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디자이너를 발굴해 시상하는 ‘서울디자인어워드 2025(Seoul Design Award 2025)’가 지난 24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렸다. 이번 시상식에는 국내외 디자이너와 시민, 관계자 등 1000여 명이 참석해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올해로 6회를 맞은 ‘서울디자인어워드’는 국제연합(UN)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기반으로 진행됐다. △건강과 평화 △평등한 기회(유니버설 디자인) △에너지와 환경(업사이클·리사이클) △도시와 공동체 등 4개 분야에 74개국 941개 프로젝트가 출품돼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이는 ‘예쁜 디자인’을 넘어 환경·사회·경제적으로 오래 지속될 수 있는 지속가능한 디자인(Sustainable Design)의 세계적 기준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논픽션 디자인 ‘자자 에너지 허브’ 대상 받아
본선 무대에서 △기후 재난 △전쟁 △인권 △환경 폐기물 등 지구적 문제를 다룬 프로젝트들이 경쟁했다. 그 결과 대상은 미국 논픽션 디자인(Nonfiction Design)의 ‘자자 에너지 허브(Jaza Energy Hubs)’가 차지했다. ‘자자 에너지 허브’는 나이지리아 농촌의 불안정한 전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태양광 허브와 충전식 배터리 생태계를 구축한 프로젝트다. 대상을 제외한 톱10 중 9개 프로젝트는 최우수상에 선정됐다.
수상작은 △기후 위기 및 환경 폐기물 문제 해법으로 사막에 건설한 3D 콘크리트 프린팅 구조물 ‘사막의 방주(Desert Ark·중국)’ △닭 깃털 폐기물을 천연 모직 섬유로 업사이클링한 ‘재생 깃털 섬유(Golden Feathers·인도)’ △전시 후 자재 반납으로 자원 리사이클링을 실현한 ‘순환의 전시(The Borrowing Project·대만)’ △업사이클링한 조명 부품과 재생 가능한 천연 왁스 블렌드(적절한 비율로 혼합)를 결합한 ‘되살아난 빛(Soft Solids Lighting·덴마크)’ △방치된 도시 공간을 문화유산과 예술로 재탄생시킨 ‘원주민 예술 도시(The City of Indigenous Arts·멕시코)’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친환경 전시관을 조성한 ‘알루스타 파빌리온(Alusta Pavilion for Multispecies Encounters·핀란드)’ △여성 인권 억압의 상징인 히잡을 업사이클링한 ‘해방의 좌석(Crafted Liberation·호주)’ 등이다.
이와 함께 △응급 요람 등을 재활용 자재로 제작한 ‘아나코-긴급 요람(Anako-Emergency Folding Cradle·이탈리아)’ △자외선 캡으로 라오스의 위생 문제를 해결한 ‘라디스 음용수 UV 살균기(LADIS_LAmp DISinfection·한국)’도 도시와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모색해 최우수상에 선정됐다. 또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팀에 주어지는 ‘컨셉상’에는 △나무를 3D 스캔해 소규모 가족 산림 소유자들이 탄소 배출권을 획득할 수 있도록 지원한 ‘나무껍질 바코드(Bark-Code·한국)’ △해양 생태계를 복원하고 재생 가능한 도시의 미래를 지향한 ‘블루가든(Blue Garden·영국)’이 선정됐다.
◇세계 첫 ‘디자인 라이브 심사’… 전문가와 시민이 함께 선정
시상식 주관 기관인 서울디자인재단(대표 차강희)은 올해 ‘서울디자인어워드 2025 톱(TOP)10 대상 결정전’에 디지털 혁신을 접목했다. 세계 최초로 ‘디자인 라이브 심사(Design Live Judging)’를 도입, 전문가와 전 세계 시민이 현장에서 함께 대상 수상작을 선정했다. 이를 통해 서울은 단숨에 ‘세계 디자인 담론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했다.
심사위원단에는 세계디자인기구(WDO) 회장이자 인도 디자인정책의 리더인 프라디윰나 브야스(Pradyumna Vyas)를 비롯해 △마틴 젤거(Martin Zelger·데일리 플랫폼 대표) △안드레아 칸첼라토(Andrea Cancellato·이탈리아 ADI 뮤지엄 관장) △에치오 만지니(Ezio Manzini·지속가능 사회혁신 디자인 석학) △알렉산드라 클라트(Alexandra Klatt·베를린디자인위크 대표) 등 세계 각국 디자인 리더 12인이 참여했다.
브야스 심사위원장은 최종 심사평에서 “더 나은 삶을 위한 디자인이 미래 사회에 어떤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지 시스템 프로젝트 관점에서 폭넓게 검토했다”며 “각 작품은 사회·경제 전반에 미치는 잠재적 영향과 파급력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시민 참여와 현장 투표로 완성된 축제의 장
시상식 전 열린 ‘지속가능한 디자인 콘퍼런스’에서는 세계 각국의 디자인 리더들이 참여해 서울디자인어워드의 4개 분야 중심으로 통찰과 비전을 공유했다. 또한 톱10 대상 결정전 현장에서는 △시민 현장 투표 △관람객 참여 이벤트 △역대 수상작 전시 등이 함께 열려 디자인과 시민이 소통하는 축제의 장으로 어우러졌다.
