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부터 시계 반대방향으로 박상욱·정윤혁·한준·김재련·금현섭 위원, 안덕기 부국장, 박원호·민세진·장부승·고산 위원. /남강호 기자

조선일보 독자권익보호위원회(위원장 김도연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가 지난 9일 정례 회의를 열고 지난 한 달 조선일보 지면과 온라인 기사에 대해 토론했다. 고산(에이팀벤처스 대표), 금현섭(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김재련(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 김태수(변호사), 민세진(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박상욱(서울대 과학학과 교수), 박원호(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장부승(일본 관서외국어대 교수), 정윤혁(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한준(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위원과 안덕기 편집국 부국장이 참석했다. 김 위원장과 김별아(소설가) 위원은 따로 의견을 보냈다.

[정치 분열]

-<하나의 나라, 두 쪽 난 국민> 기획 기사는 각종 여론조사를 동원해 우리 사회의 정치 양극화가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 시의적절하게 보여주었다. 그런데 관련 인터뷰나 기고는 ‘공자님 말씀’ 같다는 인상을 준다. 미국의 뉴딜연합처럼 자기 쪽 지지 세력을 확보하면서도 이질적인 세력을 품어 중간층으로 확장,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 연합을 부각하고 알려주어야 한다.

-극심한 정치적 양극화는 정치권에 1차 책임이, 언론에 2차 책임이 있다고 본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적 타협과 연합 정치를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언론이 명백한 거짓말에 대한 팩트체크 기사를 계속 쓰는 것도 중요하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 당선 전후 벌어진 혼란 등 극심한 정치 갈등은 전 세계적 현상이기도 하다. 이런 국내외 상황을 다각적으로 분석하는 기획도 필요하다.

- <가짜 뉴스에 민주주의가 죽어간다>(12월 14일 자 A1면)에서 독일과 프랑스, 미국 등에서 가짜 뉴스에 제재를 가하지 않거나 방치한 플랫폼 기업에 처벌을 가하는 내용이 관심을 끌었다. 국내 논의가 제자리걸음인 것은 가짜 뉴스가 정치권과 결탁해 진영 논리를 부추기는 가운데 이익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방증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짜 뉴스를 줄이기 위한 포털 사이트 역할 등 대처 방안 논의가 필요하다.

[무인기]

-북한 무인기(드론) 도발과 관련, 안보 태세 미비에 대해 ‘네 탓 공방’을 벌이는 정치권 행태가 중계방송하듯이 보도됐다. 이런 정치권 갈등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언론에 노출되고 싶은 속내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행태는 언론이 자체 필터링해야 한다. 신문에 이런 행태가 계속 등장하는 것은 일종의 공공재를 개인 이익을 위해 편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북한 무인기(드론)들이 우리 영공을 침범한 이후 군에 비판이 쏟아졌다. 하지만 군을 때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첨단 무기 체계도 군인들의 사기와 결전 의지가 있어야 빛을 발할 수 있다. 지금 우리 군인들은 굉장히 취약해지고 있다. 군인들 사기를 높여주는 것은 정치권에서 해야 할 일이다.

[안전]

-<삽시간에 600m 플라스틱 터널로 번져… 불똥이 비처럼 쏟아졌다>(12월 30일 자 A8면)는 화재에 취약한 터널의 가연성 재질에 초점을 맞춰 화재 사고를 보도했다. 하지만 터널 또는 전국 고속도로 터널 내 대피 공간 설치 여부와 사고 발생 시 이용 방법 등이 더 궁금하다. <”10위권 경제 대국이 방재는 후진국… 언제까지 소 잃고 외양간 고칠 건가”>(12월 17일 자 B8면)를 보면 세월호 사고 이후 안전 정책과 관련해 우리가 얻은 성과는 굉장히 회의적이다. 안전·구조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한 게 아니라 정치적 선동 도구로 악용된 측면이 있다. 핼러윈 참사를 계기로 자연재해·구조물·교통·밀집 군중으로부터 안전을 보장할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언론이 강조해야 한다.

-조선일보가 안전 관련 캠페인성 기획을 대대적으로 전개하면 좋겠다. 예를 들어, 앰뷸런스가 지나갈 때 차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하다. 고층 아파트에서 불이 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우리 생활 주변 소재는 무궁무진할 것이다.

-방음 터널 화재 사고 이후 <신혼집 가구 보고 오다… 방음 터널이 앗아간 예비 신부>(1월 4일 자 A10면) 등의 희생자 사연을 편한 시선으로 보기 어려웠다. 핼러윈 참사 이후 사상자 신원·사연 공개를 언론에서 자제하는 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핼러윈 사고 트라우마가 남아 있는데 방음 터널 화재 사고 희생자 사연을 잇따라 소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각종 재난·재해 희생자 보도 방향·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시위로 서울 지하철이 지연 운행되자 언론에 두드려 맞았다. 이들이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치고 싶어서 민폐를 끼친 것은 아닐 것이다. 분명히 이유가 있을 텐데, 그 이유를 들어보고 커버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조선일보가 그런 역할을 맡으면 사회적 파급력이 클 것이다.

-<영하 15도… 여기서 사는 사람들은 더 춥습니다>(12월 23일자 A8면)에서 크리스마스와 세밑에 밀어닥친 한파와 불황에 직격탄을 맞는 취약 계층의 어려운 상황을 잘 보여주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은 보수 정론지가 의식적·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다.

