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환한 웃음처럼 김상수는 올 시즌 팬들을 웃게 할 수 있을까. / 송정헌 스포츠조선 기자

삼성 라이온즈의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딱 반으로 잘라 너무나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삼성은 2011년부터 2015년까지는 매년 한국시리즈에 올라 우승 4회(2011~2014), 준우승 1회(2015)의 성적을 거두며 ‘왕조’를 구축했다. 하지만 라이온즈파크가 개장한 2016년부터 작년까지는 9-9-6-8-8위로 5년 연속 ‘가을 야구’ 진출에 실패했다.

2009년 삼성에 입단해 프로 13년차를 맞은 김상수는 라이온즈의 ‘온탕’과 ‘냉탕’을 모두 경험한 몇 안 되는 선수다. 왕조의 주역 중 하나였던 김상수는 “하필 좋은 야구장으로 가고 난 뒤 팀이 내리막을 타는 바람에 팬들을 볼 면목이 더 없다”며 “올해는 많이 이겨서 삼성 팬들 기를 살려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치렁치렁한 머리 스타일을 자랑하던 작년 김상수. / 삼성 라이온즈

◇ 2021 삼성은 확실히 다르다?

전문가들은 올해 삼성을 다크호스로 꼽는다. 두산의 강타자 오재일이 FA로 삼성에 합류했고, 새 외국인 타자 호세 피렐라는 연습경기에서 5할대 불방망이를 휘두르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지난해 부상으로 고전했던 벤 라이블리가 좋은 컨디션으로 제 몫을 해준다면 ‘에이스’ 데이비드 뷰캐넌, 지난해 11승의 최채흥, 프로 3년차를 맞은 기대주 원태인 등과 함께 탄탄한 선발 마운드를 구축할 수 있다. ‘끝판 대장’ 오승환도 “올해는 다를 것”이라고 했다.

김상수도 “올 시즌 삼성은 다른 팀이 봐도 짜임새가 느껴지는 그런 팀이 됐다”며 “특히 백업 선수들의 기량이 아주 좋아졌다. 충분히 좋은 라인업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왕조 시절 멤버 못지않다”는 자신감도 내비쳤다.

그가 꼽은 키플레이어는 동갑내기 친구인 이학주. 삼성은 올 시즌 2루수 김상수와 유격수 이학주의 키스톤 콤비가 주전으로 출격할 가능성이 크다. 이학주는 작년 6월까지는 25타점으로 활약했지만, 7월 이후 부상과 부진이 겹치며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학주가 이번 스프링캠프 때 정말 열심히 운동을 하더라고요. 본인도 많은 걸 느낀 것 같고요. 학주가 어떻게 해주느냐에 따라 팀 성적이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상수 자신도 작년의 기세를 이어가야 한다. 김상수는 지난 시즌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 처음으로 3할 타율(0.304)을 달성했고, 출루율도 0.397로 4할에 육박했다. 타격 폼을 바꾼 뒤 공을 더 잘 보게 됐다고 한다.

올해도 김상수가 리드오프 역할을 잘해준다면 삼성 타선은 자연스럽게 짜임새를 갖출 수 있다. “뒤의 중심 타자들에게 많은 찬스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해야죠. 공을 보는 능력이 좋아진 만큼 상황에 맞게 컨택 위주로 가려고 합니다.”

김상수는 2루수 골든글러브가 욕심이 난다. 그는 2009년부터 2018년까지 유격수, 2019년부터는 2루수로 삼성의 주전 라인업에 꾸준히 들었지만, 아직 골든글러브 수상 기록은 없다. 김상수는 “유격수가 내야 수비의 리더라면, 2루수는 백업 플레이 등 조금 더 세세하게 움직여야 해서 많이 바쁜 포지션”이라고 했다.

올 시즌 KBO리그에선 2루수 골든글러브 자리를 놓고 박민우(NC)와 최주환(SSG), 김상수 등이 경쟁할 전망이다. 김상수는 “KBO리그 최고 2루수는 박민우라 생각한다. 스탯이 그렇게 말한다”며 “내 장기인 스피드를 살리면서 타율을 좀 더 끌어올려야 골든글러브을 품에 안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6살 꼬마 원태인에게 홈런을 빼앗은 중학교 형 김상수. / 유튜브 캡쳐

◇ 푸른 피가 흐르는 프랜차이즈 스타

스스로 “내 몸엔 푸른 피가 흐른다”는 김상수는 삼성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꼽히는 선수다. 삼성 연고지인 대구에서 초·중·고(옥산초·경복중·경북고)를 나왔고, 삼성에 들어와 13년간 ‘원 클럽 맨’으로 뛰고 있다. 한 팀에서 꾸준히 뛰고 있다는 사실에 굉장한 자부심을 느낀다는 그다.

