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포항의 젖줄인 형산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철강 도시 포항을 길러낸 형산강은 최근 수변공원으로 변신하고 있다. / 포항시 제공

경북 포항(浦項)은 반세기 전만 해도 구룡포 항을 중심으로 인구 5만 명이 사는 작은 어촌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난 1968년 4월 동해안 최대 도시로 성장하게 되는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포항종합제철(현 포스코)이 문을 연 것이다. 1973년 7월 영일만 모래사장에 103만t짜리 용광로가 세워진 뒤 포항시는 자동차 공업의 울산, IT·바이오산업의 대전과 함께 국내의 대표적인 기업도시, 산업도시가 됐다.

철을 소재로 한 스틸아트 조형물이 포스코 야경을 배경으로 서 있다.
대표적 문화관광 콘텐츠인 포항국제불빛축제가 열리고 있는 영일대해수욕장 야경.

포항은 대한민국 중흥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연오랑세오녀 설화를 간직한 천년 신라의 포구((浦口)로서, 한국전쟁 당시 어린 학도병들이 초개와 같이 젊음을 산화시켜 나라를 구했던 호국의 고장이다.

한반도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일출의 고장에 걸맞게 포항시민들의 부지런한 열정은 ‘영일만 기적’을 통해 포항을 세계적인 철강도시로 만들고 대한민국 산업화의 견인차 역할을 하게 했다. 포항에서는 이와 함께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던 ‘새마을운동’이 시작되기도 했다.

현재의 포항은 또 다른 역사를 써가고 있다. 줄곧 철강도시, 포스코도시로 불려온 포항시가 획기적인 변신을 시도 중이다. 지금까지의 포항이 철강에 기대어 살았다면 21세기 글로벌시대를 맞아 포항은 환동해권 중심도시로의 도약을 일구어 지속 가능한 꿈과 희망의 도시로 자리 잡고 있다. ‘삶과 도시의 대전환’이라는 기치로 시민과 함께 변화와 도약을 위한 노력도 이어가고 있다.

국제규모의 영일만 항은 이제 동북아의 물류 중심항으로 비상하고 있다. 항만 배후에는 대규모 산업단지가 조성되어 많은 기업이 입주하는 한편, 고속철도와 항공기를 통해 전국 어디에서도 2시간 이내 포항을 찾을 수 있는 높은 접근성을 갖춘 덕분에 ‘기업하기 좋은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세계 굴지의 기업인 포스코 외에도 포스텍과 산업과학연구원(RIST)과 같은 첨단지식기반의 인프라와 풍부한 고급 인적자원은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포항은 반세기 만에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꿈같은 희망을 점차 현실로 만들어갔다. 미국·일본에 이어 3번째로 구축된 ‘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신성장 원동력이 되면서 바이오산업과 신소재산업을 집중 육성하는 등 포항의 새로운 먹거리 산업으로 가는 밑거름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2017년 11월, 포항을 강타한 규모 5.4 지진은 수년간 지역 경제 등 모든 분야에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발 빠른 대응과 신속한 피해수습, 많은 국민이 동참해 준 성금, 자원봉사자들의 분주한 손길로 지진의 후유증을 딛고 시민 모두가 하나 돼 극복했다. 포항시 관계자는 “포항의 눈부신 발전과 최근 지진극복 과정에서도 볼 수 있듯이 지난 반세기 동안 포항을 키워 낸 것은 시민들의 도전과 개척 정신”이라며 “이제 그 정신은 내일의 포항을 향해 전력 질주하는 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천지개벽'대변신 중인 포항

대한민국 제철보국(製鐵報國)의 상징적인 도시였던 포항시는 현재 ‘천지개벽(天地開闢) 대변신’을 꾀하고 있다. 포항은 ‘산업화의 성지’, ‘세계적인 철강산업도시’의 이미지를 벗고, 최근 몇 년 새 바이오헬스·배터리·수소연료전지 등 ‘미래 신산업의 최적지’, 천혜의 자원인 바다를 활용한 ‘환동해 해양문화관광도시’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이를 위한 다양한 정책들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산업과 녹색환경이 공존하는 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회색빛 산업도시에서 ‘친환경 녹색생태도시’로 탈바꿈하겠다는 것이다.

