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4일까지 박성우의 첫 개인전 〈New Menu〉이 열린 서울 압구정동 그레파이트 온 핑크(Graphite on Pink) 갤러리에서 앞에서.

그림은 언젠가 그려야지, 라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나 창작을 좋아했는데, 막상 붓을 든 건 30대가 되어서다. 분주한 현실에서 벗어나 혼자 여유를 즐기던 어느 날 캔버스와 물감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셰프 박성우에게 그림은 또 하나의 요리였다.

T bone 41×32cm 2016_Shawn Park.
Bread & Better, 45×33cm, 2017_Shawn Park.

이탈리안 비스트로 ‘스파크(Spark)’의 오너셰프 박성우가 자신만의 시선으로 바라본 선명한 세상을 ‘NEW MENU’라는 이름으로 캔버스에 담았다. 아스파라거스, 티본, 레몬 등 그에겐 너무나 익숙한 요기 식재료를 ‘요리의 재료’가 아닌 자연이 선물한 아름다운 피사체로 바라봤다. 식재료를 만질 때 손에서 느껴지던 촉감을 눈에 담아 다시 손으로, 그 질감을 이미지화하기까지 그는 일체의 조미 없이 담백하게 관통해냈다. 이는 박 셰프가 즐겨 해온 이탈리안 정통 요리와도 닮았다. 박성우의 첫 개인전 〈New Menu〉가 열린 그레파이트 온 핑크(Graphite on Pink) 갤러리에서 셰프가 아닌 작가로 그를 만났다.

박성우 셰프가 요리의 길을 꿈꾼 건 중학교 때. KBS1 교양프로그램 〈인간극장〉에서 서양 요리 전문가 구본길 셰프의 성공스토리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서다. “스스로 요리를 하면 잘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는 그는 어려서부터 손으로 뭔가 만들어내는 걸 즐겼다. 요리도 그중 하나다. 친구들에게 라면을 하나 끓여주더라도 참기름 한 방울로 맛의 디테일을 살렸다. 그의 손끝에서 나오는 맛에 친구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어렸을 때부터 꿈에 대해 확고했어요. 앞으로 계속할 일,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늘 고민했고, 그게 요리였죠.”

일찍이 꿈을 찾은 박 셰프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요리학원에 다녔다. 대학에서 호텔조리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바로 미국 어학연수를 떠났다. 서양 요리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언어의 장벽을 깨는 일이 우선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연수 중에도 자전거로 30~40분 거리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웨이터로 일하며 셰프의 꿈을 키워갔다.

박 셰프의 첫 직장은 싱가포르 이탈리안 레스토랑. 그는 이탈리안 요리에 대한 동경이 컸다. 지중해식 요리가 자신의 성격과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재료 본연의 맛을 보여주는 요리가 좋았어요. 이탈리안 음식은 화려하게 포장하기보다 자연스럽고 솔직하죠. 투박하지만 정감 있고, 정갈한 맛이 있어요."

이탈리안 요리의 담백함과 정직함

미국 유학을 마치고 싱가포르와 이탈리아를 돌아 정착한 곳은 부산이다. 광안대교가 내려다보이는 마린시티의 스테이크 전문 레스토랑에 머물며 그는 마음의 여유를 찾았다. 배움을 향한 열정으로 세계를 떠돌다 온 그에게 바다는 안식을 선물했다. 붓을 든 것도 이 무렵이다.

“부산 바닷가의 삶을 즐기며 잃어버렸던 여유를 찾았어요. 출근 전에 서핑을 하고, 퇴근해서는 집에서 그림을 그리는 일상. 그러면서 스스로 하고 싶었던 일, 바라던 모습을 원점에서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그는 그림을 그릴 때 계획하지 않는다. 그저 보이는 것을 그린다. 오랫동안 자주 보아 익숙한 것들. 그게 식재료였다.

