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북부의 항구 도시 지룽(基隆)은 타이베이 시민이 즐겨 찾는 주말 여행지다. ‘비의 도시(Rainy Port)’라는 별명처럼 흐린 하늘과 안개 낀 해안 풍경이 인상적인 이곳은 예로부터 무역과 어업이 활발히 이루어진 바다의 도시다. 일제강점기에는 대만의 대외무역 관문 역할을 하며 급속히 성장했고 지금은 과거의 흔적과 현대의 풍경이 어우러진 여행지로 다시 조명받고 있다. 한국인에게는 아직 낯선 이름이지만 타이베이에서 차로 약 한 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 덕분에 입소문을 타며 당일치기 여행지로 주목받고 있다.
지룽은 오래된 흑백 영화 속 한 장면을 닮았다. 골목 사이에서 옛 정취를 간직한 시장과 예스러운 건물들, 현대적인 항구의 풍경이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낡았지만 정겹고, 조용하지만 묘하게 끌리는 이 도시에선 여행의 속도를 천천히 늦춰도 좋다.
■ 허핑다오 공원
허핑다오 공원(和平島公園)은 에메랄드빛 바다와 기묘한 바위 지형이 어우러진 지룽을 대표하는 자연 명소다. 전망대와 트레킹 코스를 따라 걷다 보면 태평양과 지룽항의 풍경이 펼쳐지고 그 아래로는 ‘두꺼비 바위’, ‘천사의 눈물’, ‘사자바위’처럼 이름도 형상도 독특한 기암괴석들이 자연의 시간 속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높은 곳을 따라 이어진 약 400m 길이의 환산보도(環山步道)를 오르다 보면 바다와 맞닿은 수평선과 끝없는 해안선이 이어지며 침식과 풍화가 만들어낸 바위들이 저마다의 표정을 짓고 있는 듯한 풍경이 펼쳐진다. 먼바다에는 지룽위(基隆嶼) 섬이 모습을 드러내고 그 위로 펼쳐진 일출과 일몰의 순간엔 금빛 하늘과 푸른 바다가 겹쳐 찬란한 빛의 풍경화를 완성한다. 공원 안에는 해수풀장과 스파 시설도 마련돼 있어 휴식과 여가를 즐길 수 있다.
■ 정빈어항
정빈어항(正濱漁港)은 한때 금과 구리를 실어 나르던 대만 북부 최대의 상업 어항이었지만, 지금은 감성적인 풍경으로 되살아난 여행자의 항구가 됐다. ‘대만의 베네치아’라는 별명이 붙은 이곳은 바다를 따라 줄지어 선 16채의 형형색색 건물 덕분에 포토 스팟으로 인기가 높다.
잔잔한 항구 물 위로 파스텔 톤 건물의 색채가 비치면 윈도우 배경화면에 나올 법한 멋진 풍경이 완성된다. 낡은 어선과 오래된 부두의 풍경, 주변 골목의 오래된 건물이 어우러지며 과거와 현재가 맞닿은 듯한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최근에는 항구 주변에 개성 있는 카페와 예술 공간이 들어서며 여행자에게 다양한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항구를 내려다보며 커피 한 잔을 즐기는 여유는 물론 지역 예술가들의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 진과스
타이베이에서 차로 1시간 30분 남짓, 산골짜기 사이에 숨듯 자리한 진과스(金瓜石)는 폐광촌의 고요함 속에 대만 근현대사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 금과 은의 풍부한 매장량으로 인해 많은 일본인이 이곳에 머물며 채광 작업을 벌였고, 번성했던 탄광 마을은 이제 그 찬란했던 기억을 품은 채 조용한 역사 여행지로 거듭났다.
진과스의 풍경은 인근 유명 관광지 지우펀(九份)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인파 대신 잔잔한 산바람과 고즈넉한 산촌의 정취가 흐르고 황금박물원구(黃金博物園區)로 탈바꿈한 마을 곳곳에서는 당시의 생활을 재현한 공간과 철길이 남아 있어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특히 일본식 목조건물인 ‘태자빈관(太子賓館)’은 진과스의 상징적인 장소로 고풍스러움과 단아한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금광 개발의 역사를 알 수 있는 황금박물관 안에는 복원된 광산과 채광 도구들, 그리고 220kg에 달하는 거대한 금괴가 전시돼 있다. 관광객들은 손을 뻗어 황금을 만지며 소원을 비는 체험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곳의 대표 메뉴 ‘광부 도시락’은 예전 광부들이 먹던 식단을 재현한 것으로 대만식 돼지갈비 덮밥 한 끼가 과거의 일상을 현재로 이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