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업무보고하고 있다.

한국 외교관 성추행 피해자인 뉴질랜드인 W씨가 이번 사건과 관련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사과 성명에 대해 "외교부가 잘못했다고 인정하면서 정작 피해자에 대한 사과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며 강한 불쾌감을 드러낸 것으로 25일 알려졌다. 외교가에서도 "이번 사태를 부른 총책임자인 강 장관이 외교부의 부적절한 대응으로 피해를 본 W씨에게 최소한의 미안한 마음이라도 전해야 했던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W씨의 이번 사건 대리인은 이날 본지에 보낸 이메일에서 "W씨가 24일 강 장관이 사과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대를 갖고 찾아봤다"면서 "하지만 사과 내용을 보고 나서 매우 화가 났다(so angry)"고 전했다. 그러면서 "강 장관은 청와대의 질책을 받고 국민에게 공개 사과를 하면서도 정작 이번 사건의 당사자이자 피해 희생자는 사과 대상에서 쏙 뺐다"며 "이런 사과 행태를 보인 강 장관이 정말 역겹다(disgusting)"고 했다. W씨 측이 성추행 혐의 한국 외교관 A씨가 아닌 강 장관에 대해 거친 표현을 쓰며 불쾌감을 드러낸 것은 처음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5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여야 의원들에게 업무 보고를 하고 있다. 강 장관은 이날 한국 외교관의 뉴질랜드인 성추행 사건 지적에 대해 "대통령에게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피해자 주장의 신빙성 점검이 필요하다"고 했다.

실제로 강 장관이 24일 보도자료 형태로 배포한 200자 원고지 5장 분량의 사과 성명문에는 '피해자'에 대한 언급이 없다. 대신 "우리 정부의 외교적 부담으로 작용했을 뿐 아니라, 국민께 심려를 끼쳐 드리게 돼 송구스럽다"고만 했다. 2017년 말 주뉴질랜드 공관에서 발생한 성 비위 사건이 제대로 처리되지 못해 2년여가 지나서 외교 문제가 된 것에 대해서만 사과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강 장관은 이 사과문에서 "청와대로부터 '사건 발생 초기부터 정상 통화까지 외교부 대응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조사 결과를 이첩받았다"고 밝혔다. 외교부의 초기 대응과 관련한 대표적 잘못은 2017년 말 성추행 사건 발생 시 외교부가 같은 건물에서 근무하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즉시 분리 조치하지 않은 점이 꼽힌다.

강 장관은 이날 국회 외통위에 출석해 이번 사건에 대해 사과하면서도 그 대상에서 피해자는 제외했다. 강 장관은 한·뉴질랜드 정상 통화에서 성추행 문제가 거론된 데 대해 "대통령이 불편한 위치에 계시게 된 점에 대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는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민에게만 사과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뉴질랜드 국민이나 피해자에 대해 사과할 일'이라고 지적하자 "이 자리에서 사과는 못 드린다"고 오히려 목소리를 높였다. 강 장관은 "좀 더 사실관계를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고, 피해자의 진술 신빙성도 점검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문제는 외교문제가 됐기 때문에) 우리의 국격과 주권을 지키면서 (처리)할 필요가 있다"며 "상대국에 대해서 사과하는 부분은 쉽사리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강 장관의 주장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 장관은 더 조사해봐야 한다며 피해자에게 사과를 못 하겠다고 했지만, 외교부는 이미 자체 조사로 A씨의 성 비위를 확인해 '감봉 1개월' 징계 처분을 내렸기 때문이다. 특히 외교부의 부실 대응으로 우방인 뉴질랜드와 외교문제를 자초해놓고 '국격'을 운운하며 피해자에게 사과를 못 하겠다고 버티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 장관은 이날 성추행 혐의 외교관 A씨에 대한 뉴질랜드의 '면책특권 포기' 요구에 대해서도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