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은 미술 전시계 풍경을 바꿨다. 125년 전통 베네치아 비엔날레는 취소됐지만, 1979년 시작한 미디어아트 축제 오스트리아 아르스 일렉트로니카(Ars Electronica) 페스티벌은 9월 9일부터 13일까지 온라인으로 열린다. 코로나 확산 이후 궤도를 수정해 6개월 만에 전 세계 120개 장소가 온라인 콘텐츠로 참여하도록 '초연결'하는 데 성공했다. 아르스 일렉트로니카는 세계 미디어 아트를 선도하는 기관으로 EU에서 유럽 인공지능 랩(The European ARTificial Intelligence Lab)을 이곳에 둘 정도로 문화와 디지털이 첨단으로 만나는 장소다. 올해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페스티벌 주제는 '케플러의 정원', 부제는 '새로운 세계를 매핑하는 글로벌 여행'이다. 불확실성, 과학기술, 인간성, 생태계, 민주주의를 키워드로 사회적 거리 두기에 갇혀 있는 전 세계 집과 정원 이미지를 연결한다는 목표다.

아티스트는 인플루언서

바이러스가 야기한 '코로나 세대'는 관점이 다르다. 코로나 여파로 문화 공간이 수시로 폐쇄되는 우울한 현실에 개의치 않는다. 그들에겐 항상 열려 있는 가상현실이 있다. AI(인공지능)나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기술로 코로나를 초월한다.

디지털 트윈이란 컴퓨터에 현실 속 사물의 쌍둥이 모델을 만들고, 현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시뮬레이션하는 기술이다. 디지털 트윈은 현실을 디지털 세계로 복제하는 개념이지만 코로나 세대에겐 디지털 트윈이 만들어낸 세상이 중심이다. 그들은 현실의 불안함보다 디지털 세계의 고도화한 미감(美感)을 발휘하는 예술에 공감한다.

코로나 세대는 "모이면 위험하고 흩어지면 산다"고 배우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문화 기술로 창조한 디지털 세계를 더 가깝게 느낀다. 코로나 이후 문화계에서도 유튜브와 페이스북, 카카오톡을 비롯한 각종 디지털 플랫폼을 장악한 자가 질서와 정서를 지배할 것이다. 디지털 문화 콘텐츠 기획자와 창작자는 '좋아요' 숫자와 구독자 수가 많은 '인플루언서'로 진화하고, 소비자는 AI가 취향을 분석해 제공한 콘텐츠를 구독하는 데 익숙해질 것이다. 이미 AI가 데이터를 분석해 노래를 작곡하는 시대다.

디지털 네이티브 아티스트 부상

선승혜 대전시립미술관장

코로나 이후 문화계를 이끌어갈 주역은 기술을 작품에 활발하게 접목하는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 8090년생 아티스트들이다. 디지털 격동기 기존 문화 중심부가 흔들릴 때 주변 신흥 강자들이 발 빠른 대응으로 부상하는 법인데 그 선두에 이들이 자리 잡고 있다. 컴퓨터과학을 전공한 신승백(1979년생)과 시각예술을 공부한 김용훈(1980년생)은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석사 과정에서 만나 팀을 꾸렸다. 인간과 기계 사이에 존재하는 의식과 무의식을 실험하는 게 과제. '구름 얼굴(Cloud Face)'이란 작품은 AI가 구름을 보고 난 뒤 사람 얼굴로 인식한 이미지를 조합해서 만들었다. 구름을 보면서 "꼭 사람 얼굴 같네"라고 느꼈던 흔한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한국 작품으로는 드물게 유럽 전시관(아르스 일렉트로니카) 로비를 장식하고 있다. 팀보이드(teamVOID)는 송준봉(1980년생), 배재혁(1984년생), 석부영(1988년생)이 의기투합한 미디어 아티스트 그룹이다. 로봇과 기계를 다루는 기술이 탁월한 이들은 '주식시장을 위한 예술을 만들다'에서 실시간으로 변하는 증시 데이터를 로봇이 드로잉과 사운드로 바꾸어 작품을 구성했다.

동양철학을 전공하고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친 김형중(1988년생)이나 디지털 미디어·인터랙션 디자인을 전공한 박얼(1980년생), 카이스트 인터랙티브 미디어랩을 이끄는 1983~1992년생 4인방 홍상화·김현철·김성현·이병주도 기대주다.

문화 기술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 예술가들이 전면에 나오는 시대지만 이들이 쏟아내는 작품은 흥행과 다소 거리가 있다. 그러나 이미 실리콘밸리에서는 이런 팀들에 벤처형 투자가 활발하다. 아티스트가 대표가 되고, AI 전문가와 데이터 분석가를 구성원으로 하는 팀에 엔젤투자가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우리도 이 같은 흐름에 뒤처지고 있지 않은지 돌아볼 시점이다. 이런 8090 아티스트들이 결국 한국 문화예술계 주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