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투병 극복하며 졸업… 40년 이상 미뤄왔던 숙제 해결
동상 신상래씨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졸업
은행에서 오랜 기간(1979.09.24.∼2014.02.14) 무탈하게 직장 생활을 해왔다. 그러던 중 비영리기업(사회적협동조합)의 설립을 주도하게 되며 업무가 이전 직장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비영리기관 특성상 행정기관과 빈번하게 접촉하며 공공(公共)행정 업무에 대한 이해가 절실했다. 단편적인 법률 지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방송통신대 법학과에 지원했다.
적지 않은 나이에 학업과 직장 생활 및 건강을 돌보는 건 고난의 연속이었다. 2차례 폐암 진단과 그에 따른 제거 수술을 거치면서 정신적인 고통과 체력적인 문제가 한계로 다가왔다. 고난이 다가올수록 정신적으로는 더욱 강인해졌다. 대학 졸업과 학위 취득의 꿈을 위해 투병 중임에도 방송통신대 법학과에 입학해, 마침내 지난 2월 졸업하며 40년 이상 미뤄왔던 숙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방송통신대의 학업 특성상 대부분의 수업이 동영상 강의로 진행되는데, 노안으로 인한 시력 저하로 힘들게 학습했다.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왜 대학에 진학했고 법학 공부를 하고 있나?”라는 초심을 되새기며 마음을 다잡았다. 어려움은 끈기를 가지고 꾸준히 노력하는 정신력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그 결과 2021년 1학기 성적 우수 장학생으로 선발될 수 있었다.
현재는 드림위드앙상블이라는 비영리조직 사회적 기업에서 사무국장으로 재직하면서 초기 설립부터 운영까지 모든 사무 행정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사회적 기업의 초기 조직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공부를 통해 법과 규정에 대한 필요를 채울 수 있었다. 법 이론과 현장 업무가 조화를 이루면서 건실한 조직이 만들어지는 여건이 됐다. 앞으로 법학사에 만족하지 않고 내년에는 대학원에 진학하여 더 심도 있게 법학을 공부할 계획이다.
교도관과 상담심리 공부는 相生… 환갑 나이 졸업에 눈물 왈칵
동상 윤경숙씨
한양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 졸업
딱 환갑의 나이에 사이버대학을 졸업했다. 지난 2월 나는 드디어 한양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문호가 넓어지고 국경을 넘나들며 학위를 따는 세상이지만, 내게는 그 세월이 너무나 길었고 꿈에 그리던 졸업장이라 왈칵 눈물이 날 정도였다.
어린 시절부터 국어교사를 꿈꾸며 시(詩)와 책 읽는 걸 좋아했다. 공무원이 되어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며, 직장과 육아로 바쁘게 살면서도 항상 손에서 책과 신문은 놓지 않았다. 그렇게라도 해야 내 마음의 허기가 채워질 듯했다.
“이대로 그냥 늙어 가면 어쩌지?” 하는 초조함과 허전함에 바이올린과 오카리나 등 악기를 배우고 평생교육원에서 상담심리 강의를 들었다. 몇 학기 듣다 보니 대학에서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싶었다. 하지만 50대 중반을 넘긴 나이에 어린 학생들과 오프라인 대학에 다닐 자신도 없고, 중도 퇴직보다는 몇 년 안 남은 정년까지 잘 마무리하고 싶은 바람도 있었다.
2017년 내게도 드디어 대학의 문이 열렸다. 한양사이버대는 지명도가 높고 인터넷에 학교 설명이 잘 돼 있었다. 지방에서 접근성이 좋다는 이유도 있었다. 그러나 막상 공부를 시작하니 이 나이에 직장과 공부를 병행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힘들어도 새로운 공부는 좋았다. 나이가 주는 여유로움, 오랜 직장생활과 연륜으로 축적된 경험이 주는 빠른 이해력이 가장 큰 장점이다.
평생 직업인 ‘교도관’으로서 상담심리 공부는 상생(相生)이었다. 근무지에서 상담을 많이 하면서 교수님들 강의 노트를 참고하거나 다른 전문 서적도 열심히 읽었다. 나는 이제 곧 정년퇴직한다. 퇴직 후 체계적으로 더 많은 공부를 하고 싶다. 더 큰 포부라면 더 깊게 공부하고 자료 수집도 많이 해서 외부 강사로 수용자들을 교육하는 게 꿈이다.
사이버대학에서 내꿈의 ‘디딤돌’ 찾아… 박사과정 밟는 중
동상 이종상씨
한양사이버대학교 정보통신공학과 졸업
전문대 졸업 학기에 조기 취업해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정직원이고 졸업만 하면 당당한 사회인으로 자리 잡을 기회였다. 하지만 그 시기 나는 꿈이 있었다. 그 꿈을 위해서는 학위가 필요했고, 학위와 관련된 대학원도 가고 싶었다. 고민이 깊은 시기, 회사 대표님께서 ‘한양사이버대학교’를 추천해 주셨다.
나의 꿈은 자동차 연구·개발자가 되는 것과 관련 대학원 졸업이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한 도약의 발판으로 한양사이버대가 있었다. 나는 편입학에 지원해 정보통신공학과에 입학했다. 사이버대는 이전 전문대학과는 달랐다. 수강 신청, 강의 문의, 교수님 면담 등이 사이버 공간에서 이루어져 낯설었다.
하지만 개강 파티 및 오프라인 모임을 통해 전반적인 학교생활 노하우를 얻을 수 있었다. 나는 ‘인싸’라 불릴 정도로 열심히 학교생활을 했다. 부총무·총무를 시작으로 4학년 때는 학년 대표를 맡았다. 김태우 정보통신공학과 교수님 지도로 ‘I2 스퀘어’란 동아리의 설립 구성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학업뿐 아니라 축제, 인사 초청, 기술 세미나, 여행 탐방 등 다양한 것을 경험할 좋은 기회였다.
내가 학교에 들어온 이유는 뚜렷했다. 대학원 진학과 자동차 관련 연구·개발자가 되는 목표였다. 4학년 때부터 교수님과 선배들에게 상담을 받으며 한양대 대학원을 준비했다. 많은 교수님과 학우들의 응원으로 합격했고, 2년간의 석사 생활을 마치고 자동차 부품 관련 회사에 취직했다. 더불어 같은 연구실에서 파트타임으로 박사과정을 밟으며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한양사이버대가 아니었다면, 과연 내가 꿈꾸었던 것을 이룰 수 있었을까? 한양사이버대에서 내 꿈을 펼치려 노력했던 20대 내 모습은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