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마다 지방선거가 끝나면 자치구들은 으레 구정 목표를 담은 ‘슬로건’을 새 것으로 교체한다. 간결한 문구와 이미지로 구민들에게 구정을 효과적으로 홍보할 수 있지만 비싼 제작·배포 비용으로 ‘전시행정’으로 비난받는가 하면 타 지자체와 표절 시비가 불거지기도 한다.

이전 구청장 재임 당시 만든 강남구의 슬로건. '미미위'가 뜻하는 바를 알기 어렵다는 지적과 함께 로고가 탁구채를 닮았다고 해서 주민들의 빈축을 사고 있다./ 조선일보DB

◆슬로건 교체 비용 ‘상상초월’

서울 강남구(구청장 조성명)는 슬로건 교체를 추진 중이다. 이전 구청장 때 슬로건으로 내세운 ‘미미위(MEMEWE) 강남’이 전달하는 뜻이 불분명하고 아이콘은 탁구라켓을 연상시킨다는 비판이 일면서 ‘세금낭비’라는 지적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당장 철거하려고 해도 ‘비용’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강남구는 2022년 한 해 동안 22개의 ‘미미위’ 관련 조형물을 설치하는데만 20억원 가량이 들었다고 밝혔다. 새로운 슬로건을 제작하려면 디자인 비용은 물론 관내 미미위 조형물을 새 것으로 모두 교체해야 하는데 이때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구는 예상하고 있다. 강남구 관계자는 “현재 조형물이 강남구와 연관이 적다는 의견이 많아 슬로건을 교체하고 싶은데 철거 비용 때문에 고민중”이라고 말했다.

◆표절 시비·정치색 논란 등 구설수에도 올라

전국의 자치단체장이 바뀔때마다 슬로건이 교체되다 보니 ‘표절 시비’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강동구(구청장 이수희)는 지난해 7월 ‘강동을 새롭게, 구민을 신나게’라는 새로운 슬로건을 발표했다. 발표 당시 구정 혁신을 통해 변화하는 강동구를 만들겠다는 구의 포부를 담았지만 충남 아산시의 ‘아산을 새롭게, 도민을 신나게’, 대전 동구의 ‘동구를 새롭게, 구민을 신나게’ 등 일부 자치단체와 문구가 겹친다는 비판을 받았다.

관악구(구청장 박준희)는 ‘더불어으뜸 관악’ 슬로건을 발표한 후 박 구청장의 소속정당인 더불어민주당을 표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슬로건의 글자색도 민주당의 당색인 파란색이다. 이에 대해 관악구는 “지나친 해석”이라며 “같이·함께를 의미하는 ‘더불어’의 일반적 의미로 사용하 것”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송파구는 작년 12월 28일 새로운 구 로고와 캐릭터를 공개했다. 송파구는 이전에 사용하던 구 로고가 기업의 로고와 유사하다는 주민들 의견을 수렴해 교체에 나섰다고 밝혔다./ 송파구

◆자치구 “안할 수는 없어” ···주민 의견 최대한 반영

그럼에도 자치구에서는 여전히 슬로건을 만들고 있다. 구정을 홍보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소위 ‘티가 나는’ 홍보 방편이기 때문이다. ‘울며 겨자먹기’로 하는 경우도 있다. 한 자치구 관계자는 “지난 구청장의 뜻이 담긴 슬로건을 계속 사용하는 것도 사실상 맞지 않는 일”이라며 “많은 예산이 들더라도 (슬로건을)교체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자치구에서는 ‘큰 돈 들여 만든’ 슬로건이나 구의 대표 로고·캐릭터가 정작 주민들에게 외면받는 일을 피하기 위해 제작 단계에서 주민 의견을 최대한 수렴하고 있다. 송파구는 지난 구청장 재임 당시 제작해 배포한 송파구 ‘로고’가 전북은행 로고와 비슷한다는 주민 설문에 따라 지난 12월 새로운 로고를 만들었다. 도봉구에서는 구 상징물인 은행나무와 학을 본따 만든 구의 마스코트의 이름을 주민 공모를 통해 짓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