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선호 현상과 지역 주력산업 침체로 울산의 청년 인구가 갈수록 줄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울산의 청년 인구는 2018년 31만9000여 명에서 2020년 28만 4000여명으로 11%가량 감소했다. 3만5000명이 줄어들었다. 한 해 1만7000명 이상의 청년들이 울산을 떠난 것이다. 울산시는 이 같은 ‘청년 가뭄’에 대응하기 위해 청년 벤처·창업을 역대 최대로 지원하며 청년잡기에 나섰다.

생산직을 기피하는 2030 세대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한편 전통 제조업에 AI(인공지능), IoT(사물인터넷), 바이오 같은 신산업 적용을 앞당겨 산업수도 울산의 제2의 도약기를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지난 9월 울산 남구 옥동에 있는 청년 창업지원공간 톡톡 스트리트에서 각종 원데이 클래스가 열려 참가자들이 모여 있다. /울산경제진흥원 제공

◇지역 벤처·창업 투자로 신산업 키운다

지난 14일 찾은 울산 남구 두왕동 울산정보산업진흥원에 있는 벤처기업 ‘인터엑스’ 연구실. 20~30대 연구원 5명이 LG전자의 고해상도 디스플레이 TV 패널의 불량을 찾는 AI기술 작업에 한창이었다. 이 회사는 요즘 LG전자 평택공장에서 만드는 고감도 디스플레이 품질을 검사하는 장비에 자체개발한 AI프로그램 ‘인스펙션 AI’를 적용시키고 있다.

박정윤 인터엑스 대표는 “LG는 해외 공장이 많은데 공장마다 직원 숙련도에 따라 품질 완성도가 다를 때가 있다”며 “AI기술을 적용하면 동일한 품질력을 확보할 수 있어 기업들 관심이 높다”고 했다.

울산대, 유니스트를 졸업한 박 대표가 2018년 20~30대 직원들과 만든 인터엑스는 3년 만에 매출이 1억 5000만원에서 50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직원도 울산 본사가 35명, 서울 지사는 15명 등 50명이나 된다. 내년엔 추가로 50명을 더 뽑을 계획이다. 매출도 100억원대를 예상한다. LG전자, 롯데케미칼, 현대모비스, 오뚜기, 삼양사, 종근당 등 다양한 분야의 제조업체에 자체개발한 AI기술을 접목하고 있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GE디지털 등 글로벌 기업에서도 협업 요청이 들어올 정도다.

인터엑스는 지난 5일 울산시가 경남도, 한국모태펀드, 덕산하이메탈 등과 230억원 규모로 조성한 ‘스마트그린뉴딜 창업벤처펀드’ 1호 투자기업으로 선정돼 30억원의 투자를 받게 됐다.

기금의 펀드운용사인 ‘라이트하우스 컴바인 인베스트먼트’의 조태훈 펀드매니저는 “제조업 공장마다 AI나 IoT기술을 적용하면 불량율을 낮추고 인건비를 절감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며 “중견, 중소기업 제조과정도 혁신할 수 있어 미래가 유망해 인터엑스 투자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기금 운용사들은 2호 투자기업으로 해양 무인선박을 개발중인 벤처기업 씨드로닉스에 대한 투자를 검토 중이다. 울산시와 운용사는 기금액의 45%는 울산 소재 기업에 투자해 지역 경제 활성화 효과를 낼 계획이다.

울산 벤처기업 5개사가 입주한 울산벤처빌딩에서도 각종 성과가 나고 있다. 입주기업인 DNCT주식회사는 국내 최초로 폐지수분을 측정해 재활용하는 시스템을 특허 출원해 국산화를 이끌고 있다. 기존엔 이 기술을 독점한 7억원짜리 헝가리 제품을 써야했지만, DNCT의 제품은 3억원 중반대로 제지회사들이 비용을 아낄 수 있다.

울산 벤처기업 육성 사업을 하고 있는 울산경제진흥원은 벤처기업들의 브랜드 개발에 최대 300만원, 인증지원은 200만원, 시제품 제작엔 100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올해 30개사, 지난해 34개사가 지원을 받았다.

2010년 시작돼 울산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청년 CEO육성사업은 과학기술 분야 뿐 아니라 음식업, 문화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창업을 돕는다. 올해 기준 팀당 최대 1650만원을 지원받았고 그동안 팀당 평균 800만~900만원씩 지원이 이뤄졌다. 울산경제진흥원 최도학 청년CEO사업 매니저는 “올해만 이 지원을 통해 39개팀이 창업했고, 창업팀 외에 50명을 고용하는 성과도 냈다”며 “사회경험이 별로 없는 창업 청년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14일 찾은 울산 남구 두왕동 울산정보산업진흥원에 있는 벤처기업 ‘인터엑스’ 연구실에서 20~30대 연구원들이 AI프로그램을 살펴보고 있다./인터엑스 제공

◇울산과기원·울산대 산학협력이 이끈 창업붐

울산에 최근 벤처·창업 붐이 시작된 것은 울산대학교와 울산과학기술원(UNIST·유니스트)의 교수, 학생들이 벤처창업에 뛰어들면서다. 유니스트엔 현재 교원 주도로 창업된 곳이 50여곳, 학생 주도로 만든 창업기업은 60여곳에 달한다. 울산대 역시 학생 창업팀이 20개, 참가학생이 72명이나 된다. 두 학교는 서로 교류하며 성과를 내고 있다. 울산경제진흥원 박석윤 창업육성팀 과장은 “유니스트의 경우 코스닥 상장 기업까지 나오는 등 창업이 활발해 울산의 기술개발 분야 창업을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엔 ‘울산 1호 벤처기업’으로 유명한 덕산 하이메탈의 이준호 회장이 유니스트에 사재 300억원을 기부하면서 지역 벤처 기업들이 도약의 전환기를 맞게 됐다. 유니스트는 기부액 중 150억원을 창업 생태계 조성을 위한 ‘챌린지융합관’ 건립에 쓸 계획이다. 챌린지융합관에선 학생·교수 창업 공간뿐 아니라 외부인들의 수강코스를 마련하고, 지역 산업체, 외부 투자자들의 참여도 적극적으로 꾀할 전망이다. 이 건물의 총 사업비는 450억원으로 국비 300억원을 추가로 지원받아 2025년 준공할 계획이다.

송철호 울산시장은 “울산을 동남권을 아우르는 청년 창업의 메카로 키울 수 있도록 각종 지원책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