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주가지수 제공업체인 FTSE러셀은 지난 24일 뉴욕 증시 마감 후 주가지수 종목 분류를 재조정했다. 이에 따라 세계 최대 소셜미디어업체인 메타(옛 페이스북)는 성장주(미래 가치가 높은 기업 주식)에서 가치주(성숙했지만 성장이 완만한 기업 주식)로 자리를 이동했다. 그동안 빅테크 기술주의 대표 기업 중 하나였던 메타가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성장을 하기는 어렵다고 시장이 판단을 내린 것이다.
메타가 휘청거리는 근본 원인은 페이스북의 혁신 부족이다. 최대 경쟁자인 틱톡이 짧은 분량의 ‘쇼트폼’으로 급성장하는 반면 페이스북은 젊은 세대를 끌어들일 수 있는 혁신 기술 개발을 등한시했다. 페이스북이 미래 먹거리로 삼은 메타버스 사업도 신통치 않다. 이 사업에서는 지난해에만 100억달러(약 12조8500억원)의 손실을 봤다.
미국 기술 기업을 대표하는 ‘FAANG(페이스북·아마존·애플·넷플릭스·구글)’의 한 축을 담당했던 메타의 몰락은 혁신을 이루지 못하고, 신성장 동력 발굴을 하지 못하면 어느 기업이든 추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한 IT업계 관계자는 “포스트 코로나와 4차 산업혁명이 맞물린 산업 격변기에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혁신적인 기술을 보유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국내 기업 신성장 동력 발굴에 1000조 투자
현재 글로벌 경제에서 벌어지는 원자재 대란과 물가 인상, 소비심리 위축과 같은 각종 위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국내외 기업들은 기술 혁신을 통한 신성장 동력 발굴에 매진하고 있다. 이미 구글·애플·아마존과 같은 글로벌 기업들은 자율 주행·AI(인공지능)·블록체인 같은 새 시장 개척에 나선 상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지난 18일 약 2주간의 유럽 출장에서 돌아온 뒤 소감을 묻는 취재진에게 “아무리 생각해봐도 첫 번째도 기술, 두 번째도 기술, 세 번째도 기술 같다”고 말했다.
반도체와 배터리, 자동차용 전자 장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글로벌 업체들의 치열한 기술 경쟁 현장을 둘러보고 온 뒤 삼성의 미래를 위해서는 신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이 부회장 귀국 이틀 만인 지난 20일 삼성그룹 전자 계열사 사장들은 긴급 회의를 열고 글로벌 시장 현황과 전망, 사업 부문별 리스크 요인 점검, 전략 사업 및 미래 먹거리 육성 계획 등을 논의했다. 우수 인재를 확보하고 신성장 동력을 찾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 마련을 시작했다. 노키아·코닥처럼 과거 업계 최고의 자리에 안주하다 혁신을 게을리해 몰락한 전례를 답습하지 않기 위한 것이다.
혁신의 필요성을 절감한 국내 기업들 또한 신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과감한 투자에 나서고 있다. 지난달 말 삼성·현대차·SK·LG·롯데·포스코·한화·GS·현대중공업·신세계·두산 등 국내 주요 그룹은 앞으로 5년간 무려 1060조6000억원을 국내외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투자 분야는 반도체·배터리·바이오·AI·친환경·수소·디지털과 같은 신사업이다. 현재 그룹의 주력 사업에서 벌어들인 돈을 신성장 동력을 찾는 데 쏟아붓겠다는 것이다.
◇정부도 규제 개선으로 기업 혁신 뒷받침
기업의 과감한 투자 계획에 정부는 규제 개혁에 나서겠다고 했다. 한국 경제를 이끌어가는 기업들이 혁신의 성과물을 얻을 수 있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에 나선 것이다. 지난 10일 정부는 규제개혁위원회를 열고 전기차·수소차, 풍력, 드론, ICT(정보 통신 기술) 융합, 바이오·헬스케어 등 신산업 현장의 기업 애로 사항 33건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규제 개선 과제 33건 중 3건은 개선을 완료했고 나머지 30건은 신산업 현장에서 빠르게 체감할 수 있도록 법령 정비, 행정 조치 등을 신속히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또한 산업통상자원부는 1조원 규모의 산업 기술 혁신펀드를 조성해 연구·개발이 사업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돕고, 4000억원 이상을 투입해 글로벌 시장을 선도할 미래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산업 기술 혁신 전략도 최근 발표했다.
유정주 전경련 기업제도팀장은 “신성장 동력을 찾으려면 장기적인 안목과 비전을 바탕으로 유망한 분야를 선택해서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한다”면서 “인수합병(M&A)이나 오픈 이노베이션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새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