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조중식 부국장, 김별아·김재련·박원호·고산·민세진·정윤혁·한준 위원, 김도연 위원장, 금현섭 위원. /오종찬 기자

조선일보 독자권익보호위원회(위원장 김도연 태재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가 지난 8일 정례 회의를 열고 지난 한 달 조선일보 지면과 온라인 기사에 대해 토론했다. 김 위원장을 비롯해 고산(에이팀벤처스 대표), 금현섭(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김별아(소설가), 김재련(법무법인 온세상 대표 변호사), 민세진(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박원호(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정윤혁(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한준(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위원과 조중식 편집국 부국장이 참석했다. 김태수(변호사), 장부승(일본 관서외국어대 교수) 위원은 따로 의견을 보냈다.

[총선]

-조선일보는 사고(社告) <조선일보 ‘총선 관련 7대 기획’ 시작합니다>(2월 9일 자 A2면)에서 쌍방향 선거 상황판 업그레이드, 21대 국회에 대한 반성의 기록, 총선 팩트 체크, 지역구 후보 인물 탐구, 비례대표 후보 검증, AI를 이용한 총선 격전지 뉴스 보기 등을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런 기획 의도에 따라 기사가 얼마나 생산되었는지 살펴보았더니 그리 신통치 않았다. 선거 기간 중 여야가 50~60여 곳의 격전지를 언급했지만 기사가 커버한 격전지는 몇 개 되지 않았고, AI를 활용하지도 않았다. 공약 팩트 체크, 21대 국회 반성, 각 당의 정책·철학이 담긴 비례대표 후보 검증, 후보 인물 탐구 등도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기획의 좋은 취지가 제대로 구현되지 못한 듯하다.

-총선을 앞두고 나오는 기사를 보면 주요 인물 및 여야 갈등 등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았다. 새로 구성되는 22대 국회가 어떤 입법(立法)을 하고 어떤 방향으로 국가를 이끌어 나갈 건지 등은 거의 다루지 않았다. 관련 내용이 적어 쉽지는 않겠지만, 각 정당 사이트에 들어가면 ‘총선 10대 공약’ 같은 것들이 있다. 네거티브가 넘치는 선거판에 이런 주제가 대중의 관심을 끌지 않더라도 선거를 치르려면 반드시 이런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을 언론이 강조해야 한다.

-<강북을 주민 “우리가 만만하냐”면서도 “野 후보 당선될 것”>(3월 23일 자 A6면)은 강북을 선거구에 더불어민주당 후보자가 연속으로 변경되었고, 그럼에도 민주당 후보가 당선될 것으로 예측하는 주민들 인터뷰를 소개했다. 강북을 선거구 주민들이 이 기사를 읽으면 왠지 기분이 언짢을 듯하다. 주민의 입을 통해 말하긴 했지만, 민주당이 주민을 만만하게 대하는 태도에도 표를 준다는 점을 비꼬는 내용으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도덕적 공천 후보자에 대한 비판은 환영이지만 주민을 ‘생각 없는 유권자’로 간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공시가]

-<尹 “무모한 공시가 현실화 전면 폐지”>(3월 20일 자 A1면)는 지난 정부 방침이었던 공시가 현실화를 폐지하겠다는 내용이다. 정책에 문제가 있으면 수정·폐지할 수 있다. 하지만 공시가는 67개 행정·복지제도의 기준이 되는 지표다. 공시가 자체가 얼마나 적절한지와는 별개로 다른 67개의 제도적 판단에 핵심적 근거가 되고 있기 때문에 정책 변경은 대단히 신중해야 한다. 공시가와 관련해 충분한 논의가 있었는지, 폐지 근거 등은 명확한지, 이에 따른 연쇄·파급 효과는 검토되었는지 지적할 필요가 있다.

-<누릴 거 다 누리고 깨어있는 척… ‘진보 중년’을 아십니까>(3월 23일 자 ‘아무튼 주말’ B3면)는 4050세대 해부 리포트다. 그런데 “연령 효과를 거스르는 첫 변종 세대”를 설명하기 위해 인용된 의견이 전문가나 일반 시민 모두 익명(匿名)이다. 감정적인 근거보다 사회학적으로 정제된 분석 기사가 아쉬웠다.

