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을 덮친 기후변화발(發) 이상 기상이 농업 현장을 강타하고 있다. 폭염, 침수, 병해충 등 농업 재해가 급격히 증가하며 농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에는 극한 폭염으로 벼멸구가 창궐해 2023년 1046㏊에 불과했던 피해 면적이 작년에는 무려 3만4140㏊로 34배나 폭증하기도 했다. 기상 이변이 농업 재해의 주범임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로, 이제는 단순히 약제 방제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왔다.
이러한 전례 없는 위기 속에서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디지털 혁신 기술을 기반으로 한 ‘기후 스마트 농업(Climate Smart Agriculture, CSA)’의 확산을 강조하고 있다. FAO는 농업 생산성 증진, 기후변화 적응력 강화, 온실가스 감축을 CSA의 3대 핵심 목표로 설정했다. 세계 각국은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관련 정책과 기술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농업 강국인 미국은 기상 데이터를 활용한 질병·해충 예측 모델로 농가에 혁신을 가져오고 있다. 이 모델은 실시간 날씨 정보를 분석해 농작물에 발생할 수 있는 질병과 해충의 위험을 사전에 경고함으로써, 농부들이 불필요한 농약 사용을 줄이고 더욱 효율적으로 작물을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다.
농축산물 수출 대국인 호주는 더욱 진보된 병해충 사전 탐지 기술을 개발했다. 공기 중의 곰팡이균 포자를 흡착한 뒤 전자현미경으로 촬영하고 이를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해 곰팡이성 병해충을 미리 탐지한다. 이를 통해 작물이 감염되기 전에 사전 방제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막대한 피해를 예방하고 있다. 호주는 앞으로 전자현미경과 AI 기술을 더 발전시켜 박테리아나 바이러스까지 미리 잡아내는 장비 개발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후변화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당장 농업의 생존을 위협하는 현실이 됐다. 각국의 혁신적인 ‘기후 스마트 농업’ 기술 도입 사례는 대한민국 농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권재한 농촌진흥청장은 22일 “이제 우리나라도 디지털 기술과 기후 정보의 융합을 통해 지속 가능한 농업 시스템을 구축하고, 예측 불가능한 농업 재해로부터 농가를 보호할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했다.
◇기후변화 대응 스마트 농업 기술 필요성과 성과
급격한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 기상이 빈번해지면서, 수십 년 농업 외길을 걸어온 베테랑 농업인들조차 예측 불가능한 농업 환경에 낯설어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더 이상 급변하는 기후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례 없는 위기 속에서 농촌진흥청이 대한민국 농업의 미래를 책임질 ‘신농업 기후변화 대응 체계 구축 사업’을 통해 반격에 나섰다. 농진청은 ‘예측-적응-재해 경감-탄소 중립’을 4대 핵심 분야로 설정하고, 이에 대한 첨단 기후변화 대응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기후변화로 농업 환경이 급격히 변화하면서 기상재해와 병해충 피해가 더욱 심각하고 다양한 양상을 보이는 만큼, 피해 최소화를 위한 첨단 기술 개발이 절실한 상황이다.
농진청은 기상과 재해를 예측하여 피해를 줄이기 위해 혁신적인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농업 기상재해 조기 경보 기술이 바로 그것이다. 2020년부터 단계적으로 검증을 거쳐 서비스 지역을 확대해 온 이 시스템은 기상청이 제공하는 동네예보(5x5㎞) 정보를 넘어, 농장 필지별 지형 특성을 분석해 농장 단위(30x30m)로 맞춤형 기상재해 정보와 상세한 대응 지침을 제공한다. 현재 전국 110개 시·군 42개 작목에 대해 기온·강수 등 11종의 기상정보와 동해·가뭄 등 15종의 기상위험 정보를 대응 지침과 함께 서비스하며 농업인들의 든든한 조력자가 되고 있다.
또한, 농진청은 급증하는 병해충 발생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예찰-예측-방제-현장점검’ 일관 체계를 구축하여 초기 대응부터 후속 조치까지 촘촘한 예찰·방제로 피해 최소화에 집중하고 있다. 벼멸구, 과수 탄저병 등 주요 문제 병해충에 대해서는 집중 예찰 및 적기 방제를 통해 안정적인 농산물 생산을 적극 지원하며 농업 현장의 어려움을 덜어주고 있다.
◇디지털 기반의 ‘기상재해·병해충’ 대응 기술 개발
기후변화로 인한 예측 불가능한 농업 환경 속에서 농촌진흥청이 첨단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 농업으로 농업 재해 경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110개 시·군에 서비스 중인 농업 기상 재해 조기 경보 서비스를 올해 10월까지 전국 155개 시·군으로 확대하는 한편, 서비스의 정확도를 높이는 기술 개발에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농진청은 조기 경보 서비스의 정확도 향상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인공위성과 레이더 정보를 활용하여 농장 단위의 상세 기상 예측 알고리즘을 개선하고 있으며, 여기에 AI 기술을 접목해 기온·강수량·풍속·상대습도 등에 대한 예측 정확도를 획기적으로 높여나가고 있다. 또한, ‘농작물 병해충 관리시스템’, ‘과수 생육 품질관리’, ‘가축 사육 기상정보’ 등 내부 서비스 간 연계를 통해 개별 서비스의 예측 정확도 또한 개선할 계획이다.
