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내 투자자의 외화 주식 거래액(매도액과 매수액을 합한 금액)이 사상 처음으로 1000억달러를 넘었다. 국내 주식을 사들이는 '동학 개미'뿐 아니라 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서학(西學) 개미'도 크게 늘어난 것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급락했던 글로벌 주요 증시가 강한 반등세를 보이면서 해외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또 최근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1180원대에서 안정적인 흐름을 이어가자 해외 주식을 사기 위해 대기 중인 달러 예금도 증가하는 추세다.

올해 해외 주식 거래액, 작년의 2.5배

27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25일까지 국내 투자자가 해외 주식을 사고판 액수는 총 1040억7600만달러로 집계됐다. 해외 주식을 산 돈(577억1600만 달러)이 판 돈(463억6000만달러)보다 113억5600만달러가량 많았다. 올해 해외 주식 거래 액수는 지난해 전체(409억8500만달러)의 2.5배에 달하며, 연말에는 15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2015년(139억7900만달러)과 비교하면 5년 만에 10배 수준으로 폭증하는 것이다.

해외 주식 투자가 집중된 곳은 미국이었다. 올해 국내 투자자가 거래한 미국 주식은 908억1100만달러로 전체 거래액의 87.3%에 달했다. 작년(187억달러)의 5배가량으로 거래액이 늘었다. 다른 국가의 주식 역시 거래액이 많이 늘었다. 홍콩 주식(120%)과 중국 주식(99%)은 거래액이 작년의 2배가량으로 늘었으며, 일본 주식 역시 거래액이 76% 증가했다. 반면 유로존 국가의 주식은 26% 정도 거래액이 줄었다.

서학 개미의 투자 열풍은 코로나로 인한 경제 충격에도 엄청난 유동성이 시장에 풀리며 각국 증시가 호황을 누리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미국 S&P 500과 나스닥 지수는 26일 기준 연저점 대비 각각 55%·70% 상승하며 연일 역대 최고치 기록을 쓰고 있다. 중국 상하이지수 역시 지난달 13일 3450선을 넘어서며 연고점을 경신했다. 오현석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인프라가 확충돼 개인들도 각종 해외 투자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되면서, 분산투자의 하나로 해외 직구에 나서는 투자자가 급증한 것 같다"고 말했다.

IT주뿐 아니라 완구·게임업체 주식도 '싹쓸이'

국내 투자자가 가장 많이 순매수한 해외 주식 50개를 국가별로 구분하면 홍콩과 일본 주식이 각각 5개, 중국이 2개였고 나머지 38개가 미국이었다. 순위표 최상단은 '언택트'(비대면) 기술에 대한 관심과 함께 주가가 급등한 미국 IT(정보기술) 성장주들이 차지했다. 순매수액이 가장 많은 종목은 테슬라였고, 애플·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알파벳(구글의 모회사)이 2~5위에 나란히 올랐다. 특히 최근 주식 액면 분할을 발표하며 주가가 급등한 테슬라와 애플은 순매수액이 10억달러를 훌쩍 넘겼다.

순매수 10위권 내 다른 종목들도 대부분 코로나 사태로 주목받은 기업이었다. 미국의 완구 회사 해즈브로는 '집콕' 생활과 함께 장난감 수요가 늘 것으로 전망되며 6위에 올랐고, 비메모리 분야 반도체에 강세를 보이는 엔비디아와 SMIC가 7~8위에 랭크됐다. 중국 반도체 업계의 선두 주자로 꼽히는 SMIC는 홍콩과 중국 증시 두 곳에 상장되어 있는데 국내 투자자가 집중 매수한 것은 홍콩에 상장된 주식이다. 일본 주식으로는 완구·게임 업체인 반다이남코(12위)·가도카와(17위)·코나미(20위)·세가(32위) 등이 50위권 내 이름을 올렸다. 중국 주식으로는 5G 이동통신 업체인 선난서킷(40위)과 바이오 기업인 항서제약(44위)이 서학 개미의 선택을 받았다.

한편 해외 주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기업·가계가 보유한 달러 예금 잔액도 최근 두 달 연속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개인과 기관 투자자가 미국 주식을 사기 위해 증권사에 맡긴 달러 예탁금이 급증한 데 따른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기업의 달러 예금액은 603억달러로 전달에 비해 23억1000만달러 증가했다. 개인 역시 159억2000만달러로 전달보다 4억5000만달러 잔액이 늘었다. 한국은행은 "기업의 달러 예금은 증권사와 수출 기업을 중심으로 증가했다. 특히 증권사는 해외 주식 투자자가 늘며 투자자 예탁금 등 고객 관련 자금이 늘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