차강희 서울디자인재단 대표는 “서울디자인어워드는 디자인이 세상을 바꾸는 실질적 힘임을 보여주는 플랫폼”이라며 “이제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디자인하는 세계의 언어로 확장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디자인어워드는 2019년 출범 이래 △건강과 평화 △평등한 기회 △에너지와 환경 △도시와 공동체 등 네 가지 분야를 중심으로 지속가능한 디자인 프로젝트를 발굴·시상해 왔다. 현재는 ‘지속가능 디자인의 세계 기준’을 제시하는 글로벌 디자인 어워드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올해 ‘서울디자인어워드 2025’는 ‘디자인 도시 서울’의 정체성을 국제적으로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서울디자인어워드가 열린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는 지난 15일부터 26일까지 ‘서울디자인위크(Seoul Design Week)’도 함께 진행됐다. 서울디자인위크는 ‘디자인 마이애미(Design Miami)’ 등 글로벌 네트워크와 협력해 서울의 디자인 무대를 확장하는 플랫폼으로 자리 잡고 있다.
창의·혁신·지속가능성… 디자인의 비전에 감동
심사위원 마틴 젤거
‘서울디자인어워드 2025’ 심사위원인 마틴 젤거(Martin Zelger·스위스)는 디자인과 프리미엄 건축 미디어 분야 글로벌 선도 기업인 데일리 플랫폼(DAAily Platforms) 대표다.
데일리 플랫폼은 △디자인 미디어 플랫폼 ‘디자인붐(designboom)’ △건축가와 디자이너를 위한 연구·협업 플랫폼 ‘아키토닉(Architonic)’ △건축 뉴스 전문 웹사이트 ‘아크데일리(ArchDaily)’의 전문성과 브랜드 파워를 결합해 연간 25억 페이지뷰, 2억7000만 명의 방문자 수를 기록하고 있다. 젤거 대표에게 ‘서울디자인어워드 2025’ 출품작에 대해 물었다.
―서울디자인어워드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소감은.
“21개국 에서 온 32명의 뛰어난 심사위원, 그리고 세계 디자인 커뮤니티의 최정상급 인사들과 함께할 기회를 얻어 감사하고 겸허한 마음이 든다.”
―올해 출품작에 대한 인상은.
“900여 건의 다양한 프로젝트가 창의성·지속가능성·혁신성으로 오늘날 시급한 과제들을 다루는 모습에 감동했다. 올해 작품들은 단순히 미학적 완성도를 넘어 긍정적 사회 변화까지 이끄는 힘을 생생하게 보여줬다. 디자인붐에서는 이러한 정신을 ‘유토피안 낙관주의(Utopian Optimism)’라 부른다. 이는 비전적 상상력(Visionary Imagination)과 구체적 임팩트(Practical Impact)를 결합한 태도를 의미한다."
―프로젝트 심사 기준은.
“유토피안 낙관주의가 핵심 심사 렌즈였다. 꿈꾸되, 인간과 자연 생태계의 진실에 뿌리를 둔 디자인을 주의 깊게 살폈다.”
―서울디자인어워드에 도전하려는 디자이너들에게 조언한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희망과 기쁨, 그리고 더 밝은 미래의 비전을 북돋우는 디자인이다. 디자인은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의미 있는 ‘긍정적 변화의 힘’이 되어야 한다. 과감히 꿈꾸되, 인간과 생태의 진실에 기반을 둬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토피안 낙관주의’를 잃지 말아야 한다.”
에너지 순환 체계 구축과 경제적 자립 동시에 해결
대상 수상 ‘자자 에너지 허브’ 총괄 배글리
미국 논픽션 디자인(Nonfiction Design) 프로젝트 ‘자자 에너지 허브(Jaza Energy Hubs)’가 ‘서울디자인어워드 2025’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자자 에너지 허브’는 모듈형 태양광 충전 허브와 교체형 배터리 임대 시스템으로 농촌 지역의 에너지 순환 생태계를 구축하며, 접근성과 일자리 창출까지 동시에 해결한 사례로 주목받았다. 이 프로젝트를 총괄한 논픽션 디자인의 마디스 배글리(Mardis Bagley)를 만나 수상 소감과 프로젝트 의미를 들어봤다.
―대상 수상 소감은.
“글로벌 디자인 중심지인 한국에서 대상을 받게 되어 정말 기쁘다. 특히 이 시상식은 사회와 미래의 방향, 공존의 가치를 보여주는 자리였기에 디자이너로서 더욱 뜻깊고 가슴이 벅차다.”
―대상 작품의 의미는.
“이 프로젝트는 단순히 태양광 에너지를 생산해 공급하는 디자인이 아니다. 나이지리아 현지에서 일자리와 제조 역량을 창출해,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의 삶을 개척할 수 있도록 돕는 설루션이다. 즉, 에너지 공급을 넘어 경제적 자립 구조까지 디자인한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작업 과정에서 인상 깊었던 일이 있었다면.
“이 프로젝트는 단계별로 약 1년 6개월이 걸렸다. 비디오 통화로 현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300여 명 대상으로 설문조사해 의견을 수렴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번 프로젝트를 ‘전구만 무료로 나눠주는 사업’으로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미국에서는 흔한 전구가 나이지리아에서는 금처럼 귀한 존재였다. 전구 하나가 교육과 일상, 삶의 질까지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됐다. 또 30일간 현지에 머무르며 인종, 환경, 경제·문화적 차이는 달라도 ‘우리는 결국 같은 인간’이라는 동질감을 깊이 느꼈다."
―앞으로의 목표는.
“현재 우리 팀은 10개의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대부분 의료기기 등 사회적 영향력을 지닌 디자인 프로젝트들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키워드는 ‘권한 신장(Empowerment)’, 즉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것이다. 전 세계 사람들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목소리를 디자인으로 실현하는 것이 우리 목표이다.”
문미영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