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영이 6일 싱가포르 센토사 골프클럽에서 끝난 LPGA 투어 HSBC 위민스 월드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하고 두 팔을 들며 기뻐하고 있다. 그는 연속 60대 타수 라운드와 연속 언더파 라운드 신기록을 이날 작성했다. 고진영은 2019년 세운 114홀 연속 ‘노 보기(no bogey)’ 기록도 갖고 있다. /AP 연합뉴스

압박감 느끼는 걸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고진영(27)은 “압박감을 경험하면서 성장하는 것이 좋다”고 답했다. 이 기세라면 당분간 누구도 그를 막기 어려워 보인다. 지난 시즌 미국 여자 프로골프(LPGA) 투어 최종전에서 우승했던 그는 올 시즌 처음 나선 대회에서 또 우승했다. 최근 출전한 10대회 중 6승을 올렸다. 여자 골프 세계 랭킹 1위 고진영은 ‘전설’ 안니카 소렌스탐(52·스웨덴)이 갖고 있던 두 가지 대기록도 넘어섰다. 연속 60대 타수(15라운드)와 연속 언더파(30라운드) 기록을 새로 썼다.

6일 싱가포르 센토사 골프 클럽(파72·6749야드)에서 열린 HSBC 위민스 월드 챔피언십(총상금 170만달러) 4라운드에서 고진영은 버디 7개, 보기 1개로 6타를 줄였다. 최종 합계 17언더파 271타를 친 그는 공동 2위 전인지(28)와 이민지(26·호주)를 2타 차로 제쳤다. 투어 통산 13번째 우승을 달성해 상금 25만5000달러(약 3억1000만원)를 받았다.

이날 66타를 친 고진영은 작년 10월부터 15라운드 연속 60대 타수를 기록했다. 소렌스탐(2005년)과 유소연(32·2016~2017년), 그리고 자신(2021년)이 세웠던 연속 14라운드 기록을 깼다. 또한 고진영은 작년 7월부터 이날까지 30라운드 연속 언더파를 쳤다. 소렌스탐(2004년)과 리디아 고(25·뉴질랜드·2014~2015년)가 갖고 있던 연속 29라운드 기록을 경신했다.

고진영은 최종 라운드 챔피언조에서 전인지, 이정은(26)과 함께 경기하며 마지막 홀까지 치열한 우승 경쟁을 벌였다. 한동안 부진했던 한국 여자 골프가 대반격에 나선 듯했다. 거의 넉 달 만에 대회에 출전한 고진영은 “뛰어난 선수이자 친한 친구인 한국 선수들과 챔피언조에서 경기하는 건 언제나 힘들다”며 “내 스윙에만 집중했다”고 했다. 그는 4라운드를 전인지에게 1타 뒤진 공동 2위로 출발해 7번 홀(파3)까지 답답한 파 행진을 이어갔다. 공동 선두 이정은·아타야 티띠꾼(19·태국)과 3타 차 공동 6위로 밀려났다.

6일 LPGA 투어 HSBC 위민스 월드 챔피언십 4라운드가 열린 싱가포르의 센토사 골프클럽. 같은 챔피언조에서 경기를 마친 전인지(왼쪽부터)와 고진영, 이정은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 고진영이 우승을 차지했고 전인지가 공동 2위, 이정은이 공동 4위였다./AP 연합뉴스

8번 홀(파5)에서 고진영의 첫 버디가 나왔고, 9번 홀(파4) 버디가 추가됐다. 12번 홀(파4) 보기가 나왔으나, 바로 다음 홀부터 무서운 집중력을 발휘해 다시 4연속 버디로 올라섰다. 고진영은 “보기를 하고 스스로에게 화가 났지만, 아직 버디 기회가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했다”며 “파5인 13번 홀에선 반드시 버디를 잡아야 했다”고 말했다.

고진영은 이정은과 공동 선두로 18번 홀(파4)에 들어섰다. 벙커와 러프를 오가며 더블 보기로 무너진 이정은은 티띠꾼과 나란히 공동 4위(14언더파)로 마무리했다. 반면 고진영은 날카로운 아이언샷을 앞세워 버디를 잡아내 우승을 확정 지었다.

고진영은 작년 10월 부산에서 열린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 첫날 71타를 치는 바람에 연속 60대 타수 기록이 14라운드에서 중단됐다. 당시 “한국에서 경기하면 더 잘하고 싶은 욕심과 부담감이 커져서인지 오늘 생각만큼 잘하지 못했다”며 “다음에 또 경기력이 올라오면 14라운드 그 이상도 깰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러고는 바로 다음 날부터 다시 60대 타수를 치기 시작해 이날까지 이어왔다.

그는 “작년에 기회를 놓쳐 아쉬웠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기회가 왔다”며 “압박감 속에서 나 자신이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더없이 기쁘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내가 자랑스럽다”고 했다. 그의 연속 60대 타수·언더파 기록은 어디까지 이어질까. 만족을 모르는 완벽주의자 고진영은 국내로 돌아와 다시 연습에 전념할 계획이다. “스윙 연습이 여전히 많이 필요하다. 골프를 좀 쉽게 치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