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1년 6월 26일 자 B5면 ‘김인혜의 살롱 드 경성’ 연재 칼럼에 “화가들에 사랑채 내준 정비업체 사장… 사위 서세옥도 모든 작품 내놓고 떠나”라는 제목의 글이 실린 바 있습니다. 이 글에서 필자는 “을지로 6가에 최초로 조선인이 운영하는 자동차 정비 회사, ‘경성서비스공업사’가 문을 열었으니, 이 회사 창립자가 바로 정무묵·정형묵이었다”고 하였으나, 실제로 이 회사를 ‘처음’ 설립한 사람은 정형묵(1905~1985)이었기에 바로잡습니다.
경성서비스공업사를 설립한 정형묵은 여러 정치인을 후원했는데, 그중 한 명이 여운형이었습니다. 정형묵은 일제강점기 여운형에게 막대한 금액의 독립운동 자금을 제공하였으며, 여운형의 동생 여운홍의 회고록에는, 1945년 8월 15일 해방되던 날 새벽 경성서비스 대표 정형묵이 “이런 날이 올 것을 미리 예상하고 준비해 두었던” 차가 도착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1947년 여운형이 암살될 당시 최후를 맞이한 곳이 정형묵이 제공한 이 자동차 안입니다.
정형묵은 미국인 헨리 콜브런의 정비 전문 공장에서 기술을 익힌, 초기 자동차 정비업계의 선구자였습니다. 1947년 전재(戰災) 동포 후원 음악회에 감명을 받아, 후원금 1500원을 희사하는 등 다방면에 걸쳐 폭넓은 후원을 한 기업인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