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그릇에 봉긋하게 담긴 쌀밥은 ‘든든한 한 끼’의 상징이다. 한국인이라면 쌀밥을 먹어야 ‘밥심’이 생긴다. 쌀 없이 살 수 없는 ‘쌀의 민족’이지만, 식습관의 변화와 1인 가구 증가 등으로 점차 쌀 소비량이 줄어들고 있다. 소비량은 줄었지만, 쌀의 질과 소비자들의 눈높이는 높아졌다. 여기에 코로나19로 건강이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르며, 면역력 향상, 생체리듬 조절, 질병의 방지와 회복, 노화 억제 등 생체조절 기능을 지닌 성분을 함유하거나 보강하기 위해 개량된 ‘기능성 쌀’이 곡류 소비시장을 견인하고 있다. 쌀의 효용이 포만감에서 맛과 건강 기능성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보통 흰색 쌀(백미)과는 달리 특정 영양소를 가진 '기능성 쌀'은 색깔을 띠는 경우가 많다. /Getty Images Bank

◇우리 쌀밥의 힘

김윤인 조선이공대 식품영양조리학부 교수는 “쌀의 주성분인 당질은 뇌 활동을 돕고 점막세포, 신경세포 구성 성분이 되는 우수한 영양원”이라며 “최근 유럽에서도'글루텐 프리' 대체재로 쌀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2017년 분당제생병원 공동임상 결과, 쌀밥이 비만과 당뇨병 예방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식품연구원 조사에서는 쌀에 함유된 토코페롤, 감마 오리자놀 등 항산화 물질은 노화를 예방하고 옥타코사놀은 지구력 향상, 펩타이드 성분은 혈압 억제, 페놀산은 기억력 손상을 막는 데 효능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고지혈증 예방에 관여하는 기능성 성분인 감마 오리자놀의 경우 일반적으로 우리 쌀의 효능이 외국 품종보다 우수하다.

우리 쌀은 맛도 좋다. 지난 10년간 우리 쌀과 경쟁하는 외국 쌀을 대상으로 국내외에서 실시한 밥맛 검정 결과 우리 쌀이 더 우수하다는 결과를 얻었다. 최근 맛있는 쌀로 인기가 높은 ‘골드퀸’은 아밀로스 함량이 낮아 멥쌀과 찹쌀의 중간 정도 식감을 지니며, 팝콘처럼 구수한 향이 난다.

◇비만-당뇨 예방 기능이 있는 ‘도담쌀’ ‘눈큰흑찰’

‘도담쌀’은 ‘착한 탄수화물’로 알려진 저항저분 함량이 일반 쌀보다 10배 이상 높아 지방은 감소하고 장내 유익균은 증가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당뇨 예방과 혈당 조절에도 효과적이다. 차병원의 공동임상 결과, 도담쌀로 만든 선식을 아침, 저녁으로 2주간 섭취한 환자들은 일반 쌀 선식을 먹은 환자에 비해 인슐린 저항성 지표(HOMA-IR)가 38.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도담쌀은 일반 밥쌀과 전분 특성이 달라 고칼로리 가공식품인 피자, 과자 등 원료로 많이 쓰인다.

보통 쌀보다 쌀눈이 3배 정도 큰 ‘눈큰흑찰’도 비만과 고혈압, 고혈당 등 대사증후군 예방에 효과가 있다. 비만 쥐에게 눈큰흑찰을 먹였더니, 일반 쌀을 먹은 쥐들에 비해 체지방이 9.3% 감소했다. 인체 복용 실험에서도 하루 한 끼씩 눈큰흑찰 선식을 3개월 동안 먹은 대사증후군 환자 21명의 체중이 평균 1.5㎏ 줄었고, 섭취한 열량도 368kcal 감소했다. 눈큰흑찰에는 혈압 조절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바(GABA) 성분이 일반 쌀보다 8배 이상 들어 있다. 눈큰흑찰은 밥을 지을 때 섞어 먹는 용도로 주로 쓰인다.

