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청송 주왕산 주산지(注山池)는 18세기 조선시대 완공한 농업용 저수지다. 아무리 가물어도 300년이나 물이 마른 적 없다고 한다. 산으로 둘러싸인 주산지의 아늑한 풍경은 사시사철 언제 봐도 한 폭의 그림 같다. /청송군 제공

경북 청송(靑松)은 지명 그대로 푸른 소나무가 병풍처럼 둘러쳐진 고장이다. 봉화, 영양과 함께 경북 대표 오지로 꼽힌다. 2016년 말 당진~영덕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접근성이 좋아졌다. 하지만 면적의 82%가 산지인 탓에 청송은 여전히 첩첩산중이다. 역설적으로 표현하면 청송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산골짜기마다 때 묻지 않은 자연과 비경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잡힐 듯하면서도 횡포를 부리는 코로나 장기화 시기에 어딘가 훌쩍 떠나 청정 자연을 품고 싶다면 청송이 제격이다. 어느 곳을 방문하더라도 발길 닿는 곳마다 작은 위로와 휴식이 될 풍광이 펼쳐져 있다.

◇지역 랜드마크 된 ‘산소카페 청송정원’

상주~영덕고속도로를 타고 청송 톨게이트를 지나자 건너편 야산에 ‘산소카페 청송군’이란 커다란 입간판이 눈에 띈다. 산소카페라는 글귀에 차창을 내리고 마스크를 벗었더니 신선한 공기가 코끝을 스쳤다. 파천면사무소 앞을 지나 진보면 방향으로 산모퉁이를 돌아서는 순간,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드넓은 꽃밭이 펼쳐졌다.

파천면 신기리 용전천변 13만6000㎡(4만2000평) 부지에 조성된 ‘산소카페 청송정원’이다. 지난 9월 1일 개장한 이곳에는 두 달 만에 10만여 명이 방문했다. 청송군민 2만4600명의 4배가 넘는 관람객이 찾은 것이다. 청송군이 ‘꽃길만 걷게 해줄게’라는 캐치프레이즈로 공원 내에 조성한 국내 최대의 백일홍(百日紅) 단지 덕분이다. 꽃을 가꾼 사람들은 바로 청송군민들이다. 새마을회와 이장연합회 등 청송군 내 17개 단체가 나서 1억 송이의 백일홍 씨를 뿌려 꽃밭을 만들었다.

산소카페 청송정원에는 야자 매트를 깔아 걷기 좋은 꽃밭길이 있다. 그네의자, 사과 모양의 벤치 등도 설치돼 주변 풍광과 잘 어울려 어떤 각도에서도 사진촬영에 적합하다. 정원 곳곳에는 인기 포토존 10곳이 있다. 거대한 액자 속에 꽃밭을 예쁘게 담은 ‘천국의 계단’, 난간을 유리로 두른 높이 16.5m의 전망대 등이다. 이 가운데 백미는 쭉 뻗은 노송(老松) 근처에 있는 ‘청송 드림’ 거울이다. 가로 100cm, 세로 40cm쯤 되는 거울 속에 나지막하게 펼쳐진 산자락을 배경으로 알록달록 꽃봉오리들 속에 선 ‘나’의 모습을 사진 속에 담을 수 있다.

현재 청송공원 내에는 청보리가 자라고 있다. 지난달 초 청송군과 주민들이 백일홍 꽃밭에 씨를 뿌린 것이다. 청송군 관계자는 “백일홍이 지고 나면 청보리를 심어 초록 물결이 넘실거리는 멋진 풍경을 연출해 관람객에게 선사할 계획”이라며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떠오른 산소카페 청송정원은 이제 사계절 명품 정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왕산은 사계절 빼놓을 수 없는 청송의 대표 여행지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에 등재된 지질 명소 24곳 중 9곳이 주왕산에 있다. /청송군 제공

◇전설과 비경 가득한 명소 주왕산

느린 걸음으로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즐기는 산림욕은 요즘 같은 때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선사한다. 2013년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 국립공원 주왕산은 설악산, 월출산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암산(岩山) 중 하나다. 산세가 돌로 병풍을 친 것 같다고 해서 ‘석병산(石屛山)’으로도 불린다. 병풍바위, 시루봉, 학소대 등 기암괴석(奇巖怪石)이 널려 있다. 여기에 완만한 등산로가 깔려 있어 초급자도 어렵지 않게 등산을 즐길 수 있다. 주왕산국립공원 입구에 있는 대전사(大典寺)에서 용추폭포까지 2.2㎞ 구간은 주왕산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트레킹 코스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에 등재된 지질 명소 24곳 중 9곳이 주왕산에 있다. 청송의 지질 명소를 보고 싶다면 신성계곡을 추천한다. 길안천 따라 이어지는 15㎞ 구간에 방호정, 신성리 공룡발자국 화석, 만안자암 단애, 백석탄 포트홀 등 지질 명소가 모여 있다. 가장 하류에 있는 백석탄(白石灘)은 신성계곡의 백미다. ‘하얀 돌이 반짝이는 개울’이란 이름처럼 하얗고 눈부신 퇴적암이 계곡에 깔려 있다.

