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구는 2026 WBC에서 17년 만에 8강에 올랐지만, 우려했던 마운드의 불안은 해소되지 않았다. 류지현 감독은 구원진에게 1~2이닝씩 쪼개 맡기는 투수 운용을 택했지만, 일본전(6대8 패)과 대만전(4대5 패)에선 막판 불펜 난조로 승리를 내줬다. 호주전(7대2 승)에서도 8회 한 점을 허용해 스코어가 6-2가 되면서 ‘최소 실점률’에 밀려 탈락할 뻔한 위기를 맞았다.
그래도 42세 베테랑 노경은(SSG)의 존재가 큰 버팀목이 됐다. 그는 체코전(1이닝), 대만전(3분의 1이닝), 호주전(2이닝)에 등판해 단 한 점도 내주지 않았다. 특히 9일 호주전에서는 선발 손주영(LG)이 팔꿈치 통증으로 2회 갑작스럽게 마운드를 내려가자, 충분히 몸을 풀지 못한 채 급히 등판해 다양한 구종을 섞는 노련한 투구로 2이닝을 실점 없이 막아냈다. 그는 “내가 왜 대표팀에 있는지 조금이나마 증명한 것 같아 마음의 짐을 덜었다”고 말했다.
굴곡 많은 야구 인생이었다. 2003년 두산에 입단한 그는 2012년 12승을 거두며 뒤늦게 기량을 만개했다. 이듬해 WBC를 통해 처음 성인 대표팀에 발탁됐지만 팀은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고, 이후 그의 기량도 하락했다. 롯데로 이적한 뒤에는 2019년 FA 협상 결렬로 1년간 무적(無籍) 신세가 되는 시련도 겪었다.
하지만 2022년 SSG 유니폼을 입으며 다시 일어섰다. 노경은은 불혹이 된 2024년 홀드왕을 거머쥐었고, 지난해에도 홀드왕 타이틀을 수성했다. 그 활약에 힘입어 13년 만에 태극 마크를 단 그는 한국의 8강행에 힘을 보탠 뒤 결선이 열리는 마이애미행 비행기에서 뜻깊은 42번째 생일(3월 11일)을 맞게 됐다. 노경은은 이번 대회 전체 선수단 중 두 번째로 나이가 많다.
노경은의 헌신 속에 8강행 티켓을 따냈지만, 한국은 이번 조별 리그에서 1이닝을 믿고 맡길 만한 확실한 카드가 없다는 문제점을 드러냈다. 손주영이 부상으로 낙마한 가운데 류지현 감독은 한국계 메이저리거 라일리 오브라이언(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을 대체 선수로 고민하고 있다. 대표팀 엔트리에 들었다가 종아리 근육 통증으로 함께하지 못한 오브라이언은 지난 시즌 메이저리그에서 평균자책점 2.06으로 활약한 정상급 불펜 자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