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후 '좋았어'

고의4구는 투수가 타자에게 조건없이 1루를 헌납하는 것을 말한다. 승부처에서 수비하는 팀이 타자와 상대하는 것보다 1루를 채우는게 낫다고 판단할 때 등장하는 작전이다.

과거 KBO리그에서는 투수가 일어선 포수에게 직접 볼 4개를 던져야 했지만, 스피드업 기류에 따라 2018년부터 벤치가 심판에게 사인을 통해 고의4구를 할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뀌었다.

24일 현재 가장 많은 고의4구를 기록 중인 타자는 키움 히어로즈 이정후다. 아직 시즌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11개의 고의4구를 얻어냈다. 한 시즌 11개는 2015년 김태균과 김현수(이상 12개) 이후 가장 많은 수치다.

이정후의 페이스를 보면 투수들이 승부를 피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이정후는 키움 타선에서 없어선 안 될 존재다. 이는 올해 들어 더욱 확고해졌다.

이정후는 팀이 치른 112경기 중 110경기에 나서 타율 0.332(425타수 141안타), 19홈런, 83타점을 기록 중이다. 정교함에 힘까지 더해지면서 2017년 데뷔 후 처음으로 20홈런을 바라보고 있다. 타점도 커리어 하이인 101개(2020년)를 넘길 기세다.

붙박이 3번 타자인 이정후의 고의4구가 늘어난 것은 상대적으로 빈약한 4번 타자의 지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고의4구는 투수 입장에선 위험 부담이 따르는 작전이다. 다음 타자를 잡고 위기를 넘기면 분위기를 끌어올 수 있지만, 한 방을 얻어 맞으면 자칫 경기 전체를 그르칠 수도 있다. 때문에 후속 타자가 만만치 않으면 고의4구를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키움을 상대하는 투수들은 이 고민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이정후 뒤에 찾아오는 키움의 공허감은 기록에서 잘 나타난다. 키움의 올 시즌 4번 타자 타율은 0.256(438타수 112안타)으로 리그 평균인 0.276에 크게 못 미친다. 4번 타자들이 쳐낸 홈런은 11개로 KIA 타이거즈와 함께 10개 구단 중 가장 적다.

올해 키움에서 4번 타자로 가장 많이 나선 이는 외국인 타자 야시엘 푸이그다. 푸이그는 올 시즌 4번 타자로 258타석에 나서 타율 0.265(22타수 39안타), 9홈런에 그치고 있다. 그나마 후반기 들어 나아진 수치다.

메이저리그(MLB) 시절 여러 기행들로 이슈의 중심에 섰던 푸이그는 '야구 만큼은 문제될 일이 없을 것'이라는 구단의 기대와 달리 실력 발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2번, 5번, 6번 등 다양한 자리에 서봤지만 4번을 칠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푸이그 뿐 아니라 김혜성, 송성문 등이 4번으로 제법 기용됐지만 다들 확실한 대안이 되진 못했다.

투수들에게는 세 번 중 한 번은 안타를 때려내는 3번 타자 이정후를 거르고 허약한 4번 타자와 만나는 것이 좀 더 확률 높은 선택이다. 이정후의 고의4구가 늘어난 것이 키움에겐 그리 달갑지 만은 않은 이유다.

한편 KBO리그 한 시즌 최다 고의4구 기록은 이정후의 아버지인 이종범이 갖고 있다. 해태 타이거즈 시절인 1997년 무려 30번이나 공짜로 1루를 얻었다. 통산 고의4구는 양준혁이 150개로 독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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