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볼 경합 1위(72회), 중앙지역 걷어내기 1위(42회), 중앙지역 패스 3위(35회), 패스 가로채기 4위(72회) ….
K리그를 주름잡는 베테랑 수비수의 기록이 아니다. 데뷔 2년 차 ‘풋내기’ 수비수 이한범(FC서울)이 올 시즌 쌓아올리는 수치다. 2002년생으로 올해 스무 살인 이한범은 리그 내 기라성 같은 선배들을 제치고 올 시즌 K리그 최고 중앙 수비수 중 한 명으로 인정받는다. 190㎝ 큰 키로 공중볼을 잘 따내면서 ‘발밑’도 좋아 공격수에게 한 번에 연결되는 패스가 정확하다.
지난 16일엔 황선홍 감독이 이끄는 아시아축구연맹(AFC) U-23(23세 이하) 아시안컵 본선 대표팀에 발탁됐다. 지난 12일 FC서울의 훈련장인 경기 구리 GS챔피언스파크에서 만난 이한범은 “새로운 환경에서 훈련하는 대표팀에 다녀오면 실력이 확 늘어 있다”며 “(23세 이하 대표팀에) 뽑히면 좋겠다”고 했는데, 그 말처럼 발탁됐다.
◇포지션 변경이 ‘신의 한 수’로
이한범은 서울 보인고 1학년 때까지 중앙 미드필더로 뛰었다. 본인 표현에 따르면 ‘평범한 선수’였는데, 1년 만에 키가 8㎝가량 자라 190㎝에 육박하게 되자 감독 권유로 포지션을 중앙 수비수로 바꿨다. 그때부터 고교 무대에서 이름을 날렸다. 고2 때 U-17(17세 이하) 대표팀에 발탁되며 첫 태극마크를 달기도 했다. “수비수는 재미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재밌는 곳이 없어요. 잘만 막으면 최소한 팀을 지지는 않게 할 수 있으니까요.”
2021년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FC서울에 바로 입단했다. 안익수 FC서울 감독이 시즌 중반 부임하면서 신인이었던 이한범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해 전격 기용했다. 그리고 불과 두 시즌 만인 2022년 팀 최후방을 든든하게 책임지는 수비수로 성장했다. 그는 더불어 오스마르, 기성용과 함께 안 감독이 펼치는 ‘패스 공격’의 시발점으로 활약 중이다. FC서울은 코로나 집단감염 등의 여파로 3월 중순 9위까지 순위가 내려앉았으나, 이한범이 완벽히 자리를 잡은 뒤 치른 최근 7경기에서 3승 3무 1패로 상승세를 타 6위(승점 17)까지 순위를 끌어올렸다.
◇”한번 만나면 공격 예측 가능해”
올 시즌 FC서울을 상대하는 많은 공격수가 이한범의 빗장에 가로막혀 고전했다. 큰 체격인데도 속도까지 빠른 이한범을 제쳐내지 못했다. 그 비결에 대해 이한범은 “경기 중 선수들이 가진 특유의 버릇들이 보인다”며 “한번 붙어보면 그 뒤로는 상대의 공격을 예측할 수 있다”고 했다. “어떤 공격수는 슈팅을 하기 전에 보일 듯 말 듯 공을 조금 더 길게 끌어요. 그때 발을 뻗으면 거의 100% 슈팅을 튕겨낼 수 있는 거죠.” 그럼에도 막기 어려운 공격수로는 현재 7골로 득점 3위에 올라 있는 주민규(제주)를 꼽았다. “아직 골을 허용하진 않았지만, 공을 가지고 ‘딱’ 등지고 있는 민규형 뒤에서 뭘 할 수가 없더라고요. 엄청나게 단단한 나무 같았어요.”
이한범은 벌써 유럽에 진출한 한국 간판 수비수 김민재(26·페네르바체)와 비견되기도 한다. 둘 다 체격, 달리기 속도, 패스 정확도 등 모자란 부분이 없는 수비수이기 때문이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유럽 스카우트들이 K리그에서 수비수를 찾는다면 제일 먼저 눈에 띌 만한 선수가 이한범”이라며 “어디 하나 부족한 부분이 없다는 게 가장 닮았다. 이한범이 더 성장한다면 유럽 진출과 함께 김민재와 합이 잘 맞는 대표팀 수비 파트너도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한범은 “민재 형이 뛰는 걸 보면 감탄만 나온다”며 “함께 거론되는 것 자체가 영광”이라고 했다.
‘최고의 수비수는 경험이 만들어 준다’는 축구 격언이 있다. 이한범도 이 말을 알고 있다고 했다. “늘 배운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경험이 부족한 지금도 좋은 수비수로 인정받고 싶어요. 더 노력해서 조만간 ‘경험은 아직 적지만 수비는 최고’라고 인정받고 싶습니다.”
구리=이영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