[대학 개혁]

-교육부가 대학 개혁에 열을 올리며 각종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대학 간 M&A 유도… 단과대만 쪼개 팔기도 가능해진다>(12월 17일 자 A4면)는 대학 경영 개선을 위해 일부 시설을 매각 가능하게 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제목 중 ‘단과대 쪼개 팔기’ 표현은 어감이 부정적이고 품위가 떨어진다는 느낌을 준다. <대학에 스크린 골프장>(1월 9일 자 A10면)은 경영 부실 대학의 경영 개선을 위해 돈을 벌 수 있게 해주겠다는 내용인데, 문제가 있어 보인다. 부실 대학은 정리해야 하는데 스크린 골프장 같은 수익 사업을 통해서 연명하게 해주는 것은 전체 구조 조정 방향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해야 한다.

- <[기자의 視角] 지방대 살아야 지역도 산다>(12월 17일 자 A30면)는 지방대가 망하는 원인 중 하나로 재정 위기를 꼽았다. 하지만 대학 위기의 근본 원인은 학령인구 감소, 정부 규제, 혁신 부재 등이다. 이런 근본 원인에 대한 고찰 없이 지방대 위기를 돈 문제로만 보는 것은 협소하고 근시안적인 시각이 될 수 있다.

-<메기 아닌 미꾸라지? 인터넷뱅크 건전성 악화>(12월 15일 자 B4면)는 인터넷뱅크의 건전성 악화 근거로 ‘고정이하여신(3개월 이상 연체된 채권)’ 규모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건전성 지표로 일반적으로 살펴보는 고정이하여신 ‘비율’ 대신 ‘금액 규모’만 가지고 그래프를 만들고 기사화한 것이 의아했다. 이 비율은 작은데 금액은 더 큰 경우가 생겨 인터넷뱅크를 전체적으로 평가하는 데 혼동을 주었다. <공기업, 영업익 61% 줄어도 직원 늘려>(12월 17일 자 A1면)도 공기업 수익성 평가 지표로 사용하는 ‘영업이익률’ 대신 ‘영업이익 규모’만 가지고 기사화해 제대로 판단할 수 없었다.

-<감사원, 통계 조작 의혹 홍장표 前 수석 소환 방침>(12월 17일 자 A12면) 등 통계 조작 의혹 기사가 많았다. 하지만 통계 전문가는 등장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이 안 나오면 자칫 기사가 ‘몰아가기’가 될 수 있다. 누가 무슨 발언을 했다더라 하는데, 그것은 정황 증거일 뿐 ‘조작’은 아니다. 통계와 관련해 의사 결정 과정의 문제를 지적할 수 있지만 실제로 통계 자료를 만드는 프로세스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통계를 정치적 공방에서 자유롭게 해주는 게 중요하다.

-<사외이사 ‘거수기 투표’ 여전, 안건 찬성률 99.3%>(12월 28일 자 B1면)는 기업 이사회에 상정되는 안건 중 원안(原案) 가결 비율이 너무 높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요즘 이사들의 법적 책임이 굉장히 높아졌다. 안건에 대해 그냥 거수기 노릇만 했다가 법적 책임을 지고 감옥에 갈 수 있다. 반대로 가결이 안 되면 그것은 회사가 일을 잘못한 것이 된다. 그래서 회사 측이 치열하게 검토한 후 안건을 올리기 때문에 찬성률이 높은 측면도 있다. 단지 안건 찬성률이 높다고 ‘거수기 투표’라고 규정하는 것은 기업 현장을 제대로 반영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세계 최대 규모의 전자 산업 전시회인 CES와 관련해 <올해 IT 트렌드는 생활 밀착, 영역 파괴>(1월 5일 자 A1면) 등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주요 대기업과 대학생 창업 벤처가 대거 참여했다. 하지만 독자들에게 글로벌한 시각을 제공하기 위해 구글·아마존·소니 같은 외국 기업 기사도 더 비중 있게 다루는 것이 바람직했다. 중국은 코로나 사태와 정치적 이유 등으로 참가가 저조했지만, 중국 기업의 경쟁력 자체를 왜소한 것으로 여기는 것은 오해일 수 있다. <시연 중 제품(스마트 안경) 꺼지고 TV 불량… CES서 쪼그라든 중국>(1월 7일 자 A2면) 제목은 적절치 않았다.

-<다누리, 마침내 달을 품다>(12월 29일 자 A1면) 등에서 한국 최초 달 궤도선 ‘다누리’가 목표한 달 궤도 진입에 성공한 것을 축하했다. 하지만 한국이 전 세계에서 몇 번째로 달 궤도에 진입했다는 식의 접근은 구태의연한 방식이다. 이제 세계의 우주개발 판도가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등 큰 그림을 국민들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도 본격 추진하기로 공언한 우주산업에 대한 미래 전망을 알려주어야 한다.

[반격 능력]

-<日, 3대 안보 문서에 자위대 ‘반격 능력(유사시 선제 타격 가능)’ 못 박았다>(12월 14일 자 A16면)는 일본의 자민·공명 연립 여당이 3대 안보 문서 개정안에 합의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국가안보전략문서를 보면 조선일보를 비롯한 국내 언론이 보도한 “(일본의) 선제공격이 가능해졌다” 논조와는 거리가 있다. 이 문서에 나오는 ‘반격 능력’은 일본에 대한 무력 공격의 하나로 탄도미사일 공격이 이루어졌을 때 반격해 적 미사일 기지를 섬멸하겠다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선제공격’이 아니다. ‘무력 공격이 발생해야만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공 제대로 던지는 학생 드물고 비만·과체중이 30%… ‘저체력’ 방치 언제까지>(1월 6일 자 A29면)는 뒷전으로 밀리는 생활체육과 체육교육에 대해 짚어준 반가운 기사였다. 체력이 국력인 것은 개인의 삶의 질, 그리고 사회의 건강과 직결되기 때문일 것이다.

정리=김정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