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욱(45·변호사시험 2회)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2021년 1월 로스쿨 출신으로 처음 서울변회 수장을 맡았다. 그리고 작년 1월 재선에 성공했다. 서울변회 회장 임기가 2년으로 바뀐 이후 첫 연임에 성공한 것이다. 이달 기준 전국 변호사는 2만9700여명인데 서울변회 소속은 2만2400여명으로 75.4%에 달한다.
최근 서울변호사회관에서 만난 김 회장은 “회원들로부터 ‘얼마나 많이 고민하고, 또 애쓰는지 잘 알고 있다’ ‘고맙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뿌듯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변호사 단체 회장은 회원들 위에서 군림하는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이 잘 굴러갈 수 있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허브(hub)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 회장이 서울변회 회장으로 있으면서 가장 중점을 두고 추진한 것은 징벌적 손해배상과 집단소송 확대,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 등 이른바 ‘민생 3법(法)’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악의적·반사회적인 가해 행위에 대해 실제 입은 손해보다 많은 액수를 배상하게 하는 제도인데 현재 제조물책임법에만 도입돼 있다. 집단소송은 피해자 집단 대표가 소송을 내 승소하면 다른 피해자들도 일괄적으로 권리 구제를 받을 수 있는 제도인데 증권 분야에만 제한적으로 도입된 상황이다. 디스커버리 제도는 민사 재판 전에 당사자들이 소송 관련 정보·증거자료를 서로 공개하는 것으로 미국에서 시행 중인데 아직 국내에 없는 제도다. 김 회장은 임기를 마친 이후에도 이들 제도의 확대 및 도입을 위해 힘쓰고 싶다고 했다.
◇“민생 3법, 변호사 비밀보호권 위해 노력”
-로스쿨 출신 첫 서울변회 회장으로 부담감이 컸을 것 같다.
“당연히 부담감이 컸어요. 최초의 로스쿨 출신 회장이었고, 기대만큼 우려도 많았거든요. ‘어떻게 하나 보자’며 다들 지켜보고 있었어요. 또 제가 비교적 젊은 편이었어요. 제가 알기로 역대 두 번째로 적은 나이에 회장직에 올랐습니다. 이런 면에선 부담감도 컸지만, 사실은 사명감이 훨씬 컸던 것 같아요. 그동안 변호사 단체에 대해 ‘직역 이기주의’가 세다는 오해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런 부분도 있지만, 변호사 단체가 예전부터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들을 많이 했는데도 잘 알려지지 않은 것도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기본적으로 국민과 법조계가 함께 윈윈(win-win)할 수 있는 것들을 주장한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향상시킬 수 있는 정책들을 추진하겠다’며 알리고 싶었어요.”
-어떤 시도들을 했나.
“‘민생 3법(法)’ 입법에 주력했어요. 징벌적 손해배상제 및 집단소송제 확대, 그리고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을 주장했습니다. 법률소비자인 개인이 기업이나 국가 기관을 상대로 송사를 벌일 때 ‘기울어진 운동장’을 보완하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건 제가 2015년 초대 회장을 맡았던 한국법조인협회에서 활동할 때부터 추진해왔어요. 그 결과 2021년 법원행정처에 디스커버리 제도 연구반이 설치됐고, 최근 대법관 청문회에서도 언급될 정도로 분위기가 바뀌었어요. 다만 국회 문턱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아무래도 이해관계자들이 많으니 까다롭죠. 그래도 그동안 목소리를 높여온 까닭에 정부와 법원, 국회 모두 민생 3법 필요성에 공감하는 편입니다. 어떻게든 최종 관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아직 할 일이 남았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겁기도 합니다.”
-민생 3법 외에도 힘쓴 게 있다면.
“변호사와 의뢰인 간 비밀 보호를 강화하는 의뢰인 비밀보호권(ACP·Attorney Client Privilege)을 위해서도 노력했어요. 현행 변호사법은 변호사에게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해서는 안 된다는 비밀유지 의무를 부과해요. 그런데 비밀 보호를 위한 권리는 별도로 규정하지 않았어요. 변호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금지하는 조항도 없는데, 헌법 정신에 비춰볼 때 너무 당연한 권리였기에 법 조항으로 만들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던 것이죠.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변호사 사무실에 대한 수사 기관의 압수수색이 이뤄지더니 지금은 상당히 빈번하게 이뤄지는 것 같아요. 수사 기관과 법원이 압수수색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겁니다. 하지만 변호사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이 암묵적 관행으로 굳어지면 곤란합니다. 의뢰인들이 더 이상 변호사를 신뢰할 수 없게 돼요. ACP 내용을 담은 법안이 최근에 국회에서 발의된 것은 바람직한 변화입니다.”
-가장 의미있는 성과를 꼽자면.
“변호사전문인배상책임보험(변호사가 업무 중 예기치 못한 실수나 사고, 갈등 등으로 발생한 손해에 대해 배상할 것을 대비해 가입하는 보험) 가입 지원입니다. 제가 1호로 추진한 사업이었어요. 이게 보통 1억 한도 배상인데, 연 가입비가 1인당 40만원 정도 됐어요. 근데 막 개업한 변호사들이 아까워서 가입을 안 하더라고요. ‘설마 사고 나겠어’하는 심정으로요. 그러면서 내심 불안해하는 상황이 안타깝더라고요. 우리가 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국내 모든 대형 보험사들을 불러서 무한 경쟁 입찰을 했어요. 보험사들은 반발했죠. 당시 저는 ‘서울변회 예산에 한도가 있으니까 계속 협의를 하는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고 설득했어요. 그 결과 지금은 1인당 6만원 정도로 비용을 낮췄어요. 이 비용을 서울변회에서 지원해 회원들은 사실상 무상으로 이 보험에 가입해요. 서울변회뿐만 아니라 전국 14개 지방변호사회 중에 13개가 동참하고 있습니다. 회원들은 안정감을 갖고 업무를 수행할 수 있고, 국민들은 믿고 일을 맡길 수 있게 된 것이죠.”
