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김영재·Midjourney

한국사 전체를 찾아봐도 ‘성심성의껏 악행’을 저지른 임금. 백성의 원성을 가장 많이 들었고, 그가 죽자 기뻐 날뛰는 백성도 있었던 임금. 고려시대 몽골 간섭기 ‘충(忠)’ 자 돌림의 군주, 충혜왕(忠惠王·재위 1330~1332, 1339~1344) 왕정(王禎·1315~1344) 이야기입니다.

악인들의 어린 시절이 대개 그렇듯 왕세자 시절의 충혜왕은 부왕 충숙왕이 차마 얼굴을 들지 못할 악행을 저지르고 다녔습니다. 절 지붕에 앉은 새를 잡으려고 절에 불을 지르고 도망간 적도 있습니다. 불교는 고려 국교였습니다.

왕이 된 이후로도 조선 연산군이 울고 갈 음행을 저지르고 다녔습니다. 부왕의 후처, 장인의 후처, 신하의 아내, 죽인 신하의 아내... 숱한 유부녀를 가리지 않고 성폭행했습니다. 궁중에서 옆에 여자가 없을 때 하는 일이라곤 환관들과 씨름하는 정도였습니다. 남의 처첩을 가리지 않고 빼앗은 충혜왕 왕정의 후궁 수가 100명이 넘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 기록이 바로 ‘고려사’입니다.

왕정의 평판은 바닥이었다는 한 일화가 있습니다. ‘고려사절요’에 따르면 1343년 왕정이 삼현이라는 곳에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새 궁궐을 지었는데, 해괴한 소문이 돌았습니다. “왕이 민가의 아이 수십 명을 잡아 새 궁궐의 주춧돌 밑에 묻으려고 한다”고요. 일종의 인신 공양 목적으로 그런 짓을 저지른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그런 만행을 저질렀다는 기록은 전혀 없지만 집집마다 아이를 안고 도망하거나 숨는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몽골 출신 여성 경화공주를 겁탈한 일이 결국 그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경화공주는 왕정을 책봉하기 위해 온 원나라 사신 두린에게 이 일을 고했고, 분노한 두린은 왕정을 만나자마자 체포해 원나라로 압송합니다.

왕정은 게양현(지금의 광둥성 제양시)으로 유배를 가게 됐는데, 귀양길에서 유명한 악양루가 있는 악양현(지금의 후난성 웨양시)에서 급사합니다. 향년 29세. 귤을 잘못 먹고 체했다는 말도 돌고, 원나라가 독을 탄 술을 먹여 독살했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그의 죽음은 고려 백성 누구도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고려사절요는 그가 죽은 후의 풍경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지체 낮은 백성들 가운데는 ‘되살아나는 날을 다시 보게 됐다’며 기뻐 날뛰는 자까지 있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조선멤버십 가입하고 유석재 역사문화전문기자가 쓰는 ‘악인전’ 본편에서 확인하세요. 무엇을 상상해도 그 이상인 충혜왕의 이야기와 ‘어우동’ 박구마의 숨겨진 기행을 모두 감상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