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독자권익보호위원회(위원장 김도연 태재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가 지난 9일 정례 회의를 열고 지난 한 달 조선일보 지면과 온라인 기사에 대해 토론했다. 김 위원장을 비롯해 김경희(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 김별아(소설가), 김재련(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 민세진(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박원호(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이성주(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정윤혁(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한준(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위원, 조중식 편집국 부국장이 참석했다. 고산(에이팀벤처스 대표), 김태수(변호사), 장부승(일본 관서외국어대 교수) 위원은 따로 의견을 보냈다.
▨ 이란 공습
-미국의 이란 공습과 관련, <트럼프, 단 한번 공습에 ‘37년 철권 통치’ 끝냈다>(3월 2일 자 A1면)를 보고 깜짝 놀랐다. ‘철권 통치’를 끝내기는커녕 하메네이 차남이 새 최고지도자에 거론되는 등 장기전 가능성이 높아 보였는데 제목을 자극적으로 달았다. 좀 더 신중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같은 날 <美, 압도적 군사력·정보력으로 핀셋 타격… 세계에 ‘FAFO’ 보여줘>(A5면)는 더 심하다. ‘FAFO’ 아래 괄호 안에 “까불면 죽는다”고 했다. 미국의 이란 공습은 대단히 큰 사건이다. 더 차분하고 심도 있게 다뤘어야 한다. 세계 질서 자체가 변화하고 있는데, ‘전쟁 게임’처럼 가볍게 다뤄선 곤란하다.
-<“중동 대전환 노리는 트럼프… 아프간式 장기 혼돈에 휘말릴 수도”>(3월 3일 자 A6면)는 고개를 갸웃하게 한 내용이 많았다. 트럼프가 중동 대전환을 노린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전 세계 전문가 의견을 종합해 보면, 그는 정교한 종합 전략 없이 즉흥적으로 이란 공격 카드를 쓴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의 이란 관련 발언은 거의 매일 바뀌고 있다. 이란 공습으로 북한에 대한 미국의 ‘확장억제’ 신뢰도를 대폭 높이는 효과를 낼 것이라는 내용도 납득하기 어렵다. 미국의 핵 안보 전문가 다수는 북한이 설사 남한에 핵무기를 사용해도 미국이 대북 핵 공격을 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고 보고 있다.
-지난 한 달 동안 조선일보가 충분히 다루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이슈가 행정통합이다. 행정통합은 시민 실생활에 직결되고, 어마어마한 예산이 투입된다. 지방선거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누가 찬성·반대하고, 누가 정치적으로 유리·불리한지 등을 정쟁적으로 다뤘다.
-<천궁-2 ‘로켓 배송’… UAE 수송기, 한국 왔다>(3월 9일 자 A6면)는 ‘로켓 배송’이라는 표현까지 쓰면서 UAE의 긴급 요청에 신속 대응한 성과를 강조했으나, 핵심 사항이 빠졌다. 연간 생산량이 제한돼 있고 대규모 수출 계약이 잇따르는 상황에서, 즉시 공급할 로켓 재고가 어디서 나왔는지 언급이 없다. 제한된 방공 자산을 어떻게 관리하는지는 국민 생명과 직결된 문제다. 방산 수출의 성과만큼 국군 전력에 미치는 영향도 균형감 있게 보도했어야 한다.
▨ 간병의 늪
-[간병의 늪에 빠진 한국] 기획은 간병 노인 100만 시대를 맞아 ‘간병 파산’ ‘간병 전쟁’ ‘간병 난민’ 등 누구도 자유롭지 않은 고령화 시대의 그림자를 깊이 있게 파헤쳤다. 경제적 문제뿐만 아니라 가족의 고립감과 우울감까지 다룬 진일보한 접근이다. 간병비 부담에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되고 간호·간병 통합 서비스 병상이 부족한 문제 등 정책 흠결을 상세히 지적해 인상적이었다. <요양 병원 간병인 79%가 60대 이상… 노인이 노인을 돌본다>, <“혼자 24시간 일해” 근로시간 제한 없는 간병인>(2월 26일 자 A8면)은 간병 문제를 노동 문제로 확장해서 바라봤다. 간병을 누군가 떠맡아야 하는 짐으로 보는 시각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공적 시스템이 이를 어떻게 관리하고 해결할지 고령화를 미리 경험한 해외 사례를 통해 더 넓고 긴 호흡으로 접근하면 좋겠다. 존엄한 삶의 마무리를 존중하는 의료 문화, 불필요한 의료 자원 소모를 줄이기 위한 사회적 합의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관련 후속 기사가 나오길 기대한다.
