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뛰어오를수록 유리한 농구는 운동 능력에서 상대적으로 강점을 보이는 흑인이 주류를 이루는 스포츠다. NBA(미 프로농구)는 카림 압둘자바와 매직 존슨, 마이클 조던, 르브론 제임스, 스테픈 커리 등 흑인 수퍼스타들이 리그의 상징이자 얼굴로 자리매김해 왔다. 하지만 NBA 역사를 되짚어보면 리그를 호령했던 미국 백인 레전드도 여럿 있었다.
NBA 로고의 실제 인물로 유명한 제리 웨스트는 LA 레이커스에서 14시즌을 뛰며 매년 올스타에 선정된 수퍼스타다. 래리 버드는 보스턴 셀틱스 유니폼을 입고 세 차례 NBA 정상에 오르며 정규시즌 MVP도 3회 차지한 전설. 유타 재즈의 명품 가드였던 존 스탁턴은 리그 통산 최다 어시스트·스틸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 美 백인 스타 어디 갔나요?
2000년대 이후 NBA의 세계화가 본격화하면서 스티브 내시(캐나다)와 디르크 노비츠키(독일), 니콜라 요키치(세르비아), 루카 돈치치(슬로베니아) 등 다양한 국적의 백인 선수들이 NBA 전설이 됐거나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종주국 출신 백인 스타 계보를 잇는 선수는 1990년대 활약한 스탁턴을 끝으로 더는 찾아보기 어려운 분위기다.
미국 농구 대표팀만 봐도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당시 ‘드림팀’엔 12명 중 4명이 백인이었지만, 케빈 러브가 출전한 2012년 런던 올림픽 이후 열린 세 차례 대회에서는 백인 선수가 한 명도 없었다. 워싱턴포스트는 “유럽에서는 아이가 농구를 하겠다고 하면 집중적으로 훈련을 시키지만, 미국 백인 유소년들은 한 종목에 올인하기보다 다양한 스포츠를 경험하는 편이라 이후 농구를 선택하는 비율이 낮다”고 전했다. USA투데이는 “길거리 문화에 뿌리를 둔 농구는 조던의 등장과 함께 흑인 사회의 상징이 됐다”며 “반면 백인 청소년들은 문화적 배경과 전통적인 인기 때문에 농구보다는 야구에 쏠리는 경향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NBA 드래프트의 의미는 남달랐다. 미국 듀크대 출신 백인 선수 두 명이 나란히 1순위와 4순위로 지명된 것이다. 대학 시절 폭발적인 득점력을 자랑하며 센세이션을 일으킨 쿠퍼 플래그(19)는 예상대로 가장 먼저 댈러스 매버릭스의 선택을 받았고, 정교한 슛이 일품인 콘 크니플(20)은 샬럿 호니츠에 합류했다. 플래그의 전체 1순위 지명은 1977년 켄트 벤슨 이후 48년 만에 미국 출신 백인 선수가 가장 빨리 이름이 불린 사례였다.
◇ 듀크 듀오의 신인왕 경쟁
듀크대 시절 룸메이트로 지난 4월 NCAA(전미대학체육협회) 토너먼트 4강을 합작한 둘은 시즌 초반부터 뜨거운 신인왕 경쟁을 벌이고 있다. 플래그는 서부, 크니플은 동부 콘퍼런스 이달의 신인(11월)에 각각 선정되며 나란히 존재감을 과시했다.
플래그는 올 시즌 28경기에서 평균 18.8점 6.4리바운드 3.5어시스트, 야투 성공률 47.8%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16일 유타 재즈와의 경기에선 42점을 쓸어 담으며 NBA 최연소 40점 경기 기록을 세웠다. 연장 접전 끝에 아쉽게 패했지만, 미국 현지 언론은 “플래그는 ‘미국 백인 수퍼스타’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선수”라고 평가했다. 206㎝라는 좋은 체격 조건에 탁월한 운동 능력, 탄탄한 수비력까지 갖췄다.
간판 스타였던 돈치치가 지난 시즌 트레이드로 떠나며 허탈해했던 매버릭스 팬들은 플래그의 활약에 희망을 되찾았다. 그의 전매 특허인 투핸드 덩크가 꽂힐 때마다 홈구장은 열광에 휩싸인다. 플래그는 최근 10경기만 떼어 놓고 보면 평균 24.0점으로 점차 발전하는 모습이다.
크니플은 28경기에서 평균 19.4점 5.4리바운드 3.6어시스트를 기록 중이다. 대학 시절부터 뛰어난 슈터였던 그는 NBA 무대에서 고비마다 3점슛을 터뜨리며 팀 공격을 이끌고 있다. 3점슛 성공이 99개로 커리와 함께 리그 공동 2위이며, 성공률(40.9%)도 높다. 그는 첫 15경기에서 3점슛 50개를 넣으며 NBA 신인 최다 기록도 세웠다. 운동 능력은 떨어지는 편이지만, BQ(농구 지능)가 뛰어나 동료를 살리는 플레이에도 능하다. 크니플은 “이달의 신인상을 둘이 받았을 때 플래그가 ‘듀크대 룸메이트가 상을 쓸어갈지 누가 알았겠어’란 메시지를 보내왔다”며 “플래그는 내 성공을 진심으로 기뻐해 주는 친구이고, 나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