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독자권익보호위원회(위원장 김도연 태재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가 지난 9일 정례 회의를 열고 지난 한 달 조선일보 지면과 온라인 기사에 대해 토론했다. 김 위원장을 비롯해 고산(에이팀벤처스 대표), 김별아(소설가), 민세진(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장부승(일본 관서외국어대 교수), 정윤혁(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한준(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위원, 조중식 편집국 부국장이 참석했다. 김경희(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 김재련(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 김태수(변호사), 박원호(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이성주(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위원은 따로 의견을 보냈다.
▨ 대선 공약
-공식 선거 기간과 대선일을 포함한 지난 한 달의 숨 가쁜 일정이 지면에 고스란히 담겼다. 워낙 준비 없이 급작스럽게 치러져 역대급으로 ‘정책이 실종된 선거’라 부를 수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文·尹이 해결 못한 자영업자 빚… 李 “대출 탕감” 金 “특별 융자”>(5월 15일 자 A4면)로 시작해 월말까지 이어진 ‘대선 공약 분석’ 시리즈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자영업, 교육, 에너지, 노동, 부동산, AI 전략 등으로 구성했고, 내용이 충실했다. 특히 두 후보의 입장 차이를 요약해 표로 제시한 것이 돋보였다. 선심성 공약이 난무하고 이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社說] 퍼주기 아닌 참신한 민생 공약들, 박수받을 만>(5월 21일 자 A35면)도 참신한 접근이었다.
-선거 보도와 관련해 가장 아쉬운 점은 중립성이었다. <‘득표율 60%’ 절대 권력 향해 가는 李>(5월 20일 자 A1·3면) 등은 설득력이 부족한 노골적인 선거 개입이 아닌가 싶었다. 이재명 후보가 압도적인 표차로 이기게 되면 입법부와 사법부까지 장악해 “절대 권력”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20% 차이로 이기나 1% 차이로 이기나 여대야소(與大野小)가 되는 것은 차이가 없으며, 바로 “절대 권력”이 되는 것도 아니다. 이재명 후보가 압승할 것 같은 여론조사 결과들을 소개해 독자들의 견제 심리를 자극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번 선거에서 조선일보가 취한 가장 유감스러운 입장 중 하나였다.
-<둘째 날 꺾인 사전 투표율… “선관위가 부실 관리로 분위기 깼다”>(5월 31일 자 A4면)는 사전 투표율이 낮은 이유가 선관위의 부실 관리 때문이라는 주장인데, 얼마나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지 모르겠다. 사전 투표율이 낮았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역대 최고였던 2022년 대선보다 2%포인트 정도 낮아졌지만, 그 이외 어떤 선거보다도 높았다. 부정선거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애매한 태도는 책임 있는 언론이 하면 안 될 입장이다.
-<[朝鮮칼럼] 외교관이었던 나는 왜 북한을 탈출했나>(6월 6일 자 A26면)를 쓴 이일규 전 쿠바 주재 북한 대사관 정치 참사에게 정기 칼럼을 맡긴 것은 아주 좋은 시도다. 조선일보 지면에 탈북한 분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이들의 사기를 높이고, 대한민국에 대한 소속감을 강화시키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 고졸의 반격
-우리나라 대학 진학률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압도적인 세계 1위였다. 이로 인한 인력 시장의 불일치와 취업난 등 수많은 문제의 근본 원인이 바로 학력 지상주의다. [고졸의 반격](5월 20·21일, 6월 4일) 기획은 이를 벗어나기 위한 시도로 대단히 긍정적이었다. 입학 정원을 늘린다는 직업계고 관련 기사는 신선했고, 대기업에서 대우받는 ‘명장’과 임원을 발굴해 소개한 것도 바람직했다. 고졸 출신의 생태계 구축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일본·호주·영국 등에서 고졸 출신은 자기들만의 생태계를 구축해 독자적으로 잘 산다. 도요타자동차는 생산직 신입 사원을 고등학교와 장기 계약을 통해 선발한다. 고졸인데도 생산 라인에서 팀장급으로 시작한다. 높은 고용 안정성과 소득이 보장돼 소속감과 자부심을 갖는다. 이렇게 고졸 생태계가 구성되면 대졸·고졸 간 임금 격차 해소는 물론 저출생 쓰나미로 인해 조만간 현실화될 대학 파산 사태에도 적절히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22년 전 대구의 교훈, 서울 지하철 참사 막았다>(6월 2일 자 A1·5면)에서 서울 5호선 방화 사고가 인명 피해 없이 끝난 것은 대구 지하철 참사 교훈을 정책으로 만들어 대비한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평소 훈련과 대비가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웠다. 특히 대구 지하철 참사와 차이점을 비교하고, 보완할 점도 함께 다뤄 기사 자체가 안전사고에 대한 좋은 매뉴얼이 됐다.