김상수가 꼽는 차기 프랜차이즈 스타는 누구일까. “구자욱(대구고 졸업)은 이미 프랜차이즈 스타라 보면 될 것 같고요. 최채흥(상원고 졸업)과 원태인(경북고 졸업)은 프랜차이즈 스타가 될 재목들이죠.”

김상수는 중학 시절 원태인의 아버지인 원민구 당시 경복중 감독에게 야구를 배웠다. 경복중에 놀러 온 꼬마 원태인이 던진 공을 한 중학생 형이 자비심 없이 저 멀리 담장 밖으로 날려버리는 옛 영상이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그 중학교 형이 바로 김상수다.

“태인이가 어릴 때 저를 많이 따랐어요. 그때 홈런은 장난한다고 친 건데 멀리 가버리더라고요. 태인이는 ‘기억이 안 난다’고 하던데 안 나는 척하는 것 같아요.”

지난해 타격하는 김상수. / 삼성 라이온즈

◇ 에드먼턴 키즈들이 이렇게 컸습니다

김상수는 올 시즌 삼성에 입단한 신인들을 보며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것을 실감했다.

“이번에 들어온 2002년생들이 저하곤 띠동갑이에요. 제가 처음에 삼성에 들어왔을 때 신명철 선배가 띠동갑이었거든요. 그때만 해도 선배님이 너무너무 큰 산 같은 존재였는데 제가 어떻게 보면 지금 스무살들에겐 그렇게 보일 수 있잖아요. 세월 참 무상하죠?”

띠동갑 신인들을 맞이한 1990년생은 한국 야구에서 1982년생(추신수·이대호·김태균·오승환 등)을 잇는 ‘황금 세대’로 불린다. 김상수를 비롯해 허경민·정수빈·박건우(이상 두산), 오지환(LG), 안치홍(롯데) 등 1990년생들은 2008년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선수권에서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당시 오지환(경기고)과 허경민(광주일고), 안치홍(서울고)과 함께 고교 4대 유격수로 꼽혔던 경북고 김상수는 대회 당시엔 우익수를 봤다.

“감독님께서 ‘라이트(우익수) 볼 수 있느냐고 물어보셔서 중학교 때 잠깐 봤던 기억으로 ‘네’라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대만전부터 라이트로 나갔는데 그날 다이빙 캐치를 해버렸어요. 그래서 고정 우익수가 됐죠. 그때 박건우가 좌익수, 정수빈이 중견수였습니다. 당시 외야수 3인방이 지금까지 모두 프로에 있네요.”

‘에드먼턴 키즈’ 중 김상수가 가장 먼저 FA 자격을 얻었다. 2009년 입단 때부터 쭉 주전으로 활약한 덕분이었다. 김상수는 2019시즌을 앞두고 삼성과 총액 18억원에 계약을 맺었다.

친구들도 김상수의 뒤를 따랐다. 2020시즌을 맞아 오지환이 4년 40억원에 LG에 잔류했고, KIA에서 뛰었던 안치홍은 2+2년 최대 56억원에 롯데로 유니폼을 바꿔입었다. 2021시즌을 앞두고는 허경민이 7년 최대 85억원, 정수빈이 6년 최대 56억원에 두산에 남았다.

“경민이에겐 정말 축하한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맛있는 것도 사달라고 그랬죠.”

김상수는 작년 올스타에 선정됐다. 올스타 패치를 유니폼 상의에 부착한 김상수의 모습. / 삼성 라이온즈

◇ 두 번째 FA로 대박 노린다

김상수는 가장 먼저 FA 계약을 했지만, 동기들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계약 규모는 크지 않다. 그는 2017시즌 부상으로 42경기 출전에 그쳤고, 2018시즌에도 타율이 2할6푼대에 머무르는 등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계약 당시엔 김상수가 프랜차이즈 스타임을 감안하더라도 18억원은 ‘오버 페이’라 보는 팬들이 많았다.

