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NC전에서 2루타로 결승타점을 뽑아낸 이정후. / 키움 히어로즈

‘야잘잘’이란 말이 있다. ‘야구는 잘하는 사람이 잘한다’는 다소 허무한 뜻이긴 한데 시즌 초반 부진하다가도 어느 순간에 보면 자기 스탯을 찍고 있거나 부상으로 오래 쉬었으면서도 금세 실력을 되찾는 경우 등을 말한다.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란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올 시즌 ‘야잘잘’이란 말에 가장 잘 부합하는 선수가 이정후(23·키움)다.

이정후의 4월은 우울했다. 타율이 0.269였는데 보통 선수라면 무난한 성적이라 할 수 있지만, 이정후의 이름엔 어울리지 않는 성적이었다. 홈런은 하나도 없고, 2루타는 5개였다. 이정후는 지난 시즌 타율 0.333에 15홈런에 2루타 49개를 때려냈다. 작년 2루타 전체 1위였다.

하지만 5월이 되자 이정후는 거짓말처럼 살아났다. 5월 1일 NC전부터 5월 8일 SSG전까지 5경기에서 안타 11개를 몰아치며 살아났다. 5경기에서 기록한 타점만 11개였다.

이정후의 몰아치기는 계속됐다. 13일 두산전부터 19일 삼성전까지 6경기에서 16개의 안타를 몰아쳤다. 특히 19일 삼성전에선 5타점을 기록했다. 이정후의 활약과 함께 키움도 연승 행진을 달렸다.

이정후가 8회초 슬라이딩 캐치로 공을 잡아내는 모습. / 키움 히어로즈

21일 NC를 맞아 이정후는 4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평소로 따지면 부진한 성적이라 볼 수도 있지만 0-0으로 맞선 6회말 2사 1루 상황에서 2루타로 이용규를 홈으로 불러들이며 결승 타점의 주인공이 됐다.

8회초엔 박준영의 안타성 타구를 앞으로 달려나오며 슬라이딩 캐치로 잡아냈다. 키움은 이정후의 활약에 힘입어 2대0으로 승리하며 쾌조의 5연승으로 6위로 올라섰다.

어느새 이정후는 타격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에서 2.33으로 양의지(2.22), 알테어(2.16)를 제치고 리그 1위를 달리고 있다. 종합 WAR에선 삼성 투수 원태인(2.60)에 이어 2위(2.49)다.

타점은 9위(30개)이며, OPS는 6위(0.985). ‘2루타 머신’이란 명성대로 2루타는 15개로 리그 1위에 올라 있다. 타율은 0.366으로 KT 강백호(0.415)에 이어 2위다.

이정후와 강백호는 이번 도쿄올림픽 대표팀 타선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이정후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사실 방망이로는 강백호를 이길 수 없다”며 겸양을 보인 뒤 “백호와 제가 주축이 되어 한국야구의 인기를 끌어올릴 기회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정후는 초반 부진에 대해 “시범경기 때 안 좋은 느낌이 있었는데 이 분위기가 시즌 초반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4월 한 달 야구를 하려고 준비한 게 아니라 10월까지 야구를 해야 하고, 잘 칠 때가 있으면 안 맞을 때가 있는 것처럼 안 맞는 게 먼저 시작된 거라 생각하고 좋게 넘기려고 했는데 5월이 돼서 살아났다”고 말했다.

그는 5월에 좋아진 비결에 대해 “골반 쪽이 좀 안 잡히는 느낌이 있었고, 오른쪽 어깨가 너무 많이 들어가다 보니 칠 때 너무 빨리 열리더라”며 “그 부분을 수정하고, 자신감까지 얻으면서 결과가 좋게 나오는 것 같다”고 했다.

이정후의 올 시즌 홈런은 1개다. 그래도 19일 삼성전에서 마수걸이 홈런을 뽑아내며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 “마침 홈런이 터져 마음이 후련했다”고 한 그는 중견수 수비에 대해선 “국가대표 중견수에 애착이 있다. 중견수로 도쿄올림픽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