-과거에는 생활고 등으로 가족을 살해하고 함께 죽으려고 한 사건을 ‘동반 자살’이라고 표현했는데, <억대 빚에 몰린 40대 가장, 가족여행 데려가 처자식 살해>(6월 4일 자 A10면)에서 ‘동반 자살’ 대신 ‘살해’라고 쓴 것은 적절했다. 다만 ‘억대 빚에 몰려’ 처자식을 살해했다고 표현한 것은 생활고에 시달리는 부양 의무자들이 자신의 가족을 살해하는 것에 정당성을 부여할 여지가 있다.
-<서울 문 닫는 어린이집을 노인요양원으로>(5월 27일 자 A10면)에서 수익성이 떨어져 문 닫는 어린이집 275곳을 노인 돌봄 시설로 일괄 전환한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우려스럽다. 아직도 맞벌이 가정 등을 위한 어린이 돌봄 시설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 앵그리 노인
-<창·낫에 화염방사기까지… 강력 범죄 저지르는 ‘앵그리 노인’>(6월 5일 자 A14면)은 최근 5년 사이 급증하는 노인에 의한 강력범죄(살인·강간 등)를 다뤘다. 이러한 범죄의 원인으로 감정 조절 능력 저하 등 노인의 신체적 변화, 퇴직으로 인한 상실감 같은 정서적 요인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노인에게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특성인데, 범죄 원인과 직접적으로 연결지으면 노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일반화할 위험이 있다.
-<현 고1 대학 갈 때 서울대 정시 비중 30%로 줄일 듯>(5월 30일 자 A12면) 기사가 실렸는데, 우리 초·중등 교육은 헤아릴 수 없는 문제들로 실타래처럼 얽혀 있다. 16개 대학에 대한 수시 전형 40% 강제는 소위 ‘조국 사태’ 이후 교육부가 발표한 ‘대입 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에 의해 시행됐는데, 이번에는 교육부 방침을 잘 따른 대학에 대해 이를 30%까지 낮춰 준다는 것이다. 전자나 후자나 모두 지극히 한심한 교육 정책이다. 수능을 개선하는 데 조선일보가 적극적으로 나서면 좋겠다.
-<[社說] “이공계 상위권 1000명씩 뽑아 초인재로 길러내자”>(5월 16일 자 A31면)에 적극 동의한다. 그러려면 이공계 분야의 처우 개선과 엘리트로 성장한 1000명의 이공계 인재를 수용할 국내 산업체·대학·연구소 등 육성이 병행돼야 한다. 단순히 몇 명의 인재를 양성하자는 구호 이상으로 이들에게 어떠한 파격적인 대우를 하고, 어떻게 이들이 국내에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할 것인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함께 있어야 한다.
-<중국인 건보 취득, 4년 새 2만6000명 늘어>(5월 19일 자 A10면)는 그간 국민들이 막연히 우려해온 외국인 건강보험 가입자 증가 문제를 수치로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고령 내국인과 외국인 환자 진료까지 떠안은 의료 현장은 이미 한계 상황이다. 외국인 건강보험 가입에 대한 ‘상호주의’ 도입, 가입 기간 제한, 부정 수급에 대한 실질적 제재 강화 등이 시급히 논의돼야 한다.
