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회말 위기를 넘기고 포효하는 쿠에바스 / 뉴시스

2021년 10월 31일에 열린 KT와 삼성의 프로야구 1위 결정전은 정규시즌 기록에 공식적으로 포함되지 않는 경기였다.

KBO(한국야구위원회)는 두 팀이 공동 선두로 정규시즌을 끝낼 경우 단판 승부로 1위 결정전을 벌이기로 하면서 이 경기를 정규시즌과 포스트시즌, 그 어느 범주에도 넣지 않았다. 하지만 두 팀이 벌인 긴장감 넘치는 명승부는 영원히 야구 팬들의 기억 속에 남게 됐다.

KT에 1대0 승리를 안기며 정규시즌 우승을 이끈 이는 선발 윌리엄 쿠에바스(31·베네수엘라)였다. 쿠에바스는 7이닝 동안 99개의 공을 던지며 안타 1개, 사사구 3개만 내주고 삼진 8개를 잡아내며 무실점 투구를 펼쳤다. 특히 우익수 제러드 호잉의 실책으로 맞은 7회 1사 1·3루 위기에서 강민호를 2루수 플라이, 이원석을 삼진으로 잡아내고 포효하는 모습에 KT 팬들은 열광했다.

겨우 이틀 쉬고 나온 투수라곤 믿기지 않는 활약이었다.

지난달 28일 NC전에서 공 108개를 던지며 7이닝 2실점으로 팀에 귀중한 승리를 안긴 쿠에바스는 이날 1위 결정전에서 사흘 만에 마운드에 올라 프로야구 역사에 남을 역투를 펼쳤다. 쿠에바스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원래 3~4회만 소화할 생각이었지만, 공을 던질수록 더 힘이 났다. 오늘 KT 팬들이 대구에 원정 응원을 많이 와준 덕분에 200%의 힘을 더 냈다”며 팬들을 향해 두 팔로 하트를 그렸다.

SBS스포츠 유튜브 ‘야구에 산다’가 KBO에 문의한 결과로는 한국 프로야구에서 선발로 나와 5이닝 이상을 던지고, 이틀 이하를 쉬고 다시 선발로 7이닝 무실점을 한 경우는 24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쿠에바스 이전에 가장 최근 기록은 1997년으로, 그 주인공은 공교롭게도 쿠에바스의 현 스승인 이강철 감독이다. 이 감독은 해태 시절인 1997년 9월19일 5이닝 무실점에 이어 이틀 만에 나와 9이닝 무실점으로 완봉승을 기록했다. 이강철의 활약에 힘입어 해태는 정규시즌 우승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었다.

작년부터 KT에서 몸 담은 쿠에바스에게 올 시즌은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시간이었다.

출발은 좋지 않았다. 5월 5일 키움전에서 10실점을 하는 등 부진을 거듭하며 방출 위기까지 몰렸다. 쿠에바스는 7월 들어 평균자책점 0.61로 살아나는 모습을 보였지만, 아버지를 잃는 큰 아픔을 겪었다. 8월 아들을 보기 위해 한국을 찾은 아버지가 코로나에 감염돼 세상을 떠났다. KT 구단은 쿠에바스에게 고향인 베네수엘라로 돌아간다고 해도 언제든지 갈 수 있도록 지원해줄 테니 마음을 잘 추스르라며 시간을 줬다. 이강철 감독은 “쿠에바스를 올 시즌 못 볼 생각을 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쿠에바스는 곧 “앞으로 내가 가진 힘의 1000% 이상을 발휘해 팀에 헌신할 테니 잘 지켜봐 달라”며 복귀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그는 팀의 운명이 걸린 시즌 막판 놀라운 역투로 그 약속을 지켰다.

정규시즌 우승으로 한국시리즈에 선착한 KT는 14일부터 고척돔에서 1차전을 치른다. 큰 경기에 강한 면모를 보이는 ‘빅 게임 피처’인 쿠에바스에게 다시 한 번 기대를 걸어야 할 시간이다. 그는 두산과 상대한 작년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8이닝 1실점의 호투로 KT에 창단 후 첫 포스트시즌 승리를 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