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독자권익보호위원회(위원장 김도연 태재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가 지난 10일 정례 회의를 열고 지난 한 달 조선일보 지면과 온라인 기사에 대해 토론했다. 김 위원장을 비롯해 고산(에이팀벤처스 대표), 김별아(소설가), 김재련(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 민세진(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이성주(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정윤혁(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위원, 조중식 편집국 부국장이 참석했다. 김경희(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 김태수(변호사), 박원호(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장부승(일본 관서외국어대 교수), 한준(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위원은 따로 의견을 보냈다.

왼쪽 앞부터 시계 방향으로 정윤혁·김재련·김별아·고산·이성주 위원, 김도연 위원장, 민세진 위원, 조중식 부국장. /장련성 기자

▨ 헌재 공정성

-계엄과 탄핵에 뒤이은 대통령 체포와 구속 기소,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이 진행된 한 달이었다. 조선일보가 보도하는 헌재의 ‘공정성’에 대한 기사들을 보면 우려스럽다. 지나치게 탄핵 반대 입장이나 윤석열 대통령 변호인들과 입장을 같이하는 것도 그렇지만, 기사들의 논변(論辯) 자체에도 동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내가 제일 왼쪽”… 정치 편향 논란에 빠진 헌재>(1월 31일 자 A8면)는 좌파 재판관들의 편향에 대한 문제 제기인데, 내용 대부분이 대통령 변호인들의 주장과 동일하고, 상식적으로도 수긍하기 어려운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재판관 본인의 편향을 지적해야지, 동생이나 남편의 문제, 혹은 소셜미디어(SNS) 활동 등 내용을 지면에 재탕하는 것은 건전한 비판이 아니다. 음모론자들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특히 해당 기사에서 ‘법조계’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익명 인용되고 있는데, 헌재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정도라면 실명 인용이 필요하다고 본다. 최소한 반대 의견이라도 소개했어야 한다.

-’사법의 정치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우리법연구회 출신 헌재 재판관들의 편파·파행에 대한 (일부 정당한) 비판에서 비롯된 상황이기는 하지만, <’尹 내란 사건’ 맡은 재판장, 이재용 무죄(1심)·유아인 법정구속>(2월 1일 자 A10면)처럼 어떤 재판을 맡은 판사의 과거 판결이나 성향 등을 일일이 파보는 것이 정당한가 하는 생각이 든다. 판결이 법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의심을 조장하고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심는 일에 가깝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 향한 3050 인사들 제언>(1월 20일 자 A6면)은 지혜롭기보다는 고루한 느낌이 드는 원로들의 입만 쳐다보는 데서 한 걸음 나아갔지만, 3050 인사들의 면면이 국회의원이나 전 국회의원(5명 중 4명)이고, 전원 남성이라는 점에서 대표성에 한계가 있어 보인다. 젊은이 중에도 ‘젊은 (남성) 의원’밖에 수용하지 못하는 현재 보수우파 스피커의 상황을 드러낸 듯하다. 다양한 계층과 직업, 성별을 가진 젊은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노력이 필요하다.

▨ 제국의 위안부

-<’제국의 위안부’ 박유하 민사 2심 승소>(1월 23일 자 A10면) 소제목을 보면 ‘위안부를 ‘자발적 매춘부’로 묘사… 재판부 “표현의 자유 인정해야”’라고 돼 있다. 그런데 책에서 사용한 ‘자발적 매춘’이라는 말은 그렇게 말한 일본인들을 비판한 대목에서 쓴 ‘인용’이다. 소제목만 봐서는, 위안부를 ‘자발적 매춘부’로 묘사했는데도 재판부가 표현의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고 판단해서 판결이 뒤집힌 것처럼 읽힌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대한민국에서 어떤 방식으로 사유화되고 독점적 방식으로 악용됐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지만 관련 기사의 분량이 매우 적고, 판결 의미도 제대로 담기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박유하 교수의 10년 싸움’을 제대로 짚어주면 어떨까 싶다.

-<2심도 무죄, 삼성의 ‘잃어버린 10년’>(2월 4일 자 A1면)을 읽으니 우리 사회를 풍미했던 ‘검찰 개혁’의 필요성이 절실하게 느껴진다. <[社說] 검찰의 항소 상고 남발 막을 제도 장치 필요하다>(2월 10일 자 A31면)에서 잘 지적했지만, 관행이라고 넘어가기엔 사회적 손실이 너무 크다. 여기에 낭비되는 국민 세금은 모조리 ‘법조 카르텔’의 이익일 뿐이다. 계속해서 문제점을 지적하면 좋겠다.

