뤄린자오(羅林姣)씨는 2003년 중국과학기술대 물리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생물물리학 박사 학위를 따고 박사후과정까지 마친 후 귀국해 2013년 난징(南京)대 물리학과 부교수가 됐다. 국제학술지인 신경과학저널에 ‘초파리 주열성(走熱性)에서 경로 선택’ 같은 논문도 발표했다.

하지만 그는 2018년 교수를 관두고 중국 광둥(廣東)성 선전(深圳)시의 타오위안(桃源) 가도판사처(街道辦事處) 공무원이 됐다. 가도판사처는 구청 산하 행정기관으로 한국으로 치면 동사무소에 해당한다. 가도판사처 홈페이지에 따르면 뤄씨는 부(副)주임으로 민생 조사, 교육, 문화 등을 담당한다.

미 하버드대 박사 출신인 뤄린자오씨가 가도판사처(한국의 동사무소) 부주임으로 일한다는 것으로 보도한 장면.

하버드대 박사 출신인 뤄씨가 동사무소에서 일한다는 소식은 중국 인터넷에서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중국에서 가도판사처 공무원은 통상 '아줌마' '아저씨' 이미지가 강하고, 유학파에 교수 출신이 현장 공무원이 되는 사례가 드물기 때문이다. 뤄씨 사례가 주목을 받자 저장(浙江)성 항저우(杭州) 위항(餘杭)구 가도판사처에 베이징·칭화대 대학원 석·박사 출신 8명이 일하고 있다는 글도 화제가 됐다.

중국 인터넷에는 “대재소용(大才小用·큰 인재를 작은 데 쓴다)”이라는 한탄과 함께 “중국에서 고학력 인재가 그만큼 취직할 곳이 없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중국에서는 지난 7월 역대 최대 규모인 874만명이 대학·대학원을 졸업했다. 기존 대졸자 중 미취업자, 귀국한 유학생 등을 포함하면 예비 취업자가 100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중국 경제가 얼어붙으며 기업들은 채용을 줄여 취업 문제가 심각하다.

논란이 거치자 중국 당국도 해명에 나섰다. 하버드 박사 출신인 뤄씨에 대해 선전시 관계자는 “가도판사처 부주임으로 일하는 것은 개인 선택의 문제”라면서 “또 담당 업무가 대학가를 포함하고 있어 경력과도 맞아떨어진다”고 했다. 저장성 첸장만보는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칭화대, 베이징대 졸업생이 가도판사처에서 일하는 것은 사회 발전에 따라 일선 행정 역시 전문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라며 “더 많은 청년 인재가 필요하다”고 했다. 베이징대 법대 석사 출신으로 항저우시의 한 가도판사처에서 근무하는 류윈난씨 중국 매체 펑파이 인터뷰에서 “나라에서 젊은 사람들을 기층(일선 현장)에 가라고 독려하고, 나 역시 기층에서 일하는 게 나를 단결시키고 승진의 기회도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청년 취업 문제가 중국 공산당의 최대 과제가 되면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 중국 지도부는 젊은 층에게 “인민 속으로 들어가 일선 현장에서 일하라”고 독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