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걷기대회> 참가번호 14740 이병곤 님 제공

청명한 하늘과 함께, 삭막한 길거리조차 붉고 노란빛으로 물들여 우리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했던 가을도 어느새 지나가고 있습니다. 과학적으로는 계절에 따른 냄새가 없다고 하지만 우리는 감성적으로 그 계절이 지닌 특유의 냄새가 있음을 압니다. 그건 사람이라는 존재가 모든 것을 이성적으로만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때때로 감정이 내 주변을 감싸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우리는 사랑을 하고 서로 따뜻함을 나누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아름다운 풍경과 평소 소홀히 했던 제 주변의 것들을 다시 보게 될 때 두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는 ‘이걸 나 혼자 보기 너무 아깝다’ 다른 하나는 ‘왜 진작 이걸 발견하지 못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평소 사진 찍기를 좋아해 여러 출사지들을 다니면서도 정작 내가 사는 곳에 대해서는 단지 ‘볼 것 없는 곳’ ‘여기만 아니면 될 것 같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이번 경험을 통해서 제가 사는 이곳이야말로 최고로 아름다운 곳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느림’이란 우리 삶에서 참으로 중요한 요소인 것 같습니다. 예전보다는 나아졌다고는 하나 우리는 항상 ‘빨리빨리’를 내세우며 모든 일을 빠르게 처리하고 빠르게 끝내는 게 일상화되어있지요. 물론 이것이 지금의 우리를 있게 했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세계의 리더가 될 수 있는 토대가 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TV프로그램에서 외국인들이 나와 우리나라의 빨리빨리 문화에 감탄하는 것을 보면 저 또한 자부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쉼표가 필요한 법. 우리가 빠르게 빠르게 전진하면 그만큼 놓치고 지나가는 것들이 많습니다. 저는 우리 주변의 풍경이야말로 우리가 놓치고 지나가는 가장 큰 부분 중 하나가 아닌가 싶습니다. 누구에게는 늘 마주치는 일상, 풍경일지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더없이 아름다운 곳이 될 수 있고 늘 보는 곳이라도 자세히 보면 또 다른 매력이 생겨나는 곳이 있습니다.

저 또한 평소에는 운동을 할 때도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자전거를 타며 동네를 한 바퀴씩 돕니다. 그냥 걷는 것만으로는 ‘재미’도 없고 너무 ‘느리다’라는 생각이 가득했거든요. 하지만 이번 조선일보의 ‘동행’의 목적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물론 시민들의 건강을 위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또 다른 의미로는 우리에게 한번 ‘느림의 미학’을 한번 느껴보라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귀에 이어폰도 꽂지 않고, 자전거도 없이 천천히 걸으며 동네를 한번 돌아보았습니다. 그러고 나니 비로소 익숙했던 풍경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냇가의 물소리를 들으며 저 멀리 있는 산이 어떤 산일까 생각하게 되고, 지나가는 풍경들이 점점 내 마음속 깊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평소 지나치기만 했던 성당, 향교, 공원 등이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익숙했던 풍경들이 익숙하지 않음으로 새로운 감동을 만들어냈고 그 기쁨이 긴 시간 주변에 머물렀습니다.

단지 평소보다 주변을 더 살펴보게 되었을 뿐인데 이런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될 줄이야. 처음에는 ‘그냥 한 번 해 봐야겠다’였지만 지금은 매일 다른 분들께도 느껴보시라고 얘기해 볼 만큼 생각이 많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경험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들은 ‘동행’ 잘 하고 계신가요?


이병곤 (147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