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성 중구청장

“또 희망고문하지 말고 그만둬요.”

2022년 구청장이 되고 1호 정책과제로 남산 고도제한 완화를 약속했지만 주민들은 싸늘했다. 한겨울 매서운 찬바람에 옷깃을 단단히 여민 듯, 주민들의 마음은 꼭꼭 닫혀있었다.

서울 한복판이라고는 믿을 수 없이 낡은 집이 즐비하고 주차는커녕 소형차도 들어가기 어려운 경사로가 유일한 통로인 동네. 홀로 시간의 흐름을 비켜 간 듯한 곳에서 외롭고 서럽게 버텨 온 주민들이 희망조차 품을 수 없게 됐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려왔다.

남산 주변 건물 높이를 필요 이상 억누르던 남산 고도제한은 성역화되어 지난 30년간 주민들에게 큰 희생을 강요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재산권 제약을 넘어 주거환경과 생활안전을 저해하는 아픈 현실이 되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한계 앞에서도 다들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중구는 팔을 걷었다.

먼저 그동안 고도제한 완화가 실패했던 원인을 분석하고 전략을 바꿨다. 도시 변화로 고도제한이 필요 없게 된 지역을 골라 철저히 공략했다. 남산 능선을 오르내리며 실태를 확인하고 시뮬레이션을 돌려 남산을 보는 데 지장을 주지 않는 적정 높이를 찾았다. 말 그대로 적극 행정이다.

여기에 고도제한 영향을 받는 회현동, 명동, 필동, 장충동, 다산동 주민들로 협의체를 구성하고 추진 과정은 사소한 것까지 모두 공유했다. 고도지구 현장에 천막을 며칠 쳐놓고 주민들 의견을 듣기도 했다. 이번에도 이러다 말겠지 하며 팔짱만 끼고 있던 주민들도 하나둘 힘을 보태기 시작했다. 남산 고도제한 완화가 고시된 지난해 6월 27일, 꿈만 같다는 주민들의 감격에 찬 목소리는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1년 반이 지났다. 30년 빗장을 걷어낸 자리에 새싹이 움트려 한다. 재개발 애물단지가 될 뻔한 신당9구역은 고도제한 완화 효과를 고스란히 받으며 그야말로 ‘뜨거운’ 정비사업지로 거듭났다. 회현동과 다산동에서는 국토부와 서울시 지원을 더해 공공 기반 시설 확충과 저층 주거 개선 사업을 펼치고 있다. 새집을 짓고 싶은 주민은 저렴한 비용에 건축사를 연결해 주거나 전문가와 함께 찾아가 ‘골목길 상담’을 해준다.

남산 고도제한 완화가 ‘중구의 가치’를 높였다면 지난해 12월 전면 개통한 남산자락숲길은 ‘주민 삶의 가치’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남산자락숲길은 중구 끝자락인 무학봉근린공원에서 반얀트리 호텔까지 5.14km의 무장애 친화 숲길이다. 계단 없는 데크길을 놓고 기존 흙길은 평탄화해서 만들었다. 데크길은 숲을 보존하기 위해 중간중간 구멍을 뚫거나 경사 낮은 지그재그 모양으로 조성했다. 배려의 결정체다.

이 길은 조용히 입소문을 타더니 개통 1주년도 되기 전 매월 5만 8000여 명이 찾는 힐링 명소가 됐다. 별 기대 없이 왔다가 남산과 북한산이 한눈에 보이는 전망대를 맞닥뜨리면 깜짝 선물이라도 받은 기분이다. 접근성이 좋다 보니 도심 야경이나 겨울 설경을 보러 오는 사람도 많다. 올해 실시한 구정 만족도 조사에서도 98%가 만족한다고 답했다. 좋은 것은 외국인 눈에도 좋아 보였을까. 요새는 깃발 들고 단체로 오는 외국인 관광객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남산자락숲길의 꿈은 남산순환로와의 만남이다. 이를 위해 중구는 반얀트리 호텔에서 국립극장으로 이어지는 생태통로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설계 절차에 있으니 이 꿈도 곧 실현될 것이다.

고도제한 완화로 자리 잡은 남산 친화적인 공동주택과 고급주택 단지들, 파란 새싹이 움트는 봄부터 하얀 눈옷을 입은 겨울까지 서로 다른 매력으로 힐링을 선사하는 남산자락숲길이 있는 곳, 숲과 도시 그리고 사람이 하나 되는 명품 숲세권이 바로 중구의 새로운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