◇“로스쿨 제도 더 다듬어야”
-로스쿨 제도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인가.
“현재 대학진학률이 80%가 넘고, 고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더라도 추후 대졸 자격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폭넓게 보장되어 있습니다. 학업에 대한 의지만 있다면 누구든 로스쿨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셈이죠. 저는 개인적으로 로스쿨 제도로 인해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변호사가 되면서 ‘법조인들만의 리그가 존재한다’는 법조계를 향한 오해가 어느 정도 해소됐다고 봐요. 로스쿨 제도의 가장 큰 장점인 거죠. 법조계에 일한다는 건 어떤 특정 지위를 누리는 게 아니고, 여러 직업 중 하나로 보는 인식 전환이 이뤄진 것이죠. 변호사는 전문 자격을 취득한 사람일뿐이지, 과거처럼 특별한 지위를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변호사들의 눈높이가 이제 국민의 시선에 더 맞춰졌다고 생각합니다.”
-로스쿨 ‘간판’을 바꾸기 위한 시도도 많다.
“로스쿨 ‘간판’만 보고 재수·반수를 하는 건 솔직히 말리고 싶어요. 물론 의미가 있을 수 있습니다. 첫 취업 때 어느 학교 출신인지를 고려하는 로펌들이 있거든요. 특히 대형 로펌에서 일찍이 상위권 로스쿨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입도선매’ 방식으로 채용을 해서 이런 경향이 더 강해졌다고 봐요. 로펌들이 자체적인 채용 시스템을 가동하는 것에 대해선 왈가왈부할 순 없습니다. 근데 지금은 변호사시험 성적과 등수도 공개됩니다. 변호사시험 등수가 제일 중요하지 학교가 그렇게 중요하진 않아요. 이제는 출신 학교로 가르는 분위기는 상당히 사라진 것 같아요. 실제로 변호사가 되고 2~3년만 지나도 출신 학교는 큰 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자신이 다니던 로스쿨의 커리큘럼 때문에 학교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다른 로스쿨로 갈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로스쿨 관련 시급한 현안은 무엇인가.
“로스쿨 결원보충제(전국 로스쿨 입학생 중 자퇴·제적 등으로 결원이 생길 경우, 다음 해 신입생 모집에서 입학 정원에 결원 수만큼 충원해 선발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폐지입니다. 2010년 한시적으로 도입됐으나 기한을 연장하는 방식으로 지금까지 운영돼 왔어요. 로스쿨들이 손쉽게 재원을 마련하는 창구를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죠. 로스쿨이 매년 입학 정원에다 이전에 발생한 결원 수만큼 더해서 학생을 선발하면서 결과적으로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시험에 응시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요. 변호사시험 응시자가 누적되면서, 이른바 ‘변시 낭인’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자연 결원은 그대로 두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또 로스쿨들이 결원보충제 유지를 위해 편입학을 실시하지 않기로 사실상 담합했습니다. 편입학이 활성화되면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로스쿨 간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거든요. 학생들은 편입학할 수 없으니 로스쿨 재수·반수에 몰리는 것이죠. 법조인을 양성하는 로스쿨에서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에 따라 편법을 추구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이 논란에 있어서는 물러설 생각이 없습니다.”
◇“AI 변호사는 보조수단”
-법조계 일각에선 AI 변호사를 도입하자는 얘기가 있다.
“변호사들이 반성할 부분도 있습니다. 근데 AI(인공지능) 변호사를 얘기하는 것 자체가 변호사라는 직업을 정말 우습게 알고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소송은 하나의 생물입니다. 결론이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변호사는 한 사안을 접했을 때 머릿속에 각종 변수를 고려하고 반영합니다. 이러한 조율을 통해 종합적인 소송 전략을 구상하게 됩니다. 근데 과연 AI가 이러한 역량을 능동적으로 발휘할 수 있을까요? 정형적인 질문을 던지면 그럭저럭 정제된 답변이 나오겠죠. 하지만 개개인의 상황은 정형화될 수 없습니다. 변호사는 의뢰인의 상황을 법적으로 분석해서 정리하고, 수많은 대응책 중에서 가장 효율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AI는 냉정하게 말해 조금 더 나은 검색시스템 정도입니다. 법률 전문가의 보조수단·도구로서는 기능할 순 있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변호사 3만명 시대에 ‘좋은 변호사’란 무엇인가.
“어떤 분들은 경청을 통한 공감을 중시하고, 어떤 분들은 해결 방법에 집중하죠. 스타일이 다양해 정답은 없는 것 같아요. 다만 나쁜 변호사가 뭔지는 잘 알 것 같습니다. 무턱대고 소송을 권한다거나, 이 소송에서 ‘이긴다’ ‘진다’라고 단언하는 변호사들을 조심하세요. 저는 소송 과정에서 서로 합의할 수 있는 여지가 보이면, 최대한 상대편 이야기를 듣고 조율하면서 돌파구를 먼저 찾아요. 일을 키우는 방향으로 가면 안 됩니다. 그리고 고객들에게 이긴다, 진다 얘기는 절대 하지 않습니다.”
-두번째 임기도 곧 끝난다. 앞으로 계획은.
“제가 그동안 추진한 입법에 좀 더 힘이 실릴 수 있길 바라고 있습니다. 서울변회 회장으로 지난 4년간 맺은 여러 관계와 쌓아온 성과들을 토대로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