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 아파트가 재건축을 추진할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안전진단 절차를 위해서는 비용이 든다. 당연히 재건축을 추진하는 아파트 주민들이 내야 하는 돈이다. 이를 구청이 먼저 내주고 나중에 재건축이 끝나고 나서 환수하면 어떨까. 안전진단비가 한 단지당 억대를 넘기 때문에 이런 장애물을 최대한 없애는 것이 재건축 속도를 높이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데서 나온 발상이다.

노원구는 ‘재건축 안전진단 비용지원 조례 개정’을 위한 주민 서명 운동을 진행 중이다. 사진은 노원구 아파트 단지 모습./ 뉴스 1


실제로 이 비용을 지원해 주는 ‘재건축 정밀안전진단 비용 지원’ 조례가 지난 12월 19일 열린 서울시의회 제 315회 정례회 제 4차 주택공간위원회에 상정됐다. 서준오(노원4)의원이 대표 발의한 ‘서울특별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이다. 하지만 서울시는 형평성과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반대하는 입장이다. 조례가 보류되자 시의원들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은 입장문을 내고 “안전진단은 비용 모금에만 1~2년 이상이 소요되기 때문에 재건축 초기 단계부터 사업이 지연된다”며 “조례안의 빠른 통과를 기대하는 각 자치구 지역주민들의 염원을 무시한 채, 향후 상황을 보고 판단하겠다며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한 주택정책실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자치구도 지원에 나섰다. 서울 자치구 중 안전진단 추진 단지가 32개로 가장 많은 노원구는 “국토부가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을 완화해 줘 사업에 속도가 붙으려는 차에 (조례안이) 보류돼 안타깝다”며 “안전진단 비용 지원을 통한 신속한 재건축 추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노원구는 조례안 통과를 위한 주민 서명운동을 진행 중이다. 구청들이 반발하는 것은 광명시를 포함한 수도권 일부 지자체에서 노후 아파트 단지에 대한 정밀안전진단 비용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특정 아파트 단지의 주민들을 위해 공공의 시·구비를 투입하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도 만만치 않다. 지원 비용을 준공 전에 돌려 받는다고 해도 애초에 수익 사업인 재건축은 ‘수익자부담원칙’에 따라 재건축 조합원들이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산 문제도 있다. 최근 서울시가 5년간 실시한 단지별 평균 안전진단 비용은 1억 4000만원 선이었다. 안전진단 대상 단지들에 필요한 비용을 서울시나 자치구에서 전액 부담할 경우 10년 간 매년 약 150여 억원 가까운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또 평균 안전진단 비용을 세대수로 나누면 10여 만원 선으로 실질적인 부담이 크지 않은 만큼 비용을 시·구비로 지원하는 것이 예산 편성 등으로 오히려 사업을 지체시킬 수 있어 역효과라는 목소리도 있다.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재정자립도가 낮은 자치구에서 모든 안전진단 비용을 지원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구조안전성 비중을 30%로 조정하는 등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을 완화한 효과를 충분히 지켜본 후 (안전진단 비용 지원을)검토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