계 랭킹 1위 유소연(35)은 “축구로 치면 EPL(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선수가 조기축구회 수준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최고의 무대로 복귀했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몇 달 전 쩡야니가 ‘이것저것 다 해보고 마지막으로 (퍼트에) 변화를 줬는데 마음이 훨씬 편안하다’고 얘기했다”며 “우승 소식에 나까지 가슴이 뭉클하다”고 했다. 나상현 골프 해설위원도 “매번 컷 탈락해 실망하길 반복하고 주변 사람의 기대까지 사그라지는 정신적 고달픔을 10년 넘게 버텨낸 뒤 마침내 리셋(reset)에 성공한 게 정말 대단하다”고 했다.
쩡야니는 “어떤 상황에도 포기하지 않으면 나처럼 결실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아무리 거센 폭풍우도 결국은 지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