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전기차 시장은 이른바 캐즘(chasm·일시적 수요 둔화)이 1년 내내 이어졌다. 시장조사 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전기차 시장은 2017년 이후 지난해까지 연평균 45%로 초고속 성장을 해 왔지만, 지난해 성장률은 27%로 낮아지면서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전기차가 앞으로 자동차 시장의 대세가 될 것이란 전망은 여전하고, 각 기업도 전동화 전환은 거스를 수 없다고 판단하면서 투자를 줄이기보다는 경쟁 우위 확보에 나서고 있다. 비야디(BYD), 지리, 샤오미 등 자국 내수 시장을 등에 업은 중국 업체들의 세계 시장 공략이 속도를 내는 가운데 현대차·기아를 비롯해 테슬라, 폴크스바겐 등 종전 강자들도 잇따라 신차를 내놓으며 전기차 시장 경쟁은 한층 거세진다. 전기차 시장 성장이 정체기에 접어들면서 ‘가성비’를 강조한 가격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글로벌 경기 둔화, 보조금에 좌우되는 가격 정책, 충전 인프라 부족, 중고차 가격 하락 우려 등 아직 전기차 수요를 가로막는 요인은 장애물로 꼽히지만, 업체마다 신차를 무기로 내세워 캐즘 극복에 나서는 것이다.
◇현대차그룹, 아이오닉9 등 잇따라 출시
현대차 CEO(최고경영자)인 호세 무뇨스 사장은 지난 20일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향후 10년간 900억달러(약 131조원)를 투자해 신형 전기차 21종을 개발하고, 하이브리드 모델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이날 무뇨스 사장은 “아이오닉 라인업을 지속적으로 확장해 더 큰 규모의 경제 효과를 창출할 것”이라며 “배터리 비용 절감, 효율성 증대, 주행거리 향상도 함께 실현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전기차 분야 투자를 통해 선두 자리를 더 공고히 하겠다는 전략이다.
현대차는 앞서 지난해 11월 대형 전동화 SUV(스포츠유틸리티차) ‘아이오닉 9’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했다. 아이오닉 5, 6, 5 N 모델을 통해 3년 연속 ‘월드카 어워즈’에서 수상한 아이오닉 시리즈의 영역을 대형까지 확장하는 모델이다. 3열까지 플랫 플로어(Flat Floor)를 확장해 넓은 실내 공간을 확보하고, 110.3kWh 배터리를 탑재해 1회 충전으로 주행 가능한 거리는 500km를 웃돈다.
기아도 지난달 스페인 타라고나에서 ‘2025 기아 EV 데이’를 개최하고, ‘더 기아 EV4’ ‘더 기아 PV5’ 등 양산차 2종과 ‘더 기아 콘셉트 EV2’를 세계 최초로 선보였다. EV4는 기아가 브랜드 최초로 내놓은 준중형 전동화 세단으로 현지 전략형 모델 EV4 해치백을 유럽 시장에 출시할 예정이다. 기아 관계자는 “EV4는 SUV 중심의 EV 시장에서 새로운 유형의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차세대 전동화 세단의 방향성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기아는 첫 전용 PBV(목적 맞춤형 차량)인 PV5도 올해 내놓는다. 다양한 고객을 만족하게 할 수 있도록 71.2kWh 및 51.5kWh 용량의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를 탑재하고, 유럽 지역에서는 43.3kWh 용량의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를 적용한 카고 모델도 추가로 내놓는다. EV3보다 작은 콘셉트 EV2는 도심 운전에 최적화된 콤팩트한 크기이지만, 프런트 트렁크, 2열 폴딩 & 리클라이닝 시트를 통해 공간을 제공한다. 송호성 기아 사장은 지난 14일 주총에서 “2024년 EV3를 시작으로 EV4, EV5, EV2를 2026년까지 순차적으로 출시해 대중화 모델 풀 라인업을 완성하겠다”고 밝혔다.
◇테슬라 모델Q 출시 앞둬
해외 기업들도 발 빠르게 전기차 신차를 내놓는다. 테슬라는 올 상반기 ‘모델 3’보다 작고, 저렴한 해치백 ‘모델 Q’ 출시를 앞두고 있다. 가격은 3만달러(약 4400만원) 선에서 책정될 전망이다. 지난해 전 세계 매출에서 테슬라를 압도한 BYD도 올 초 소형 SUV ‘아토2’를 네덜란드, 프랑스 등에서 출시하고, 유럽 시장에서 볼보의 ‘EX 30’ 등과 경쟁을 펼친다. BYD는 국내에선 준중형 전기 SUV ‘아토3’를 비롯해 중형 세단인 ‘실’과 중형 SUV ‘시라이언’ 등의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유럽을 중심으로 전기차 시장에서 성과를 내는 폴크스바겐은 이달 초 2027년까지 2만유로(약 3160만원) 수준 신형 전기차를 비롯해 신차 9종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폴크스바겐은 국내 시장에선 지난달 ‘ID.4’가 유럽 브랜드 중 전기차 1위에 오르기도 했다. 4월부터는 순수 전기 SUV ID.5도 국내에서 출고한다. BMW의 소형차 브랜드 미니도 이달 국내 시장에서 ‘더 뉴 올-일렉트릭 미니 에이스맨’ 등 전기차 3종을 동시에 내놨다.
유럽 전기차 전용 브랜드인 폴스타도 지난해 출시된 ‘폴스타4’에 이어 전기차 세단 ‘폴스타 5’가 올해 중반부터 글로벌 시장에 차례로 선을 보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