▨ 호텔경제학
-대선 후보들의 경제 관련 공약이 불분명해 비판하는 게 굉장히 어려웠을 것 같다. 조선일보는 이재명 후보의 이른바 ‘호텔경제학’에 대해 매섭게 비판하지 않았다. <[팩트 체크] 호텔경제학, 한국은행 책자에 나온다는데… 한은(韓銀) “경기 살린다는 맥락 아니야”>(5월 29일 자 B2면)에서 이 문제를 다뤘다. 다른 신문은 호텔경제학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교수의 의견을 먼저 싣고, 이에 대해 명망 있는 교수들의 비판을 정확하게 실어 제대로 비판한 느낌이 들었다. 대선 때 경제 이슈들을 정치부 기자들이 일차적으로 다루다 보니 정확하게 논점을 파악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것이 반복되는 것 같다. 중요한 이슈는 부서 간 칸막이 없이 다루면 좋겠다.
-<‘알파고 아버지’의 AI 경고 “일자리 뺏기는 것보다 더 무서운 건…”>(조선닷컴 6월 5일), <MS 6000명, 메타 3600명… AI가 일으킨 해고 칼바람>(5월 15일 자 B1면) 등 AI가 촉발한 일자리 관련 기사가 지난 한 달 많이 실렸지만, 이런 기사들로는 현재 일자리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제대로 알 수 없다. 어느 회사에서 직원이 퇴사해도 그 자리를 채울 직원을 뽑지 않는 요즘 우리의 심각한 현실을 드러내는 기사가 더 많아져야 한다.
-<7년간 음원 시장 망쳐놓고… 300억으로 퉁치는 구글>(5월 23일 자 A12면)은 너무 이용자 편에만 서서 산업 발전의 의미에 대해서는 눈길을 주지 않는 것 같다. 플랫폼에 대한 규제가 강할수록 토종 플랫폼은 더 빨리, 직접적으로 영향받고 위축돼 해외 플랫폼과의 경쟁에서 뒤처진다. 결국 한국 소비자들은 더 좋은 서비스에서 소외될 것이다. 조선일보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지향점을 꽤 분명하게 드러낸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기사는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조선일보의 철학과 인식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한다.
▨ 中 ‘제조 2025’
-[中 ‘제조 2025’ 10년 성적표](5월 27일~6월 2일) 기획은 중국의 제조 굴기를 잘 정리했다. 우리는 어떻게 가야 할까. 고질적인 고비용·저효율 구조, 경직된 노동시장, 핵심 뿌리 산업의 붕괴, 대기업·중소기업 양극화, 숙련 기술 인력 부족 등 문제점을 깊이 파고드는 특집 기사가 나오면 좋겠다.
-<“기술 인재 1000만 양병”… 中 제조 2025의 요람 칭화대>(6월 2일 자 A1면)처럼 칭화대는 세계 과학기술을 선도하는 대학으로 자리 잡았다. AI 분야에서의 약진은 놀라울 정도다. 우리 대학들도 미래 사회에 필요한 인재상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운영의 틀을 새롭게 짜야 한다. 당장 내년 살림을 우려해야 하는 재정 형편, 교수 정년 보장과 강고한 학과 체계 등에 안주하는 모습이 너무 아쉽다. 우리 대학의 현실도 한번 짚어주면 좋겠다.
-<잊혔던 스마트 글라스, AI 날개 달고 부활>(5월 24일 자 A16면)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AI를 탑재한 스마트 글라스를 출시한다는 내용이다. 스마트 글라스는 2010년대 초 등장했지만, 기술적 한계와 사용자 수용 부족으로 시장에서 실패했다. 당시 큰 논란이 되었던 부분은 내장된 카메라로 인한 사생활 침해 문제였다. 현재 출시되는 스마트 글라스는 AI를 통해 기술적 진화를 이뤘지만, 사생활 침해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그럼에도 윤리적 문제에 대한 논의 없이 사용자 편의성 확대에만 초점을 맞춰 아쉽다. /정리=김정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