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항상 걷고 있었다.
2012년 대학생 1학년,
스무 살의 설레는 마음을 안고 서울을 정처 없이 걸었다.
길거리에 있는 간판, 활짝 웃고 이야기하며 지나가는 사람들, 지난 20년간 살았던 고향에서는 보기 힘든 고궁들.
길거리에 여유롭게 거니는 사람들도, 꺼질 줄 모르는 밤하늘 아래 반짝이는 가로등과 간판의 불빛들.
나도 이 반짝이는 서울에 속해있는 것 같아 행복했다.
2013년 대학 여름방학,
즉흥적으로 갔던 교토에서 혼자 목적지도 없이 걸었다.
이제껏 내가 살아왔던 한국과는 너무 다른 풍경들과 사원, 골목 사이사이에 숨겨진 귀여운 가게들.
낯선 히라가나와 한자들을 보며 이건 뭘까 저건 뭘까 생각하기도 하고, 저 멀리 가게에서 풍겨오는 맛있는 다코야키에 이끌리기도 하며 걷고 걸었다.
2014년 대학생 3학년,
이제껏 걸으면서 알게 된 내가 좋아하는 그 길들을 혼자가 아닌 둘이서 손을 잡고 걸었다.
좋아하는 사람과 손을 잡고 자주 걸었던 장소를 걸으니 또 다른 느낌이 들었다.
자주 거닐며 곳곳에 숨어있는 나만 알 것 같은 보물 장소를 알려주기도 하고, 때론 설레는 감정을 참을 수 없어 걷지 못하고 폴짝폴짝 뛰어다니기도 하고, 헤어지는 게 괜히 아쉬워 걸었던 장소를 또 걷고 걸었다.
그러다 취업 준비와 함께 나는 걷는 것을 멈추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못할까 봐, 밥벌이를 하지 못할까 봐.
그렇게 좋아하는 것을 잠깐 멈추었다. 직장을 가지면 그렇게 좋아하는 걷기를 다시 시작해야지 다짐한 채 그렇게 6년이 지났다.
흘러가는 대로 정처 없이 걸었던 나날들을 뒤로하고, 일을 시작한 후 그렇게 걷기는 완전히 잊었다.
직장 생활은 취준생이었던 그 당시의 내가 꿈꿔왔던 생활과는 달랐다.
내게 주어진 책임들에 어깨가 무거웠고 퇴근시간이 되면 무거웠던 어깨를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기 바빴다.
때론 집에 돌아오는 버스 창문 밖으로 웃으며 걷고 있는 대학생들을 보며 ‘나도 저런 때가 있었는데’라고 생각하기도 하면서 ‘지금의 나는 잠자는 시간도 부족해. 집에 가만히 누워있고 싶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걷기’를 잊고 살았다.
2021 직장인,
가족 카카오톡 방에 엄마가 올려준 포스터 한 장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동행 걷기대회’ 왜인지 모르게 마음이 이끌려 정신을 차려보니 대회 참가를 신청하고 난 뒤였다.
그렇게 옷을 단단히 여미고 공원을 향해 걸었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내 볼을 스치고, 가슴 깊숙이 들어오는 찬 공기가 내 기분을 상쾌하게 했다.
잊고 있었던 그때가 떠올랐다. 아무 생각 없이 거닐었던 그때.
특별할 것 없이 ‘지극히 개인적인 걷기’였지만 내가 했던 그 무엇보다 나를 충만하게 만들었던 시간.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었던 시간.
니체는 행복을 느끼기 위해 필요한 것은 가장 소소한 것, 가장 조용한 것, 가장 가벼운 것, 도마뱀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한 번의 숨결, 한 줄기 미풍, 한 번의 눈 맞춤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걸으면서 나는 그렇게 다시 한번 행복을 느꼈다.
걸으며 나의 외투가 싸악싸악 스치는 소리.
천변을 거닐면 보이는 가로등 불빛이 반사되어 만들어진 반짝이는 일렁임.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이 기분 좋게 내 볼을 쓰다듬어 주는 촉감.
앞만 바라보며 걸었던 지난날들에 대한 아쉬움은 뒤로한 채 그렇게 나는 다시 걸었다.
서지윤 (277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