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취미는 호두 속껍질 벗기기이다. 호두 알맹이를 물에 담가놓으면 속껍질이 분다. 이쑤시개나 바늘처럼 가늘고 뾰족한 물건으로 살살 긁으면 속껍질이 조금씩 일어나다가 마침내 벗겨진다. 호두 알맹이는 사람 뇌처럼 주름지고 굴곡진 곳이 많아서 쉽지는 않다. 하지만 능숙한 경지에 이르면 속껍질 전체를 한꺼번에 벗겨낼 수도 있다. 어머니는 “이렇게 될 때의 쾌감이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한다. 어머니가 오래 했던 폐백·이바지 품목 중 하나가 호두를 설탕에 절인 호두정과다. 호두정과에 들어가는 호두 알맹이는 속껍질을 벗겨야 씁쓸한 맛이 나지 않아 훨씬 고급스럽다. 그래서 시작한 호두 속껍질 벗기기가 어느새 어머니의 취미가 된 것이다.
가을은 견과류의 계절이다. 호두를 비롯해 땅콩·아몬드 등 견과류는 여러 기관과 매체에서 ‘슈퍼 푸드’로 선정했을 만큼 언제 먹어도 이롭지만 특히 제철인 가을에 가장 맛있고 영양도 높다. 가을철에는 밤낮으로 기온차가 크고, 일조량이 줄어든다. 불면증이 생기거나 심해질 수 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면 뇌도 손상될 수 있다. 호두는 체내 멜라토닌 함량을 늘려주고 불면증 해소에 도움이 되는 마그네슘과 칼륨이 풍부하다. 뇌 조직 세포의 신진대사를 촉진하는 레시틴 함량도 높아 스트레스에 인한 불면증에도 효과적이다. 아몬드에는 트립토판 성분이 풍부한데, 트립토판은 멜라토닌 분비를 촉진한다. 호두와 마찬가지로 마그네슘이 풍부해 수면에 방해가 되는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를 낮춰준다.
우울하거나 불안하다는 이들이 요즘 늘었다. 코로나로 집에 콕 박혀 지낸 기간이 하염없이 길어지면서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집에만 있다 보니 우울해지고 생각만 많아져서 불안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견과류는 특히 챙겨 먹어야 할 음식이 됐다. 견과류는 세로토닌 대사를 늘려 행복감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견과류에 풍부한 식물성 오메가3 지방산인 리놀렌산은 혈압을 낮춰 스트레스와 불안감 해소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졌다. 리놀렌산은 특히 호두에 많이 들어있다. 호두에는 칼륨과 비타민 B1도 많은데, 피로 해소와 고혈압 예방에 효과적이다.
견과류를 찬장에 두는 집이 많은데, 냉장고에 시원하게 보관해야 한다. 견과류에는 지방이 다량 함유됐다. 리놀렌산 등 식물성 기름이라 몸에 이롭다지만 역시 기름이라 산패하거나 곰팡이에 오염되기 쉽다. 견과류를 실내에 보관하면 견과류가 산패하거나 곰팡이에 오염돼 아플라톡신이라는 물질이 생길 가능성이 높아진다. 아플라톡신은 위암을 유발할 수 있어 국제암연구소에서 1급 발암물질로 분류한 바 있다.
마트에 가보니 햇 호두가 나와 있다. 주말에 부모님댁 가면 틀림없이 어머니는 불린 호두 알맹이를 앞에 놓고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을 것이다. 나를 올려다보며 “내 취미가 참 든적스럽다”며 웃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까지만 말고 당신도 좀 드시라고 말씀 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