◇노화를 막아주는 ‘흑진미’, ‘적진주2호’

노화를 막아주는 항산화 성분이 많이 들어 있는 쌀 품종도 있다. ‘흑진미’와 ‘적진주2호’가 대표적이다. 흑진미는 검정 쌀(흑미)에 주로 들어 있는 안토시아닌과 붉은 쌀(적미)의 대표 성분인 폴리페놀 성분을 다량 함유하고 있다. 안토시아닌과 폴리페놀은 활성산소의 산화 작용을 억제해 세포 노화를 늦추는 기능을 한다. 흑진미의 안토시아닌 함량은 100g당 60.2㎎으로 흑미 중 안토시아닌 함량이 높은 ‘보석흑찰’과 비슷한 수준이고, 폴리페놀 함량은 100g당 13.3㎎으로 적미인 ‘홍진주’보다 최대 2배쯤 많다.

적진주2호의 폴리페놀 함량도 100g당 16.4㎎으로, 기존 ‘적진주’(9㎎)에 비해 두 배가량 높다. ‘건강홍미’ 역시 폴리페놀 성분이 풍부하고 감마 오리자놀 함량 또한 높다.

◇파스타는 ‘새미면’, 편의점 도시락은 ‘미호’

특정 가공식품을 만드는 데 적합한 품종도 있다. ‘새미면’은 아밀로스 함량이 26.7%로 20% 이내인 보통 쌀보다 높아 끈적이지 않다. 이 쌀은 파스타 면이나 쌀국수용 면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미호’는 편의점 도시락 등 가공용 밥으로 적합한 품종이다. 가공밥은 냉장(3℃) 또는 냉동(-18℃) 상태로 보관했다가, 먹기 위해 데우거나 해동하는 과정에서 밥알의 형태가 제대로 유지되는 것이 중요하다. 미호는 밥알의 경도가 잘 유지돼 모양이 무너지지 않는다. 또한 밥이 식어도 딱딱해지지 않고 찰기를 유지해 배식 시간이 긴 급식용으로도 쓰인다.

최고 품질 쌀 개발 프로젝트

2003년부터 18품종 개발, 전국에 보급

지난해 우리 국민은 1인당 밥쌀로 61kg을 먹었는데 이는 1970년의 136kg와 비교하면 절반도 안 되는 수치이다. 쌀을 대체할 수 있는 먹을거리가 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쌀의 주성분인 탄수화물을 과도하게 섭취하면 당뇨나 비만 위험이 증가한다는 인식도 영향을 미쳤다. 이와 같은 쌀 소비량 감소와 문제 인식은 국내 벼 품종 개발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은 국제 쌀 시장 개방과 맞물려 우리나라 쌀 연구의 방향을 고품질 중심으로 완전히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2000년대 초 정부는 ‘최고 품질 쌀 개발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기존 쌀에 비해 최고 품질 쌀은 품종 개발 단계부터 엄격한 4가지 기준을 설정했다. 밥맛은 국내에서 가장 맛있는 ‘일품벼’보다 좋아야 하고, 쌀 외관 품질은 ‘추청벼’보다 좋아야 하며, 도정 특성은 왕겨 껍질이 얇고 쭉정이가 적어 도정수율이 75% 이상을 충족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농가에서 농약 없이 안전하게 재배 할 수 있도록 병해충 저항성 유전자를 최소한 2개 이상 가져야 한다.

이런 기준에 맞춰 2003년부터 지금까지 ‘삼광’ ‘영호진미’ ‘하이아미’ ‘해품’ ‘해담쌀’ ‘현품’ ‘진수미’ ‘예찬’ ‘해들’ 등 최고 품질 쌀 18품종을 개발하여 전국에 보급하고 있다.

공동기획 : 농림축산식품부·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