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독자권익보호위원회(위원장 김도연 태재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가 지난 19일 정례 회의를 열고 지난 한 달 조선일보 지면과 온라인 기사에 대해 토론했다. 김 위원장을 비롯해 고산(에이팀벤처스 대표), 김재련(법무 법인 온세상 대표 변호사), 민세진(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장부승(일본 관서외국어대 교수), 정윤혁(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위원과 조중식 편집국 부국장이 참석했다. 금현섭(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김별아(소설가), 김태수(변호사), 박원호(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한준(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위원은 따로 의견을 보냈다.
[민생 토론]
-<공매도·재건축·상속세… 한 달여간 민생 토론회 10번>(2월 9일 자 A6면)은 신년 업무 보고 대신 진행하는 대통령의 민생 토론회에서 많은 정책을 발표했다는 내용이다. 대통령의 민생 행보는 긍정적이지만 전국으로 개최지가 퍼지고 있고, 총선이 다가온다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발표하는 정책 대부분이 지출이 따르거나 규제를 완화해야 하는데, 이런 문제일수록 계획적이고 체계적인지 언론이 확인하고 검증해야 한다.
-<’늘봄학교’ 돌봄, 저녁까지 무료로 준다>(2월 6일 자 A1면)는 대통령이 참여한 민생 토론회에서 발표한 늘봄학교를 소개했는데, 발표 이후 이 제도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지 추적해 보도하지 않아 아쉬웠다. 공무원이나 교사들이 늘봄학교에 반대하는 의견이 많다는 기사는 있었지만 정책 자체의 문제를 지적한 기사는 없었다. 정부의 일방적 홍보에 치중하지 않고 사실과 분석에 기반한 기사가 아쉽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및 무(無)전공 입학 도입 등 이슈도 정부가 의도하는 긍정적 효과에 대한 보도가 압도적이고, 의도치 않은 부작용이나 준비 미비, 제도의 허점 등은 제대로 보도하지 않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내용 면에서는 포퓰리즘에, 형식 면에서는 권위주의에 경도되는 정책에 눈감아서는 안 된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충남 서천시장 화재 현장에서 만났다는 내용을 1월 24일 자 A1~3면에 걸쳐 보도했다. 정치적으로 중요한 일이긴 했지만 언론 대부분이 윤·한 만남 행사에 집중하다 보니 서천시장 화재와 삶터를 잃은 상인들은 들러리가 되어버렸다. 1면 <”韓도 서천 갑니다” 보고에… 尹 “같이 가자”>에 두 사람이 만나 악수하는 사진이 크게 실렸고, 3면 사진 2장에도 이들이 등장한다. 화재 상황은 A2면에서 다루었지만, 왜 불이 났고 무엇이 문제인지 등 화재에 대한 기본 정보가 너무 부실하다. 전체 기사 초점이 두 사람이 만난 점이라는 것은 이해하지만 큰 피해를 본 대형 화재를 너무 가볍게 다뤘다. 그곳에 사는 ‘사람(상인)’이 빠진 기사다. 이번 화재로 고통 받거나 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독자가 볼 때는 모욕으로 느낄 수 있다.
-<[金大中 칼럼] 보수 언론이 보수 정권 더 비판해야 하나?>(2월 13일 자 오피니언면)에서 “좌파 언론은 어땠는가? 좌파 언론은 좌우 구분 없이 공정했는가?”라고 했는데, 좌파 언론이 공정하지 않으니까 조선일보도 편향적으로 해도 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논리다. 언론이 정파(政派)가 아닌데 왜 특정 정파에 대해서 친소(親疏) 관계를 가려서 힘 조절을 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정통 언론은 누군가를 괴롭히려고 비판하는 게 아니다. 윤 정부가 잘못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기 때문에 잘되라고 비판하는 것이다.