주왕산을 찾으면 용추폭포, 용연폭포도 꼭 봐야 할 볼거리다. 그중 으뜸 명소는 바로 ‘주산지’이다. 1720년 조선 경종 때 농사에 필요한 물을 저장하기 위해 만든 저수지다. 물 아래로 뿌리를 내린 수백년 된 아름드리 버드나무는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자연이 그린 수묵화 같다. 주산지는 아름다운 물안개를 담기 위해 사진작가들이 자주 방문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뒷짐 지고 걷다보면 신선이 따로 없다. ‘하늘아래 이처럼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으로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곳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자연 경관 속 고즈넉한 송소고택

청송 파천면 덕천마을에는 ‘99칸 고택’으로 꼽히는 송소고택이 있다. 1880년 조선 영조 때 만석꾼 소리를 들은 심처대의 7세손 송소 심호택이 지은 집이다. 송소고택은 격식을 갖춘 건물들의 웅장함과 아름다운 흙 돌담길이 어우러져 독특한 멋을 풍긴다. 솟을 대문을 지나 우측에 작은 사랑채가 있고 그 뒤로 안채가 있다. 안채는 전체적으로 ㅁ자형을 이루고 있으며 대청마루에는 세살문 위에 빗살무늬의 교창을 달았다. 건물에 독립된 마당이 있으며, 공간이 구분되어 있는 등 만석의 부를 누린 조선시대 영남 대부호 고택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다.

따뜻한 온돌방에 하룻밤 묵고 한옥의 운치를 즐길 수 있도록 유료숙박도 가능하다. 여기에 떡메치기와 다도체험, 사과 따기 등 청송군의 특색을 살린 행사 기간을 잘 맞춰 가면 송소고택의 매력을 한층 더 느낄 수 있다. 송소고택 외 송정고택, 창실 고택 등 덕천마을에는 숙박 체험이 가능한 고택이 많다. 편안한 리조트를 원하면 ‘소노벨 청송’을 권한다. 이곳은 온천 시설을 갖춰 여행으로 쌓인 피로를 풀기에 제격이다.

아늑한 풍광을 선사하는 청송 무포산 자작나무 숲은 8만㎡ 규모로, 식재한 지 25년을 넘긴 자작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뤘다. /청송군 제공

◇새하얀 이국적인 풍경, 무포산 자작나무 숲

요즘 청송 여행 코스로 새롭게 뜨는 곳이 무포산에 조성된 자작나무 숲이다. 조용해서 쉬어 가기에 좋은 숲이라서 찾는 이가 늘고 있다. 914번 지방도를 따라 청송 방향으로 차로 10분 거리를 달리면 자작나무 숲으로 향하는 임도가 시작되는 곳이다. 여기서 4㎞를 들어가면 자작나무 숲을 만날 수 있다. 굽이굽이 이어진 좁은 임도를 달리다 보면 어느새 쭉쭉 뻗은 자작나무 하얀 줄기가 눈앞에 나타난다.

자작나무 숲은 1996년부터 청송군이 무포산에 8만㎡ 규모로 조성했다. 식재한 지 25년을 넘긴 자작나무는 울창한 숲을 이뤘다. 자작나무 숲에는 A코스(2.1㎞)·B코스(1.1㎞)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두 코스 모두 가볍게 걸을 만하다. 새하얀 자작나무 숲은 어느 계절이든 아늑한 풍광을 선사하기 때문에 숲을 배경 삼아 사진 찍는 동호인들도 많다. 통행로가 좁아 차를 이용하기보단 걸어서 이동하는 것이 좋다.

◇금강산도 식후경…청송 ‘닭백숙’

여행지에서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추억은 깊이를 달리한다. 청송에서 한 끼 제대로 챙기려면 ‘약수닭백숙’을 맛보길 추천한다. 부곡리 달기약수와 진보면 신촌리 신촌약수 등 이름난 약수로 끓여 낸 닭백숙은 탄산이 많고 철 성분을 함유해 위장병, 피부병, 신경통 등에 효능이 있다고 전해진다. 가장 중요한 재료인 약수로 끓인 백숙은 푸른 빛이 돌고 기름이 적으며 부드럽다. 달기약수와 신촌약수터 주변엔 이름난 닭백숙 식당이 모여 있다. 닭불고기도 인기다. 퍽퍽한 닭가슴살을 다져 불향 가득한 직화로 구워 낸다. 닭다리를 약수로 끓인 백숙과 닭불고기를 세트로 맛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