-전태일재단과 조선일보 공동 기획인 ‘12 대 88의 사회를 넘자’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기업·노조가 함께 만든 ‘100억짜리 동행’>(3월 22일 자 A1·4·5면)은 부·울·경 대리기사 공제회, 동국제강의 직고용, 한노총의 연대임금 실험, 제3지대 노조 등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적극적 대안을 제시해 돋보였다. 우리 사회의 근간이 되는 이런 문제에 심층적으로 다가가는 것이 필요하다.

-<충북 세 살 아기, 손도 못 써보고 숨졌다>(4월 1일 자 A1면)의 부제목 ‘지방 의료 공백이 만든 비극’으로 짐작하건대 기사 방향을 정하고 취재를 거기에 꿰어 맞춘 느낌이다. 기사 논점도 왔다 갔다 한다. 기사에 나온 전문가 의견을 보면 상급병원 응급실에 갔어도 소생이 불가능한 상태였던 것 같은데, 충북 지역의 소아 응급의료 체계가 부실하다는 결론을 도출하고 있다. 제목도 선정적이다.

-<“박단은 간첩”… 동료들 휘어잡는 ‘백두대간(대통령이 백기 들 때까지 놔두라, 대화하면 간첩) 전공의’>(4월 8일 자 A6면)에서 ‘백두대간’이란 말을 썼는데, 왜 이런 말을 썼는지 모르겠다. 말 줄여 쓰기는 꼭 필요한 부분에 가능한 한 적게 쓰는 것이 좋다.

[이공계]

-<일본 이공계 대학 정원 4년간 1만1000명 확대>(3월 25일 자 A8면)를 읽은 독자들은 우리 사회도 같은 준비가 필요할 것이라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일본의 이공계 학위 취득자는 전체 졸업생의 약 35%이며 우리는 그 비율이 42%이다. 이를 졸업생 숫자로 환산하면 두 나라 모두 20만명 정도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산업 규모를 고려하면 우리는 오히려 이공계 인재를 과다하게 배출하고 있는 셈인데, 이는 고교 졸업자의 대학 진학률이 훨씬 높은 탓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공계 인재의 문제는 양이 아니라 질이라는 것을 지적해야 한다.

-<칼 휘두른 그놈도 집유로 풀려났다>(3월 26일 자 A10면)는 스토킹 범죄의 낮은 형량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스토킹 범죄의 특성상 가해자가 피해자에 대해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데, 피해자의 불안 해소와 행위자의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형량을 높이는 것뿐 아니라 전문가 상담 치료, 수강 명령 등이 필요하다는 것을 지적해야 한다.

-조선닷컴에서 경제 기사를 읽다가 ‘조선경제’ 코너를 살펴보니 경제 일반, 과학, 국제 경제, 머니, 부동산, 산업·재계, 생활경제, 스타트업 취중잡담, 자동차, 중기·벤처, 증권·금융, 테크 등 가나나순(順)으로 카테고리가 배열되어 있었다. 가나다순 대신 뉴스 가치나 관심 등에 따라 배열하는 게 타당할 것 같다. 또 하위 카테고리 중 ‘중기벤처’ 항목에는 중대재해처벌법 기사가 압도적으로 많고, ‘국제 경제’ 항목에는 한국 경제가 국제적 관점이 중요한 상황인데도 기사가 하루에 한두개꼴로 올라왔다. 최근 경영권 분쟁이 벌어진 한미사이언스 기사는 ‘과학’ 기사에 분류되어 있었다. 경제 기사 카테고리를 재편하고 관련 기사도 보강해야 한다.

