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노마키 북상천 너머로 보이는 바다 풍경. /필자 제공

일본 미야기현 이시노마키(石巻). 산리쿠(三陸) 어장에서 올라온 생선이 모이는 이 어업 도시는,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일본과는 결이 다릅니다.

니혼(日本), 니혼진(日本人)은 스스로를 오랫동안 ‘농경 민족(農耕民族)’이라 규정해 왔습니다. 논농사를 위해서는 물길을 관리하고 모를 심고 추수하는 과정에서 마을 사람들 간 공동 작업과 협력이 필수적입니다. 이 과정에서 개인보다 집단이 우선하는 ‘동조 압력(同調壓力)’이 강하게 형성됩니다. 낯설지 않은 설명입니다.

그러나 이시노마키에서는 이 공식이 그대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이곳에서 만난 한 프랑스 여성은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 남성과 결혼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일본인은 속을 알기 어렵고, 한국인은 이해하기 쉽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본인은 ‘예스’라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노’를 품는 경우가 많고, 표정만으로는 감정을 읽기 어렵습니다. 반면 한국인은 희로애락이 얼굴에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이를 일본식 개념으로 풀면 혼네(本音)와 다테마에(建前)입니다. 일본 사회는 오랫동안 다테마에를 중심으로 유지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아사히신문(朝日新聞) 미국 총국장 등을 지낸 언론인 다카나리타 토루(高成田 享·78)는 정년 이후 ‘사카나(魚) 기자’를 자처하며 지방을 돌다가 다른 일본을 목격합니다. 그의 결론은 분명합니다. “니혼, 니혼진은 하나가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이시노마키가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곳 주민들은 다테마에보다 혼네에 가까운 성정을 보입니다. 말은 직선적이고 감정도 숨기지 않습니다. 농촌이 협력과 순응의 사회라면, 어촌은 경쟁과 개방의 세계입니다. 농민은 지켜야 할 토지(土地)가 있기에 외지인을 경계하지만, 어민은 수렵적 성격을 지니며 살아갑니다. 경쟁 의식은 강하지만, 적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외지인이라도 곧바로 받아들이는 개방성을 보입니다.

다카나리타는 이러한 해양적 성향이 일본인 내부에도 여전히 흐르고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현재 일본은 다테마에 중심의 질서로 기울고 있습니다. 조직은 점점 폐쇄적으로 변하고, 동조 압력은 강화되고 있습니다. 혁신을 말하면서도 이견을 드러내기 어려운 구조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는 해답을 바다에서 찾습니다. 니혼(日本)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니혼진(日本人) 내부에 남아 있는 해양의 혼네(本音)를 다시 깨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카나(생선) 기자’ 시절 이시노마키 수산시장을 취재하는 필자. /필자 제공

도쿄대 경제학부를 졸업한 다카나리타는 1971년 아사히신문에 입사해 논설위원, 워싱턴 특파원, ‘뉴스 스테이션’ 캐스터 등을 거친 일본 언론계 대표적 엘리트입니다. 그런 그가 중앙을 떠나 지방에서 도출한 결론은 단순하지만 의미심장합니다.

그가 조선 멤버십을 위해 준비한 연재 ‘다카나리타의 니혼/니혼진’은 50년 넘게 현장을 누빈 언론인의 경험과 사유가 응축된 결과물입니다. 이 연재를 통해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계기가 되시길 바랍니다. 아울러 그가 직접 다녀온 식당과 노포(老鋪), 기억에 남는 요리 이야기도 함께 담겨 있어 또 다른 즐거움을 드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