-AI 기술이나 경제만큼 중요한 문해력 문제를 다룬 [AI 시대, 문해력 위기] 기획이 나와 반가웠다. <문단 건너뛰고, 시선은 중구난방… 학생들, 책을 숏폼처럼 본다>(2월 24일 자 A3면)는 초등학생과 중학생 242명의 눈동자 움직임을 그래픽으로 보여줬다. ‘지그재그 시선’ ‘포도송이 시선’ 등 떠도는 모습이 충격적이었다. <폰 앞에서 무너지는 집중력>(2월 28일 자 A1·8면)에서는 독서 시작 12분 만에 집중력이 무너져 7개 앱을 떠도는 과정을 보여준 그래픽과 데이터가 기사 신뢰도와 전달력, 신문 읽기의 효능감을 높였다. 문해력에 큰 영향을 미치는 초·중등 교육부터 대학의 읽기·글쓰기·말하기 등 교육이 어떻게 변해야 할지 깊이 있게 고민해 주면 좋겠다. 우리 교육의 구조적 문제를 간과한 부분은 아쉬웠다. 지문이 가득한 A3 용지 16쪽을 80분에 처리해야 하는 수능 국어 등 정답 찾기 능력만 키우는 학생 평가 방식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中, 탈북민 25명 잡으면 강제 북송… 미성년·임산부 무차별 폭행”>(3월 2일 자 A12면)에서 아직도 탈북민에 대해 이런 노골적인 인권 탄압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북한인권정보센터 보고서를 인용만 할 것이 아니라, 정부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외교부와 통일부 당국자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반응을 끌어내야 한다. 아무리 좌파 정권이 등장했다 해도 이런 인권 탄압을 외면해선 안 된다.
▨ 독립문
-<그날의 함성 되새기며 ‘3·1절 셀카’>(3월 2일 자 A12면)의 사진 배경에 독립문이 나온다. 사실 독립문은 3·1절과 아무 관계가 없다. 1896~1898년 세워진 독립문의 ‘독립’은 청으로부터의 독립, 중국 중심의 수직적인 ‘천하 질서’ 체제로부터의 독립을 말하는 것이다. 이날 독립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학생들은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이라고 잘못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오해를 바로잡아야 할 조선일보가 3·1절과 독립문이 무슨 관계가 있는 것처럼 오히려 오해를 조장한 것 같아 아쉽고 또 우려된다.
-<의사 꿈 품고 5일 전 대치동 이사왔는데…>(2월 25일 자 A10면)는 대치동 아파트 화재로 16세 여학생이 사망한 비보를 전하며 제목에서 ‘의사 꿈’을 강조했다. 내용에도 “중학교 때 줄곧 1등만 했다” 등 가족 인터뷰를 상세히 실었다. 언론이 집중해야 할 지점은 피해자 사생활이 아니라, 1979년 준공돼 50년 가까이 노후화된 아파트 시설물 문제여야 했다. <전국 아파트 절반 이상이 은마처럼 스프링클러 없다>(2월 26일 자 A10면) 같은 내용이 전날 기사의 중심이 됐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술 취한 피해자 진술 어디까지 믿어야 하나>(3월 7일 자 A10면)는 제목을 보고 유감스러웠다. 준강간이나 준강제추행 사건의 본질은 피해자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자발적으로 행사할 수 없을 정도로 술에 취한 상태 혹은 약이나 잠에 취한 상태인지 여부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가해자의 성적 행위 여부에 대해 구체적으로 인지해 진술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 이를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문제로 접근해선 안 된다.
-<국내 75세 이상 노인 2명 중 1명 ‘복부비만’>(2월 19일 자 A12 면)은 노년층 건강 관리의 새로운 위험 요인을 환기했다. 복부비만 증가 현상을 주로 운동 부족이나 식습관 변화와 같은 생활 습관 요인으로 설명했는데, 노년기에는 근육량 감소와 호르몬 변화로 체중이 크게 늘지 않더라도 내장 지방이 증가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점을 함께 설명했다면 질병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다.
