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결혼 50주년을 맞은 독자 심영섭씨는 말합니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고.

50년 세월 간 얼마나 많은 추억을 쌓으셨을까요. 나이테처럼 촘촘히 인생의 결을 단단히 채우시는 모습이 글 속에서도 사뭇 느껴집니다. 아내를 위해 흔쾌히 바다 밖 여행을 결정한 남편 분의 마음과, 회사 일로 같이 함께 하지 못해 주위에 신신 당부하는 남편 분의 애정까지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영섭씨의 1호 명품은 이 모든 사랑과 애정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물론 단지 물건으로 형용하기 어려운 마음의 크기는 서울과 파리를 왕복하고도 남겠지만요. 신혼부터 50년간 조선일보와 함께 한 시간을 모두 다 풀어내 드리진 못해도, 이렇게 나마 지면으로 남겨 드릴 수 있어 감사한 기분입니다. ‘금혼식’까지, 올해 최고의 시간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이번 달 ‘당신의 명품’ 코너는 경기도 수원에 사는 심영섭씨의 사랑과 추억이 담긴 구찌가방 스토리를 소개합니다.

/독자 심영섭씨 제공

점심시간 회사 구내식당에서 마주앉은 부부. 말쑥하게 차려입은 아내의 갑작스런 방문에 남편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저는 이때다 싶어 또박또박 말을 시작했습니다. “보너스 좀 주시면 안 될까요? 여행을 다녀오고 싶어요. 여행지는 서유럽 7개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스위스 네덜란드 등을 갈 거고 총 18일 일정으로 경비는 250만원 들어요.”

어안이 벙벙해진 남편을 바라보며 속으로 조마조마했지요. 간덩이가 부어도 유만부득이지, 맡겨놓은 것마냥 내놓으라고 호통을 쳐댔으니 남편은 기가 막혔을 테고, 아마 저를 모른 척해도 할 말이 없었을 겁니다. 1988년 11월 3일 유럽으로 드디어 출발하게 되었고, 압박과 설움에서 해방된 새벽녘 으스름한 안개가 낀 에펠탑 앞에 근사한 패션 모델 뺨치게 포즈를 취한 나.

어머! 여기가 정말 말로만 듣고 사진으로만 봐왔던 거기가 맞나? 옛적 이름 불란서 파리 에펠탑에 내가 지금 와있는 거라고? 저를 빼고 동행이 14명, 모두 부부 동반의 60대 어르신들이었지요. 사실 유럽 출발 당일 김포공항에 남편이 배웅을 해주며 여행 일행 분들께 직장으로 같이 못 가니 저를 잘 부탁 드린다고 점잖게 경고 아닌 경고장을 내밀고 갔답니다. 여행 내내 앞뒤로 보디가드 당하면서 감시를 받게 됩니다. 사실 올림픽 이후라 가는 곳마다 코리아 코리아 하면서 각광을 받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드디어 이탈리아 스페인 광장 계단 앞에서 자유 시간. 세계 굴지의 명품 매장이 즐비한 거리. 사람들의 꽁무니에 이끌려 들어선 곳이 바로 구찌 매장.

갈색의 구찌 문양이 있는 숄더백을 두 손으로 맞아드려 고이 가슴에 담아 인생 1호의 명품으로 간직하였습니다. 금년 2022년 1월, 저는 눈이 번쩍 띄었지요. 리들리 스콧 감독이 연출한 ‘House of Gucci(하우스 오브 구찌)’란 영화! 영화관으로 달려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다가, 아! 거기서 옛날 구찌백 샀던 바로 그곳이 떠억하니 나오는데 아드레날린이 솟으며 머리가 쭈뼛서는 감동으로 속으로 몇 번이나 ‘세상에 이런 일이’라고 외쳤는지 모릅니다. 부리나케 돌아와 그동안 몇 번이나 불귀의 객이 될 뻔한 눌려서 납작하고 거칠게 말라붙은 백. 바나나 껍질로 문지르고 신문지를 채워 넣으니 다시 살아나는 겁니다. 어제 간 듯 생생히 떠오르는 그때의 여행 추억처럼, 구찌 가방도 그렇게 오랜 세월을 입고도 어제 산 것처럼 제 설렘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그렇게 사진 찍어봤더니 이렇게 다시 꺼내 볼 계기가 되네요. 제 나이 77세. 결혼 50주년 금혼식이 있는 해입니다. 조선일보를 신혼부터 구독했으니 이 또한 50주년 구독자라고 자랑스럽게 말씀드리며, 이 지면을 통해 34년이 지난 그날의 사진 앨범을 통해서 즐거움을 찾습니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사나 봅니다. 2022년 4월 5일 수원에서 심영섭 드림.


더부티크에서 ‘당신의 명품’ 사연을 모집합니다. 명품과 얽힌 여러분들의 사연을 자유롭게 보내주세요! 선택된 분께는 아래와 같은 혜택을 드립니다.

▲모집기간:4월 22일(금) ~ 5월 15일(일)

▲참여방법: QR코드에 접속하거나 jihee@chosun.com으로 사연을 남겨주세요!

▲이벤트 혜택: 신세계백화점 상품권 5만원권 2장+ 5월 더부티크 지면에 사연 게재(상품권은 모두 모바일 쿠폰 형태로 제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