“어쨌든 그 FA가 제 야구 인생에선 터닝포인트가 됐어요. 좀 더 열심히 해야겠구나란 걸 절실히 느꼈습니다. 야구에 대한 생각도 바뀌게 됐고요. 최근 성적이 좋아진 것도 FA 계약을 하고 나서 더 분발한 결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해 맹활약을 펼치면서 김상수는 ‘오버페이’에서 ‘모범 FA’로 평가가 바뀌었다. 그는 “팬들의 평가가 달라져 정말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FA계약 당시엔 기간이 3년으로 알려졌지만, 김상수는 3+1년 계약이라고 했다. 아무튼 작년과 같은 활약이 앞으로 이어진다면 그는 첫 번째 FA 때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두 번째 FA 계약을 맺는 이례적인 선수가 될 수도 있다.

“(강)민호 형도 그렇고 선배들이 그런 얘기를 많이 하세요. 너는 좀 특이하다고. 아무튼 눈앞에 또 FA가 기다리고 있어 동기 부여가 되는 건 사실입니다.”

◇ 삼성 만큼 소중한 대표팀의 푸른 유니폼

지난해 큰일을 겪은 것도 김상수를 한 단계 더 성숙하게 하였다. 농협 야구단 등에서 내야수로 활약한 아버지 김영범씨가 작년 8월 유명을 달리했다.

“제가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야구를 시작하게 됐어요. 아버지는 야구뿐만 아니라 인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어요. 늘 겸손하고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죠. 아버지 덕분에 제가 그래도 좀 바르게 큰 것 같습니다.”

“바르게 컸다”는 김상수 말대로 그는 팬들에게 인성 면에선 최고로 꼽히는 선수다. 특히 ‘연쇄 사인마’라 불릴 만큼 팬서비스는 KBO리그 최고를 다툰다. 팬들에게 사인을 워낙 잘해줘 미담이 속출한다.

“어릴 때 자주 갔던 대구 시민운동장은 선수가 밖으로 나오면 팬과 직접 만나게 되는 구조였어요. 저도 사인을 받고 싶어 열심히 따라다녔는데 잘 안 해주는 선수들도 많았습니다. 그때 어린 마음에 상처를 받아서인지 ‘난 커서 야구 선수가 된다면 꼭 사인을 잘해줘야겠다’라고 다짐했어요.”

김상수에겐 삼성의 푸른 유니폼만큼이나 입고 싶은 푸른 유니폼이 또 있다. 바로 대표팀 유니폼이다.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국제 대회는 2019 프리미어12. 두 차례 한·일전에서 김상수는 공·수에서 두루 좋은 활약을 펼쳤다.

“대표팀에서 거의 백업이나 대주자로 나섰던 저에게 2019년 프리미어12는 처음으로 주전으로 출전한 대회였어요. 비록 일본에 밀려 준우승을 하긴 했지만 일본전 두 경기는 잊히지 않습니다. 정말 열심히 했어요.”

당시 프리미어12 사령탑이었던 김경문 감독이 이제는 도쿄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다. 김상수는 “욕심으로 되는 건 아니지만 올림픽엔 꼭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 타격 훈련을 하는 김상수의 모습. / 삼성 라이온즈

◇ 내 야구 인생은 이제 6회, 다행히 이기고 있다

어느덧 한국 나이로 서른두 살. 김상수는 자신의 야구 인생을 9이닝으로 따진다면 몇 회쯤 와있다고 느낄까.

“6이닝 정도 뛴 것 같아요. 스코어는 간당간당하게 이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비록 아주 화려하진 않았지만 12년 동안 삼성의 주전 자리를 놓치지 않고 뛴 것만으로도 제 야구 인생은 패배보단 승리 쪽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남은 야구 인생에서 점수를 더 벌리는 홈런을 친다면 그건 어떤 일일까.

“당연히 삼성을 다시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려놓는 거죠. 팀이 좋았을 때와 안 좋았을 때를 모두 겪어봐서인지 우승에 대한 갈망이 더 큰 것 같아요. 저 혼자만의 힘으로는 안 되겠지만 이 팀을 반드시 다시 한번 우승시키고 싶습니다.”

‘영원한 삼성맨’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그는 최근 삼성 팬들이 기죽어 있는 모습에 한없이 미안함을 느낀다고 했다. 김상수는 “일단 올해는 숨죽이고 계셨던 라이온즈 팬들의 숨을 탁 한 번 틔워 드리고 싶다”고 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삼성 팬들이 농담처럼 하는 얘기를 살짝 물어보았다. 김상수가 코로나 사태로 덜 놀러다녀 성적이 좋아졌다는 얘기였다.

“글쎄요. 연관이 있지 않을까요. 하하.”

그는 역시 ‘쿨 가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