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 전 세계를 아우르며 가장 급성장한 경영 트렌드를 꼽는다면 바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과 함께 ESG를 내세웠던 자산 운용사들의 행태에 대한 비판이 나오긴 했지만, 이는 ‘2050 탄소 중립’이란 세계적 움직임 속에서 ESG라는 거대한 흐름을 쉽게 바꿀 수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회계 기준과 같이 ESG 공시, 투자, 평가 전반을 아우르는 제도화 움직임도 활발하다. 아직은 GRI(글로벌 보고 이니셔티브) 스탠더드, TCFD(정보 공개 프레임워크), SASB(지속 가능성 회계 기준 위원회) 스탠더드 등과 같은 자율 지침을 각 기구에서 내놓고 있지만, 국가와 지역별로 ESG 공시 의무화는 임박했다. EU(유럽연합)와 미국이 ESG 공시 의무화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IFRS(국제회계기준)재단은 IASB(국제회계기준위원회)와 별도로 산하에 ISSB(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를 설립하기도했다.
◇EU·미국 등 제도 추진 활발
EU는 NFRD(비재무 정보 공시 지침)와 이를 개정해 지난해 내놓은 CSRD (지속 가능성 보고 지침)를 기반으로 ESRS(유럽 지속 가능성 보고 기준)를 내놓고, 내년(2024회계연도)부터 기업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적용한다. 각 회원국은 ESRS에 따라 국내법도 마련한다. EFRAG(유럽재무보고자문그룹)는 지난해 5월 ESRS 초안을 발표한 데 이어 올 6월까지 환경·사회·지배구조 등 주제에 따른 공시 기준을 확정할 방침이다.
미국 역시도 SEC(증권거래위원회)가 기후 관련 리스크 정보 제공을 위한 공시 의무화 초안을 지난해 3월 발표한 데 이어, 올해부터 단계적으로 관련 의무를 적용한다. 이에 따라 올해 시가총액 7억달러(약 1조원) 이상 기업부터 온실가스 배출량을 공시하고, 검증 의무를 적용받게 된다.
IFRS재단이 2021년 11월 설립한 ISSB는 다음 달 IFRS 지속가능성공시기준 최종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도입 여부와 적용 시점은 각국에 맡길 것으로 알려졌다. IOSCO(국제증권관리위원회기구), FSB(금융안정위원회), WEF(세계경제포럼), G20(주요 20국) 등이 지지 의사를 밝히면서 글로벌 지속 가능성 공시의 기준선 역할이 기대되고 있다.
◇해외 트렌드 반영…기업 의견 들어야
ESG 공시가 제도화되면서 해외 증시에 상장됐거나 현지 법인을 보유한 기업, 일정 규모 이상 사업을 하는 국내 기업들도 ESG 공시의 영향을 받게 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금융위원회가 2025년부터 국내 ESG 공시를 단계적으로 의무화하겠다는 일정을 밝혔다. 회계기준원도 올 1월 KSSB(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를 세우고 국내에서 적용할 ESG 공시 기준을 검토 중이다.
국내 기업들 역시 ESG 공시 시행을 앞두고 ESG 경영에 더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9월 2050년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는 ‘신(新)환경 경영 전략’을 발표하면서, 경영 전반 패러다임을 ‘친환경 경영’으로 이동했다. 공정 가스 저감, 폐전자제품 수거 및 재활용, 수자원 보존, 오염 물질 최소화 등에 2030년까지 총 7조원 이상을 투자할 계획도 내놨다. 세계 3대 자동차 업체로 성장한 현대차·기아는 올해 2월 국제 비영리 환경 기구인 ‘탄소 정보 공개 프로젝트(CDP)’의 CDP 공급망 관리(Supply Chain)에 가입하고, 공급망 전반의 탄소 배출 관리 현황을 제출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4~5월에는 1차 협력사 360여 회사를 대상으로 온·오프라인 교육도 진행했다.
포스코는 바다 숲 조성과 해양 폐기물 수거 등 생물 다양성에 ESG의 초점을 맞추고 있고, 롯데는 ‘2040년 탄소 중립’을 목표로 재생에너지 전환, 탄소 포집, 에너지 효율 개선, 수소 에너지, 연료 전환, 무공해차 전환 등 6대 핵심 저감 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 대기업 중 녹색 경영을 가장 활발히 펼쳐온 SK그룹은 올 들어 축구·농구·핸드볼 등 스포츠로 ESG 경영의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ESG의 취지에 동감하면서 확대를 추진하고 있지만, ESG 공시가 기업 경영에 큰 부담이 돼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해외보다 과도하게 엄격한 기준을 만들어 스스로 발목을 잡게 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조영준 대한상의 지속가능경영원장은 “해외 기준을 무시할 수 없다”면서도 “ESG 공시를 국내에 도입할 때에는 기업들 의견을 들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