[조선업]

-<조선업 호황 거제, 고향 떠난 청년들 돌아오게 하려면>(3월 14일 자 A5면)과 <‘조선업 상생 협약’ 1년… 근로자 1만5000명 늘고, 하청 업체 임금 7.5% 상승>(3월 26일 자 A12면) 등은 조선업 관련 기사인데, 두 기사가 대조적이다. 앞의 기사는 조선업의 메카 중 한 곳인 거제에서 청년 근로자들이 높은 노동 강도에 비해 낮은 임금 수준 때문에 고향을 떠난다고 했는데, 뒷기사는 조선업 협력업체의 근로자 수가 늘고 임금도 상승했다는 내용이다. 조선업 상생 협약에 대한 정부 발표를 단순히 전달하는 대신, 현장의 목소리와 분위기를 취재할 필요가 있다.

-<게시판 정보 천국 ‘레딧’, AI 훈련에 쓰일 ‘인간의 경험’ 팔려고 한다>(4월 5일 자 위클리비즈 B10면)에서 미국의 플랫폼 서비스인 ‘레딧’이 증시 상장을 위해 미 증권거래위원회에 제출한 286쪽짜리 증권등록신고서를 밑줄 치며 분석했다는 내용을 보고, 주요 외신을 찾아보니 겹치는 내용이 별로 없었다. 기자가 외신을 참고하기보다 보고서를 직접 읽고 기사를 쓴 것이다. 그래서 독창성 높은 심층 보도가 가능했다.

-<1999년 2415명, 2024년 10명 사망… 매뉴얼이 갈랐다>(4월 5일 자 A16면)는 대만 지진 피해가 적은 ‘이유’에 집중한 게 돋보였다. 국제 뉴스에서 재난 피해가 적을 경우 대개 단신 처리하는 것과 대조적이었다. 이전의 큰 지진 피해 이후 내진(耐震) 설계 기준을 높이고 지진 대응·훈련 센터를 설립하는 등 대만 정부의 중장기적 대응을 같이 소개했다. 우리나라의 내진 설계 및 안전 교육 등에 대한 매뉴얼이 제대로 만들어져 있는지, 실제 지진이 발생했을 때 제대로 작동하는지도 미리 점검할 필요가 있다.

-<선박서 “메이데이” → 다리 통제… 인명 대참사 막은 ‘기적의 90초’>(3월 28일 자 A16면)는 미 볼티모어 다리 붕괴 사고를 다룬 기사로, 대참사를 막은 경찰의 신속한 대응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었다. 기사 본문과는 별도로 한옆 ‘깨알지식’ 코너에 ‘메이데이’ 개념을 소개해 흥미롭게 읽었다. ‘잘 설명하는(explainable)’ 것에 중점을 두는 최근 저널리즘 흐름에도 어울리는 서비스다. 기사와 연관된 상식 콘텐츠를 많이 배치해야 한다.

[日전염병]

-<걸린 줄도 모르는데 치사율 30%… 日 전역 퍼지고 있는 이 병>(3월 20일 조선닷컴)은 독자적인 취재나 검증 과정 없이 외신을 인용할 경우 어떤 부작용이 생기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 병에 대해서 일본 신문에는 매년 연례적으로 나온다. 특히 ‘치사율 30%’라는 표현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 박테리아에 감염된 사람의 30%가 죽는다는 게 아니라 독성 쇼크가 일어났을 경우 치사율이 30%라는 말이다. 하지만 박테리아성 독성 쇼크가 발생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기 때문에 여기서 치사율 30%는 그리 걱정할 문제가 아니다. 이 병을 일으키는 화농성 연쇄구균은 일본에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많은 한국인들 몸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이 균 때문에 일본 여행을 재고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요즘 SNS를 통해 연예인 셀럽들의 사생활을 저격하거나 공방을 벌인 내용을 소재로 한 기사가 조선닷컴에 많아졌다. 연예인들의 시시콜콜한 사생활을 담은 기사는 독자 입장에서는 공해같이 느껴질 수 있다. 이런 기사는 확 줄이거나 차라리 싣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와는 성격이 다르지만 최근 아기 판다 푸바오 관련 기사들도 과한 것 같다. 푸바오에 관련된 온갖 정보를 실시간에 가깝게 전달하는 것은 ‘과잉 보도’로 보인다.

/정리=김정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