[의대 증원]
-의대 증원 관련 분쟁이 본격화한 이후 차분하게 양측 주장을 분석하는 대신 지나치게 분쟁만을 다루는 국면으로 넘어간 것 같아 아쉽다. 의료계 파업, 휴학 등과 정부의 강경 대처가 맞서는 국면에서 언론이 양측 주장의 문제점을 적절하게 지적할 기회를 놓친 것 같다. 문제의 핵심은 대학 입학 정원 늘리기다. 대학 교육 문제인 만큼 언론이 교육 현장 목소리를 충분히 듣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 이제라도 2000명 증원 내용이 어떻고, 이들을 교육할 현장이 제대로 준비될 것인지 질문을 내놓고 상세히 규명해야 한다.
-<[社說] 의대 정원 늘린다고 파업하는 유일한 나라, 한국>(2월 19일 자 오피니언면)은 의사들이 집단행동으로 의사 수 확대를 막는 나라는 한국뿐이라며, 독일과 영국, 일본 사례를 들어 비교했다. 하지만 이 나라들의 의사 증원 과정을 보면 우리나라와 맥락이 다르다. 유럽의 의료 시스템은 공공화되어 있어서 의사가 사실상 공무원이다. 근무 지역·조건과 급여가 정해져 있다. 의사들이 의사 수를 늘려 달라고 요구한다. 그래야 자기 업무 부담이 줄기 때문이다. 의사 수급 체계가 다른 나라들과 우리나라를 비교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
-<스토킹으로 감옥 갔는데 또 ‘편지 스토킹’.. 막을 法 없다>(1월 13일 자 A10면)는 스토킹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가해자가 교도소 안에서도 그 피해자에게 또 편지를 보내는 일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내용이다. 현 스토킹 처벌법의 ‘100m 이내 접근 금지’에는 편지를 통한 접근 금지도 포함되는 것으로 적극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교도소에서 스토킹 범죄자 교정 프로그램을 제대로 적용하는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사람 있다”는 말에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2월 2일 자 A1면)는 문경 공장 화재로 소방관 2명이 순직했다는 안타까운 내용이다. <빈소 지키던 아버지 “아침 함께 먹고 보냈는데… 그게 마지막이라니”>(2월 3일 자 A10면)에선 가족·동료들의 슬픔을 전했다. 순직 소방관들의 희생에 경의를 표하는 것은 맞지만 감정적 기사로 그냥 끝나버려서는 안 된다. 당초 건물 안에 사람이 있었는지에 관해 엇갈리는 증언이 나오는 바람에 이번 참변이 일어났다. 앞으로 화재 현장에 도착했을 때 건물 안의 사람 존재 여부 판단, 건물의 구조적·재질적 특징 대처 등 화재 진압 수칙을 점검하고 문제점을 지적해야 비슷한 참사를 예방할 수 있다.
[최저임금]
-<[방현철의 경제로 세상 읽기] 90년대 홍콩 워킹맘(대졸 이상) 25%p 급증… ‘기적’ 뒤엔 외국인 가사도우미 있었다>(2월 13일 자 A30면)는 필리핀 출신 가사도우미 100명이 서울에 들어오는 시점에 맞춰 쓴 기사다. 기사의 핵심 중 하나가 가사도우미의 임금 수준이다. 가사도우미 시범 도입 시 최저임금이 적용될 것 같은데, 최저임금이 인권 보장 차원에서 중요하지만 산업 현장에서는 현실적으로 인건비 걱정을 많이 한다. 내국인과 외국인 근로자가 똑같은 최저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차원을 넘어서, 노동력 수요·공급 측면에서 서로가 합의할 수 있는 지점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청소부·경비원… 3시 50분, 새벽을 깨우려 달렸다>(1월 20일 자 A10면)은 당초 출발 시각을 15분 앞당겨 새벽 3시 50분 떠나는 첫차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인데 ‘민생’의 현장을 취재해서 반가웠다. 다만 새롭거나 다른 내용의 통찰과 성찰 없이 수박 겉핥기 같은 느낌도 들어 아쉬웠다. 그럼에도 이런 기사가 더 나와서 정치 과잉을 해소하고 오늘을 사는 서민들의 숨결과 목소리를 더 전달하기 바란다.
