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에서 제140회 US오픈이 개막한다. 장소는 한때 코로나 임시 병동으로 쓰였던 빌리진 킹 내셔널 테니스 센터. 세계 1·2차 대전 중에도 매년 대회를 열 만큼 지금껏 단 한 번도 취소가 없었던 전통을 잇기 위해 강행했지만 많은 것이 예전과 다르다.
◇기계 심판이 점령한 2020 US오픈
이번 US오픈엔 관중이 없다. 볼 퍼슨과 코치진도 경기당 3명씩 허용한다. 심판마저 줄였다. 전체 17개 코트 중 메인 코트를 제외한 15곳에서 기존 선심(線審) 9명이 사라지고 주심 1명만 남는다. 기계 판독 시스템 ‘호크아이(Hawk-Eye)’가 경기장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로 사람 심판 역할을 대신한다.
기술은 이미 쓰이고 있었지만 역할이 달라졌다. 테니스의 호크아이는 코트 천장에 설치된 카메라 10여대가 초당 60장 이상 촬영한 고해상도 이미지 데이터를 분석해 공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한다. 이미 촬영된 영상을 느린 재생으로 판독하는 게 아니라 자체적인 삼각측량 알고리즘으로 계산한 공의 궤적을 3차원 이미지로 변환하는 방식이다.
호크아이는 방송 중계화면 도우미로 출발해 2006년 US오픈부터 경기 판독 장치로 널리 쓰였다. 계기는 2004년 이 대회 8강전이었다. 당시 흑인 세리나 윌리엄스가 같은 미국 국적의 백인 제니퍼 캐프리아티와 겨뤘는데 선심은 노골적으로 캐프리아티 편을 들었다. TV에 나온 호크아이 화면과 너무나 다른 판정에 팬들의 비판이 쏟아졌고, 선수가 세트당 3번씩 호크아이 판독 기회를 받도록 규정이 바뀌었다.
이제는 호크아이가 선수의 실수(아웃, 폴트, 풋폴트)를 자동 음성으로 지적한다. 선수는 이의를 제기할 필요도 없고 그럴 방법도 없다. ATP(남자프로테니스)가 2017년 ‘넥젠 파이널’ 대회부터 선심 무인화를 테스트해왔는데, 코로나 바이러스는 메이저 대회까지 변화시키는 촉매제가 됐다.
◇편견 없는 공정함vs드라마의 실종
뉴욕타임스 테니스 전문 기자 크리스토퍼 클래리가 소셜미디어에서 ‘호크 아이 체제’에 관한 테니스 팬들의 의견을 물었다. 찬성론자들은 “기계는 누구 편도 아니기 때문에 인종·국적·경력의 편견에서 벗어난 공정한 판정을 기대할 수 있다”며 스웨덴 테니스 스타 비에른 보리를 예로 든다. 보리는 윔블던을 5연패하던 전성기에도 US오픈에선 준우승만 네 번(1976·1978·1980·1981) 했다. 당시 선심들이 지미 코너스와 존 매켄로 같은 미국 선수들을 노골적으로 밀어줬기 때문이라는 뒷말이 있다. 테니스 선심의 경기당 오심 확률이 평균 8%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기계를 쓰면 경기 진행이 빨라지고, 심판 급여도 아낀다. 패배해도 심판 탓을 못 한다.
반대론자들은 “드라마가 사라진다”고 우려한다. 사람 심판은 관중과 선수를 연결하는 다리이고, 심판이 때론 악역도 맡으면서 극적인 흥분을 연출한다는 주장이다. 테니스 선심의 일엔 온갖 나라 말로 욕을 배워두는 것도 있는데, 이는 판정에 불복해 욕설하는 선수를 잡아내기 위함이다.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조차 올 초 호주오픈 8강전에서 독일어로 욕했다가 선심에게 들켰을 만큼 누구나 오욕칠정이 있고, 감정은 사람과 부딪쳐야 효과가 난다. 기계가 100% 완벽하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호크아이 측은 오차 범위가 2㎜에 불과하다고 설명하지만 영국 카디프대 연구팀은 카메라 프레임 속도의 한계로 시속 약 160㎞ 이상 공에는 판독 오차가 1㎝ 이상 난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비대면 시스템을 강요하는 코로나 시대는 전방위적인 영역에서 기계가 사람을 대체하는 변화를 촉구한다. 이번 US오픈은 스포츠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엿볼 수 있는 예고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