-지난 한 달 동안 시의성이 높은 주요 기사들에서 사실관계나 기자의 판단을 모호하게 하는 표현이 많이 등장해 아쉬움이 컸다. 대표적인 것이 ‘법이 무너졌다’ 혹은 ‘법이 짓밟혔다’ 같은 표현인데, 주어나 목적어가 모두 추상적인 ‘법’으로 표현돼 있다. 이러한 모호성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읽힐 가능성도 많다. 정치적 상황이 복잡하지만 옳고 그른 것을 교차해 가며 지적하는 것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일 수교 60년 ‘신오쿠보역 의인’ 故 이수현의 어머니 신윤찬>(1월 18일 자 B1·2면)처럼 갈등과 반목의 세상에 화해와 평화의 목소리를 내는 이들을 발굴하고, 그들이 고통을 극복하고 삶을 이어가는 방식에 주목해야 한다.

▨ 돌봄 대전환

-[초고령사회, 돌봄 대전환해야](1월 25일~2월 4일) 시리즈는 조선일보의 저력을 보여줬다. <21만 외국인 간병인의 힘… 대만은 자기 집이 요양원>(1월 31일 자 A1·10면)은 외국인 간병인 활용을 적극 제안하는 취지다. 급격히 높아진 최저임금으로 외국 인력에 한해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해야 한다는 논의도 있지만, <60년 전 독일서 배우는 돌봄의 미래>(1월 25일 자 A1면)에서 파독 간호사들은, 파한(派韓) 간병인을 모집한다면 내국인과 동등한 처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모 돌봄 휴직 제도’에 대해서도 조명하면 좋겠다.

-<변화된 응급실 문화… 설 연휴 의료 대란 막아>(2월 3일 자 A1·14면)에서 대란이 없었다고 곧바로 의료 인력난이나 의료 접근성 문제가 해결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기사 대부분이 정부·병원 측 발표와 통계를 중심으로 쓰였고, 응급의학 전공의나 간호사, 연휴 중 응급실을 찾은 환자들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적게 다뤄졌다. 의료 인력 부족과 ‘번아웃(burnout)’ 문제를 짧게 언급했지만, 깊이 파고들지 않아 자칫 ‘대란이 없었다=모든 게 정상’이라는 오해를 줄 수 있다. 경증 환자에게 응급실 진료비 부담을 크게 늘린 것을 ‘긍정적 변화’로 언급했는데, 경제적 부담 때문에 제때 응급실을 못 간 사례가 있는지, 대체 의료기관이 충분히 보장됐는지 더 살펴야 한다.

-<대형 병원까지 비급여 장사… 환자 과잉 진료 논란>(2월 8일 자 A10면)은 대형 병원들이 적자 보전을 위해 무분별하게 비급여 진료를 확대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데, 의료 현실을 단편적으로 해석했다. 비급여 진료의 필요성과 구조적 배경을 무시한 채, 병원이 환자를 대상으로 수익만을 추구하는 것처럼 묘사하는 것은 의료계를 부정적으로 몰아가는 프레임이다. 건강보험 수가 조정, 필수 의료 지원 강화, 보험사와 조정 등 다각적인 접근을 통한 균형 잡힌 보도가 요구된다.

▨ 딥시크

-<딥시크 개발 주도 ‘천재 소녀’… 中 2030 우상 됐다>(2월 1일 자 A25면)는 혁신적인 AI 기술 딥시크를 개발한 중국 젊은 엔지니어의 성공 스토리를 다뤘다. 현재 보도들은 주로 딥시크 자체의 기술력, 이를 개발한 엘리트 인재의 성공담, 영웅적인 서사에 초점을 맞춰 다소 아쉬운 면이 있다. 개별적인 기술 혁신 사례뿐만 아니라 중국의 AI 산업 전반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과 전략, R&D 투자, 정부의 정책적 지원, 기업 생태계 등 다양한 측면을 심층적으로 조명하는 기사가 더 필요하다.