포항종합제철이 설립된 이후 50여년 동안 포항 경제는 안정적이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와 중국발 철강공급 과잉 등의 위기는 포항 경제발전의 발목을 잡았다. 철강만의 산업 구조로는 이를 극복하는 데 취약하다는 점이 드러난 것이다. 이 때문에 오래전부터 산업구조 다변화를 통해 지역 발전의 새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다만, 수도권에 집중된 산업 육성 정책으로 포항시는 지역적 한계에 부딪히는 등 새로운 추진 동력을 찾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포항 발전의 새로운 큰 그림을 그릴 구심점이 없는데다 혁신적인 청사진을 내놓지 못하는 답답한 상황도 이어졌다.

그나마 낙관적인 기회가 찾아온 것은 2014년 민선6기 출범에서 비롯됐다. 포항시와 포스텍을 중심으로 세계적 수준의 첨단과학 인프라와 인적 지식기반 등을 활용해 지역산업 다변화를 위한 본격적인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먼저 포항시는 산업혁명의 발상지였다가 2차 세계대전 후 폐허가 됐지만 첨단과학 산업도시로 우뚝 선 영국 맨체스터와 독일 드레스덴 사례를 벤치마킹하고 지역 실정에 맞게 접목해 나갔다.

이를 통해 포항이 가진 첨단과학 인프라, 해양 자원 등 강점을 활용할 구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포항이 보유한 세계수준의 연구중심대학 포스텍과 3·4세대 방사광가속기 등 첨단과학 인프라가 지역 산업 다변화를 위한 귀중한 초석이 될 수 있음을 재차 확인한 것이다.

이 같은 확신을 바탕으로 포항시는 첨단 과학 연구·개발(R&D) 기반과 벤처 창업 지원까지 모든 과정이 연계되고 융합된 새로운 형태의 산업 생태계를 폭넓게 그려 나갔다. 이러한 노력은 단계적으로 결실을 맺었다. 강소연구개발특구, 차세대 배터리리사이클링 규제 자유특구, 영일만 관광특구와 같은 ‘국가전략 특구 지정’이라는 결과물로 이어졌다.

시는 이를 디딤돌 삼아 ‘배터리·바이오·수소연료전지’ 등 3대 미래 신성장 산업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산업 지도를 그려나가고 있다. 여기에다 포항이 가진 천혜의 자원인 바다를 활용해 ‘굴뚝 없는 황금산업’인 관광산업과 해양 물류산업을 또 하나의 성장축으로 삼고 관련 인프라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향후 포항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을 것으로 기대되는 해상케이블카는 지난해 착공했고, 환동해 해양복합전시센터와 특급호텔 건립도 가시화되면서 이를 통한 새로운 관광수요 창출로 대규모 생산유발 효과와 고용 증대가 기대되고 있다.

특히 ‘환동해 허브 도시’ 구상을 통해 동해안 유일의 국제컨테이너 부두인 영일만 항을 활용해 향후 환동해 크루즈선 운항과 환동해권 국가 도시들과의 교류를 선점, ‘신북방정책’의 중심도시로 도약하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세우고 있다.

또한, 지난 2016년부터 회색 산업도시를 녹색 생태도시로 탈바꿈하기 위해 추진중인'그린웨이 프로젝트'가 가동돼 지속 가능한 도시 발전의 새 모델이 되고 있다. 포항시는 지금까지 축구장 38개에 이르는 대규모 도시숲 녹지 공간을 조성했다. 지난 5년 동안 1조원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한 것으로 분석되면서 명실상부 친환경 녹색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이강덕 포항시장은 “포항은 이제 철강도시라는 이미지를 넘어 친환경 생태도시이자 미래 신산업 최적지, 환동해 해양문화관광 도시로 변모하고 있다”며 “이미 변화는 상당 부분 진척을 보였고, 다양한 분야에서 차별화된 도시 경쟁력을 발판으로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를 선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