농업인의 정보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편의성 개선도 이뤄진다. 그동안 개별 서비스로 제공되던 기상재해, 병해충, 토양 정보 등 핵심 농업 관련 데이터가 오는 8월부터는 ‘농사로’ 웹사이트에서 ‘토털 정보 조회 서비스’로 제공될 예정이다. 이를 통해 농업인들은 필요한 정보를 한곳에서 손쉽게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농업 기상 재해 조기 경보 서비스 확산의 경제적 효과 또한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농업 재해 피해를 단 10%만 줄여도 연간 약 1514억 원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어, 국가 경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실제 현장에서는 이미 그 효과가 입증됐다. 2023년 4월 과수 저온 피해 당시, 전북 무주의 한 사과 재배 농가는 농업기상재해 조기경보 서비스의 저온 위험 예측 정보에 따라 온수 미세 살수 장치를 선제적으로 가동하여 개화기 저온 피해를 성공적으로 예방했다. 당시 기상청의 일반 예보상 주변 평균 기온은 영상이었으나, 해당 농장은 계곡 저지대 특성상 주변 평균 기온보다 최대 3.2도 낮은 환경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이는 농장 단위의 ‘핀셋 예보’가 기후변화 시대 농업인의 자산을 보호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국가농작물병해충관리시스템, AI로 정밀 예측 시대 연다
이상 기상으로 인한 병해충 발생 양상이 급변하면서, 농업 현장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이에 농촌진흥청은 ‘예찰-예측-방제-현장 점검’으로 이어지는 병해충 관리 체계를 데이터와 AI 기반으로 전면 전환해 스마트 방역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농진청은 병해충 예찰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무인화·자동화 기술 도입에 집중하고 있다. 현재 밭작물 주요 해충인 나방류·노린재 3종에 적용 중인 AI 트랩을 2027년까지 9종으로 확대하고, 2029년까지는 영상 인식, 자동 계수, 환경 데이터 수집 기능 등을 고도화하여 전 기종을 자동화할 방침이다. 또한, 올해 콩 관찰포 6개소를 시작으로 무인 예찰 트랩 보급도 단계적으로 확대하여 현장 적용을 강화할 예정이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AI 영상 진단 서비스는 딥러닝 기술을 활용해 이미지 증강 등 판별 기술을 고도화하고 있다. 현재 35작물 372종의 병해충에 대한 진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2029년까지 82작목 744종의 병해충으로 서비스 항목을 단계적으로 확대하여 농업인들이 더욱 폭넓고 정확한 진단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국가농작물병해충관리시스템(NCPMS)을 통한 기상 정보 기반 병해충 예측 서비스 역시 기상, 재배 환경, 생물 계절 등 복합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정밀 모델로 개발 중이다. AI를 활용한 병해충 예찰·예측 데이터의 자동 분석 기술이 2029년부터는 신뢰도 높은 방제 의사 결정 정보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는 과거 경험에 의존했던 방제 방식을 넘어, 과학적 데이터에 기반한 최적의 방제 시점과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농작물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전망이다.
◇‘농약 살포도 스마트하게‘… 원예작물도 디지털 방제
원예작물에 대한 ‘디지털 방제력’ 개발도 추진하고 있다. 이는 병해충 예측 모형·발생 상황, 기상 정보, 작물 생육, 약제 살포 상황을 종합 고려하여 방제 정보를 제시하는 실시간 맞춤형 시스템이다. 지난해 복숭아, 고추에 대한 디지털 방제력이 개발됐으며 2027년까지 현장 실증을 거쳐 2028년에 보급할 예정이고, 사과·배로도 작목을 확대해 개발 중이다.
방제 역시 드론과 자율주행 로봇 등을 활용해 무인 방제로 전환하고 농약 살포의 편의성과 안정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현재 자율주행형 무인 방제기를 개발하고 있다. 드론 등 무인 비행체 농약 살포 물량 개선을 위해 기종·분사 방식에 따른 살포 농약 분포 특성 규명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2029년까지 작목별로 농약 살포 물량을 설정할 계획이다.
인력 조사와 농업인의 경험에 의존하던 기존 병해충 예찰-예측-방제 체계가 디지털 기술로 전환되면 신속하고 정확한 의사 결정이 가능해져 병해충 관리 효율이 대폭 향상될 전망이다. 적기 사전 방제로 노동력과 비용을 절감하고 정밀 살포로 농약 사용량을 줄여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기후농정, 기후 위기를 넘어 지속 가능한 미래 농업으로
기후변화의 충격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첨단 기술을 활용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전통 농업에 AI, 데이터, 로봇 등 디지털 기술을 결합한 스마트 농업으로 기후 위기를 극복해 식량 주권을 강화하고 농업의 지속성을 확보해야 할 때이다. 기후 재앙 시대의 골든타임, 기후 스마트 농업이 바로 그 해법으로 제시되고 있다.
권재한 농촌진흥청장은 “농업과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기후 스마트 농업 기술을 통해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 최소화뿐만 아니라 지속 가능한 농업으로의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며 “스마트 농업 기술은 기후 위기 극복을 넘어 미래 농업의 신성장 동력을 창출하는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