“재료를 손질하면서 해산물이나 육류가 아름답다고 생각했어요. 자연이 주는 색감과 생명력이 담겨 있죠. 그 힘을 표현하고 싶어 식재료를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림 그리는 일은 요리와 많이 닮았어요. 색을 쓰고 질감을 표현하면서 창작자의 생각과 태도를 창작물에 담아낸다는 점에서 비슷하죠.”

셰프 박성우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담백하다. 현란한 기교 대신, 대상의 본질을 선명하고 정직하게 드러낸다. 이는 요리할 때도 마찬가지다. 압구정동에 자리한 이탈리안 비스트로 스파크는 박성우 셰프의 또렷한 주관이 담긴 공간이다. 스파크는 그의 영어 이름인 ‘Shawn Park’에서 따온 말. ‘불꽃’이라는 뜻인데, 요리를 시작할 때 점화 단계 혹은 음식을 먹는 순간의 강렬한 기억이라는 중의적 표현을 담았다.

셰프 박성우에게 티본, 빵, 버터, 레몬 등은 익숙한 요리 식재료인 동시에 자연이 선물한 아름다운 피사체이기도 하다.

스타 셰프의 변곡점, 더하기보다 빼기

박성우 셰프는 팬덤을 이끌고 다니는 스타 셰프 중 한 명이다. 훤칠한 키에 준수한 외모, 서핑으로 다져진 다부진 몸은 주방에 선 그의 모습을 더욱 매력적으로 돋보이게 한다. 셰프 박성우로 대중에 이름을 알린 건 2010년. ‘아웃백 잇 셰프’ 최종우승자로 선정돼 한 케이블채널에서 다니엘 헤니와 함께 서호주를 다니며 신메뉴를 개발하는 예능 다큐를 찍으면서다. 2016년 스파크를 오픈하자마자 많은 이들이 기대 어린 마음으로 그를 찾았다. 늘 문전성시를 이뤘지만 인기가 때론 독이 되기도 했다.

“셰프 박성우로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욕심과 자만이 요리에 들어갔어요. 레스토랑 오픈 초기에는 음식을 다 완성하고도 그 위에 뭔가를 더 쌓아올렸죠. 더하고 더해야 완성도 높은 음식으로 보일 거라는 욕심에 계속 맛을 첨가했어요. 어느 순간 빼야 한다는 걸 깨달았지만 용기가 없었어요.”

어디서 멈춰야 할지 알 수 없었던 그는 캔버스에 선을 긋고 원을 그리며 마음을 덧칠해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두터워진 그림을 마주했다. 색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는데 무엇이 그림을 탁하게 했을까. 그는 그림에서 색과 선을 하나씩 걷어냈다. 그러면서 요리에서도 기름이 빠지기 시작했다.

요즘 그는 기존에 사용하던 레스토랑을 새롭게 탈바꿈하면서 공간 인테리어라는 또 다른 창작에 빠져 있다.

“이 공간은 오픈 주방으로 만들었어요. 손님들과 마주 보며 이야기 나누고 싶어서요. 예전에는 셰프라는 직업에 강박이 있어서 요리와 웨이터를 구분했는데, 오너셰프인 제가 그럴 이유가 없더라고요. 제대로 만든 음식으로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고 싶어요.”

박성우 셰프는 음식을 디자인하는 크리에이터이기도 하다. 접시 위의 요리로 자신을 드러내듯, 그림으로 또 공간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

“제 삶에서 박성우는 셰프이기도 하지만 페인터이자 공간 디자이너이기도 해요. 어떤 장르로든 제 생각과 느낌을 창작물로 표현하고 싶어요. 그 창작물로 사람들도 행복했으면 좋겠고요.”

그는 인생 최고의 음식으로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의 대표 간식 아란치니를 꼽았다. 리조토를 주먹밥처럼 뭉쳐 뛰긴 요리인데, 우리나라 김밥처럼 누구나 편안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저마다 색이 다른 맛깔난 재료로 똘똘 뭉친 아란치니, 박성우와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