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판 ‘섹스 심벌’ 어우동을 아십니까. 여러 영화나 드라마로 사람들은 그를 ‘음란함의 대명사’로 생각할 뿐, 과연 어느 시절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별 관심이 없습니다. 본명은 역사 속에서 휘발돼 사라지고, 별명으로만 오래도록 기록된 한 여성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태강수(泰江守)의 아내 구마(丘麻)는 간음을 행한 것이 창기(娼妓)와 같았다.”
서기 1500년(연산군 6년) 6월12일자 조선왕조실록은 도승지가 임금에게 진언한 내용을 기록합니다. 오늘날 대통령 비서실장과도 같은 도승지가 간통사건을 임금에게 고하다니요.
‘태강수’의 ‘수’는 정4품 벼슬로 왕자의 자손에게 내리던 벼슬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왕족의 처, 구마가 간음했다는 것인데요. 구마의 부친은 승문원 지사 박윤창이었으므로 그녀의 본명은 박구마(朴丘麻)가 되겠습니다. 박구마가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 어우동(於宇同·1440~1480) 또는 어을우동(於乙宇同)입니다.
이름에 을(乙)자기 들어가면 보통 리을 받침이 됩니다. ‘얼우동’ 혹은 ‘어루동’으로 읽어야 합니다. ‘얼’이란 ‘관계를 맺다’는 뜻이고, ‘동’은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입니다. 현대어로 ‘얼우동’은 ‘상간녀 A씨’ 정도의 의미가 됩니다. 이게 박구마의 진짜 이름처럼 박제됐던 겁니다.
박구마는 ‘천의 얼굴’을 지닌 여인이었습니다. 한양에 갓 올라온 기생이나 양반의 첩 등 여러 신분으로 변복하며 남자를 유혹했습니다. 자신만큼이나 미모가 뛰어난 계집종을 바람잡이로 내세워 2인 1조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관계를 맺을 때 신분차별을 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처럼 왕족인 방산수(方山守) 이난, 수산수(守山守) 이기부터 정9품 관리, 중인, 노비까지 여러 계층과 밤을 보냈습니다. 북방 여진족 진압에 공을 세운 어유소, 영의정을 지낸 노사신의 아들 노공필, 당대의 명궁으로 꼽힌 무장 김세적 등 고관대작도 박구마를 거쳤습니다.
성종실록 기록에 따르면 박구마는 관계 후 이들에게 자신의 ‘흔적’을 남겼습니다. 팔과 등에 자신의 이름 ‘구마’ 혹은 ‘박구마’를 새겼습니다. 남자들이 항거 불능 상태서 이런 일을 당했다는 기록은 없으니, 다들 흔쾌히 자신의 몸을 내줬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잠깐, 이런 내용들이 왜 조선왕조실록에까지 실렸던 걸까요. 조선판 초대형 스캔들 ‘어우동’ 박구마의 자세한 이야기는 조선멤버십 가입하고 유석재 역사문화전문기자가 쓰는 ‘악인전’ 본편에서 확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