-<中 비평준화의 힘… 영재 조기 발굴, 기술 인재로 키운다>(2월 7일 자 A2면)는 수월성을 강조한 것으로 읽힌다. 우리 교육 체제에서 형평성과 수월성은 논란 주제다. 형평성은 어느 학생에게나 동일한 교육을 제공하자는 것으로, 민주국가에서 너무도 당연하다. 세계 무대에서 치열하게 경쟁할 인재 양성을 위해 수월성도 놓쳐선 안 된다. 문제는 정부가 바뀔 때마다 중심축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교육이 형평성과 수월성이라는 두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갈 수 있도록 균형감을 갖고 계속적인 취재와 보도가 있으면 좋겠다. 조선일보가 수월성에만 관심을 갖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최근 오픈AI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의 방한에 맞춰 <올트먼·이재용·손정의 ‘AI 3국 동맹’>(2월 5일 자 A1면) 등에서 그의 행보를 보도했지만, 누구를 만났다는 열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삼성전자나 SK 모두 반도체 회사인데 왜 올트먼이 이재용 회장은 손정의 회장과 같이 만나고 SK에는 혼자 갔을까. 네이버와 카카오는 모두 거대 빅테크 플랫폼인데 왜 카카오만 만났을까. 독자 입장에서 가질 수 있는 질문을 기자가 먼저 제시하지 않았고, 입체적이고 심층적인 답도 내놓지 못했다.

-트럼프 2기 출범과 함께 관세 전쟁이 시작돼 산업적으로 가장 크게 타격을 받을 곳이 제조업인데, <조선·방산 상승세에… HD현대 8→5위, 한화 10→6위>(2월 7일 자 B2면) 같은 증권 기사 외에 대응 방안 등에 관한 기사나 칼럼이 잘 보이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과거 정책이나 추진 사업을 백안시하거나 이를 범죄 행위로까지 취급하는 것이다. 첫 시추가 끝난 대왕고래 사업에 대해서도 많은 언론이 이를 사기극으로 간주하면서 여론도 그렇게 형성되는 듯하다. 윤 대통령이 지난해 이 사업을 직접 발표하면서 빚어진 일이다. 그런 측면에서 <”경제성 없다”… 대왕고래 첫 시추는 실패>(2월 7일 자 A14면)는 객관적이며 합리적인 시각을 유지했다. 첫 시추에서 유전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이를 중단한다면 너무나 어리석은 일이다.

▨ 가자 지구

-<”트럼프는 가자에 말할 권리 없다… 우린 죽어도 못 떠난다”>(2월 7일 자 A16면)는 트럼프의 ‘가자 장악’ 구상에 대해 모바일 메신저로 만난 가자지구 주민 3인의 목소리를 소개했는데, 기사에 등장한 압둘 알나자르, 라나, 라마단 마르완씨가 가자 주민들을 어떻게 대표하는지 모호하다. 어렵게 취재한 인터뷰인지는 모르겠으나, 신상이 명확하지 않고 대표성도 없어 보여 “국제사회가 트럼프를 막아주세요”라는 말이 공허하게 들린다.

-<[우크라이나 침공 3년] “한국, 다른 나라 뒤에 숨을 수 있는 작은 나라 아냐… 능동적 결정해야”>(2월 5일 자 A8면)는 우리나라가 보다 넓은 시각과 주체적 태도로 외교에 임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제대로 지적했다. 한국은 경제적 규모, 국제적 위상으로 봤을 때 지금보다 훨씬 더 독립적이면서도 광범위한 시각을 갖고 국제 무대에서 움직여야 할 필요가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북핵 문제나 한미 관계에 지나치게 국한된 것이 사실이다.

-<팩트체크부터 검색·교열까지… AI 미디어 시대 연다>(2월 3일 자 A2면)를 통해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조선일보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미 많은 해외 언론사들이 AI에 대한 철학과 활용 원칙을 수립하고 이를 웹사이트에 공개하며 AI 저널리즘을 준비하고 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국내 언론사는 본격적인 도입과 실행에서 충분한 준비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IT 기업들이 AI 학습을 위해 신문 기사를 무단으로 활용하면서 언론사와 저작권 갈등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기사 데이터 사용 규칙을 포함한 명확한 AI 정책을 마련하고 공개한다면 국내 AI 저널리즘의 기준을 제시하는 중요한 선례가 될 것이다. 조선일보의 ‘AI 미디어 선언’에서 발 빠른 시대 적응을 볼 수 있었지만, 이를 통해 독자에게 무엇이 더 좋아지고 어떤 혜택이 돌아가는지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아 아쉬웠다. /정리=김정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