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센트 동전의 마법이었다.
샷은 좋은데 퍼팅이 약해서 고민이던 스코티 셰플러(25·미국)는 올 시즌 틈만 나면 25센트 동전을 퍼터 헤드 뒷면의 파인 부분에 올려 놓고 연습한다. 퍼팅 템포가 흐트러지면 동전은 여지없이 떨어진다. 이런 연습을 거쳐 셰플러는 어떤 순간에도 자신만의 템포를 유지하면서 퍼팅을 하게 됐다. 그러자 올해만 3승과 함께 시즌 상금 739만달러(약 90억원)가 지갑에 들어왔다. 한국 돈 300원 정도인 동전으로 그 3000만배의 돈을 불린 셈이다. 그리고 아직 먼 꿈이라고 생각했던 세계 1위라는 명예까지 찾아왔다.
셰플러는 28일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의 오스틴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월드골프챔피언십(WGC) 델 테크놀로지스 매치 플레이(총상금 1200만달러) 결승에서 케빈 키스너(미국)를 4홀 차로 이기며 정상에 올랐다. 준결승에서는 2017년 챔피언이자 전 세계 랭킹 1위 더스틴 존슨(미국)을 3홀 차로 따돌렸다.
43일 전만 해도 셰플러는 PGA투어에서 1승도 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 6주 동안 5차례 대회에서 3승을 올리며 단숨에 세계 1위로 뛰어올랐다. 지난 2월 14일 피닉스 오픈에서 연장전 끝에 패트릭 캔틀레이(미국)를 제치고 첫 정상에 오르며 세계 15위에서 10위로 올라섰고, 3월 7일 아널드 파머 인비테이셔널에서 2위 그룹을 1타 차이로 제치고 2승째를 거두며 세계 5위로 도약했다. 셰플러는 이날 우승 상금 210만달러를 받아 올 시즌 상금 순위 1위(739만8000달러)에 올랐고 페덱스컵 순위 1위도 지켰다. 셰플러는 생애 첫 우승을 이룬 시즌에 메이저 대회를 한 번도 치르지 않고 세계 랭킹 1위가 된 첫 선수가 됐다.
191cm·91kg의 당당한 체격을 지닌 셰플러는 경기가 끝나자 아내를 끌어안고 눈물을 한참 쏟아냈다. 이날 그의 아버지를 비롯해 가족이 모두 찾아와 그 광경을 지켜봤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솥뚜껑만 한 손으로 쓱쓱 훔치는 그의 모습에선 지난 닷새간 매치플레이 상대를 줄줄이 거꾸러뜨리던 냉혈한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TV 인터뷰가 시작되자 셰플러의 얼굴에서 또 눈물이 쏟아졌다. ‘지난해 준우승했던 이 대회에서 우승하고 세계 1위까지 된 소감이 어떠냐’는 질문에 다시 눈물을 쏟고는 “그렇게 멀리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나는 그저 골프를 좋아하고 투어에서 경기할 수 있게 돼 정말 행복하다”고 했다.
텍사스 대학 골프팀에서 활약했던 셰플러는 2019년 미 PGA 2부 투어에서 2승을 올렸고, PGA 투어에 진출해 2020년 신인왕에 올랐다. 이후 2020년 PGA챔피언십 공동 4위, 2021년 마스터스 공동 18위, 2021년 US오픈 공동 7위, 2021년 디오픈 공동 8위 등 메이저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렸다. 하지만 드라이버와 아이언 샷 능력과 비교해 마무리 퍼팅이 부족해 좀처럼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2019-2020 시즌 그의 퍼팅 순위(이득타수 기준)는 117위, 2020-2021시즌 107위였다. 하지만 25센트 동전 연습을 통해 짠물 퍼팅으로 무장한 올 시즌엔 무려 15위로 뛰어올랐다. PGA는 “퍼팅에서 일정한 템포가 얼마나 중요한지 셰플러의 25센트 동전 연습이 증명했다”고 평했다. 셰플러는 4월 7일 개막하는 시즌 첫 메이저 대회 마스터스에서도 강력한 우승 후보로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