▨ 월세 150만원
-<서울 아파트 평균 월세 150만원 돌파, 또다시 역대 최고>(3월 9일 자 B1면)는 지난 1월 서울 아파트 평균 월세 가격이 150만4000원으로 최고치를 경신했고, 반전세를 포함해 월세 비율이 전체 임대차 계약의 절반을 넘어섰다는 내용이다. 현재 부동산 정책에서 가장 우려되는 부작용인 전·월세 시장 불안 문제를 잘 짚었다. 다주택자 및 고액 부동산 자산가에 대한 과세로 초점이 옮겨온 듯한 부동산 정책의 최대 피해자는 임차인들이다. 급격하게 상승하는 주거비의 실질적 부담이 감당할 만한 수준인지 걱정스럽다. 주거비가 차지하는 부담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인플레이션과의 관계, 다른 구매력에 미치는 영향 등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추적해 보도하길 바란다.
-<조각투자 개척 스타트업, ‘금피아’(금융위+마피아)에 막혔다>(2월 19일 자 B1면)가 크게 실려 반가웠다. 금융 분야에서 혁신을 촉진하기 위한 규제 샌드박스가 언제부터인가 규제 산업인 금융 산업에 다양한 지류(支流)를 허용하기보다 기존 금융기관의 본류(本流)를 넓히는 방향으로 쓰이고 있다. 싹이 보이는 스타트업을 집어삼킬 수 있게 판을 깔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 안타깝다. 기사는 이러한 문제를 함축적으로 드러냈다. 이런 사례를 더 모아 한국에서 규제 개혁이 왜 이렇게 힘든지 분석적으로 파헤쳐주면 좋겠다.
-해외 석학 8명이 언급한 AI 미래를 다룬 <“AI, 2030년 인류와 공존하는 새로운 種이 될 것”>(2월 12일 자 A2면)은 누구나 떠올리는 유토피아·디스토피아 양극단의 가능성을 반복하는 수준에 머물러 아쉬웠다. 8명 의견 중 가장 자극적인 것을 제목으로 했는데, 논거는 전혀 제공되지 않았다. 현재 AI는 인간이 만든 알고리즘에 의존하는 도구이지, 생물학적 진화의 주체는 아니다. AI의 사회적 지위, 인간과 협력 구조를 다루는 기획이 나오면 좋겠다. <美 대법 “AI, 독창적 작품 만들어도 저작권 없어”>(3월 4일 자 B4면)에서 판결의 핵심은 인간의 창의적 기여가 없는 AI 생성물은 저작권 보호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을 확인한 데 있다. “AI는 저작권자가 될 수 없다”는 결론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 좀 더 근본적인 법적 논점에 주목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 스노보드 최가온
-독자에게 신문은 ‘세상을 내다보는 창(窓)’이다. 특히 1면은 가장 큰 창인데, 아쉽게도 최근에는 전쟁으로 치닫는 세계와 정치적 갈등으로 신음하는 국내 소식 등 어둡고 우울한 것 일색이다. 그런 측면에서 <또 넘어져도 “난 할 수 있어”>(2월 14일 자 A1면)를 포함해 세 지면에 상세하게 게재한 스노보드 최가온 선수의 동계올림픽 금메달 소식은 참으로 상쾌했다. 대한민국 청소년의 높은 기개를 감동적이고 생생하게 전해줘 고맙다.
-<[창간 106주년] 이번엔 첫 ‘AI 미디어’… 교열·번역 이어 검색·요약도 AI로 혁신>(3월 5일 자 A1·9면)을 통해 조선일보가 언론계에서 AI 활용을 선도하는 매체로서 ‘AI 미디어’ 흐름을 이끌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AI 번역을 활용한 ‘조선데일리’의 성장은 AI 기반 미디어 실험이라는 측면과 함께 한국 언론의 글로벌 확장에도 기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AI가 만들어주는 ‘독자 맞춤형 조선닷컴’에 대해서도 기대가 크다.
/정리=김정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