[과소비]
-<소셜미디어 과시욕이 만든 과소비 사회>(1월 20일 자 A1·5면)는 한국의 ‘과시 소비’ 성향을 소개하면서 높은 소셜미디어 이용률을 원인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소셜미디어 이용률과 과시 소비 성향의 인과관계에 관한 근거가 부족해 보인다. 소셜미디어가 사회적 비교를 과도하게 유발한다는 점에서 과시 소비의 연관성을 찾은 것 같은데, 이러한 연관성에 대한 객관적 자료와 깊이 있는 분석이 필요해 보인다.
-<’빅테크 독점’ 새 기준 낸 美·유럽… 한국도 쿠팡·배민 논란>(1월 27일 자 A8면)의 제목 중 ‘유럽과 미국이 함께 새 독점 기준을 만들었다’는 것은 맞지 않는다. 유럽은 빅테크 기업을 키우지 못하고 규제 일변도인 반면, 요즘 미국에선 플랫폼 규제가 동력을 잃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관련해 세계 각국이 빅테크를 ‘시장 지배적 사업자’로 사전에 선정해 규제하는 ‘사전 규제’를 추진 중인데, 과연 바람직한지에 균형 있는 시각을 보여줘야 한다. 조선일보는 어떤 때는 플랫폼 규제 정책을 지지하는가 하면, 다른 때는 반대하는 등 독자가 볼 때 관점이 뚜렷하지 않다. 국내 기업과 외국 기업에 따라 판단 기준이 달라지기도 한다. 이 문제는 우리나라가 혁신으로 갈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분수령이 될 수 있으니 혁신 친화적 태도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
-<인감증명까지, 1500가지 민원 서류 디지털 전환>(1월 31일 자 A1·8면)은 인감증명을 디지털 인감으로 대폭 전환하는 내용이 골자다. 하지만 기사에서 ‘디지털 전환’의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했고, 정부 발표도 그렇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중고차 거래가 한 해 400만건인데, 이때 인감증명이 필요하다. 하지만 세계 대부분 국가는 인감증명 없이 중고차를 거래한다. 왜 우리만 필요한가. 인감 제도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수 있도록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동성애자]
-<34세 동성애자, 佛 총리 됐다>(1월 10일자 A15면) 기사의 핵심은 가브리엘 아탈이 프랑스에서 역대 최연소 총리가 되었다는 것인데, 큰 제목을 ‘동성애자’로 달았다. 기사 내용도 대부분 가장 어린 총리에 대한 소개가 많았다. 동성애자라는 것은 단 한 문장이었다. 다른 언론 보도를 찾아봤더니 대부분 ‘최연소 총리’에 초점을 맞추었다. 조선일보만 선정적으로 제목을 뽑은 것 같아 촌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동성애를 이미 합법화한 국가도 많다. 그런데 마치 별나라에서 떨어진 것처럼 제목을 다는 것은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저출생으로 선수 줄자 세계 무대서 사라지는 한국 구기>(1월 18일 자 A22면)를 보고 저출생 여파가 스포츠계에도 미쳤다는 사실과 “키 큰 순서대로 망할 것”이라는 배구·농구계의 자조적 목소리가 놀라웠다. 스포츠면이라 그렇겠지만 기사 초점을 국제 대회의 성적 부진을 염려하며 협회의 부실한 대응을 비판하는 데 맞춘 것은 아쉬웠다. 엘리트 체육의 한계라든가, 생활 체육으로 청소년층을 적극 끌어들이는 해외 사례 등을 함께 제시해 주었다면 대책이 없어 답답한 상황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을 것 같다.
정리=김정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