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으로 적금 가입했는데, 은행 가면 통장 발급이 될까요?”
지난 20일 재테크 온라인 동호회에 올라온 질문이다. "적금 상품마다 달라서 지점에 물어봐야 해요. 9월부터 통장 만드는 데 돈 내야 할 수도 있으니 어서 가세요"라는 답변이 달리자 질문자는 "돈 내도 상관없어요. 저는 통장이 있어야 해요"라고 했다. 종이통장을 만드는 데 돈을 내는 시대가 온 걸까.
국내 시중은행에 확인한 결과 아직까지 종이통장 발급에 수수료를 내는 곳은 없었고, 조만간 그럴 계획도 없다. 이런 얘기가 나온 것은 2015년 금융 당국이 "불필요한 비용 절감과 금융 거래의 전산화에 맞춰 무통장 거래 관행을 정착시키겠다"며 발표한 종이통장 감축 계획 3단계 때문이다. ▲1단계(2015년 9월~2017년 8월)에선 종이통장을 발급받지 않겠다고 한 고객에게 금리 우대를 해주거나 경품을 주는 등 인센티브를 주고, ▲2단계(2017년 9월~2020년 8월)에선 종이통장을 발행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종이통장을 달라고 요구할 때 발급해준다는 것이다. ▲3단계(2020년 9월)에선 종이통장을 발급받으려면 수수료를 내야 한다. 종이통장을 돈 주고 사는 셈이다. 종이통장을 없애려는 것은 은행의 운영 비용과 종이통장을 이용한 금융 범죄를 줄이기 위해서다. 종이 사용을 줄여 환경을 보호하는 효과도 있다. 신한은행에 따르면 이 은행에서 발급하는 통장을 만들기 위해 매년 30년 이상 된 아름드리나무 2857그루를 베어야 한다.
인터넷 뱅킹과 비대면 거래가 늘어나면서 종이통장 사용자는 이미 줄어드는 추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국내은행의 모바일뱅킹 등록 고객은 1억2095만명(중복 등록 포함)이다. 2018년보다 15.5% 늘어난 규모다. 반면 5대 은행의 종이통장 발행량은 3000만개 미만으로 떨어졌다. 예정대로라면 오는 9월 3단계로 진입했어야 하지만 9월을 앞두고 통장 발급할 때 돈을 받겠다고 나선 은행은 없다. 대신 이벤트를 벌여 종이통장을 발급하지 않도록 고객을 유도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8월부터 3개월간 정기예금과 적금을 모바일통장으로 바꾸는 고객에게 포인트를 지급하고, 국민은행도 지난 6월 종이통장을 발급하지 않는 고객에게 경품을 줬다. A은행 관계자는 "현행 제도에서 통장을 잃어버려서 재발급을 받을 경우 2000원의 수수료를 내야 한다. 이 수수료를 내는 데 대한 거부감도 매우 강한 편이다. 종이통장을 발급할 때 돈을 내라고 하면 고객의 반발이 있을 것으로 봤다"고 했다.
종이통장에 돈을 받기 어려운 이유는 또 있다. 인터넷 뱅킹의 시대에도 종이통장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고객들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B은행 관계자는 "코로나 사태 전까지 은행 지점을 찾는 고객이 12만~14만명 정도였는데, 코로나 사태 후 1만명 정도 줄었다"며 "비대면 거래가 활성화됐는데도 이 숫자가 생각보다 많이 줄지 않은 건 은행에 찾아오는 고객 대부분이 통장을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고 했다. 온라인 재테크 동호회에선 "금리 우대 때문에 모바일 뱅킹으로 예적금에 가입했는데 통장을 꼭 발급받고 싶다" "○○은행에선 이제 통장 발급을 안 해주는 게 원칙이라던데 어떻게 하면 발급받을 수 있느냐"는 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재테크 동호회에서 활동하는 김세종(55)씨는 "첫 직장을 잡고 서울에 올라왔을 때 부모님이 집 구하는 데 쓰라면서 주신 통장에 감동을 하였다. 그때부터 모든 은행 업무는 통장으로 처리했다. 매달 적금 통장에 입금할 때마다 숫자가 통장에 찍히는 걸 보는 쾌감이 있다"고 했다. 아홉 살짜리 자녀 때문에 '겨울왕국' 한정판 통장을 만든 김하나(42)씨는 "아이에게 돈을 주고 은행에 가서 입금하라고 시키는데 그때마다 통장에 돈이 늘어나는 것을 보고 아이가 좋아한다. 현금카드나 온라인 뱅킹이었다면 결코 느끼지 못했을 기분일 것이다"라고 했다.
일본은 통장 유료화 단계에 이미 들어섰다. 일본의 3대 대형 은행 중 한 곳인 미즈호은행은 내년 1월부터 종이통장을 발급해 달라는 신규 고객에게 1000엔(약 1만1220원)의 수수료를 물린다. 수수료에는 소비세(10%)가 붙어 고객의 실제 부담액은 1100엔(약 1만2300원)이다. 인터넷 뱅킹에 취약한 70대 이상은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 국내 종이통장의 제작 원가는 300원 안팎이고, 여기에 인지세와 인건비를 더하면 5000~7000원 정도다. 은행들은 통장 유료화가 된다면 고객이 내야 할 돈은 2000원 정도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