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현(32·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이 이겼다. 메이저리그 포스팅 진출 실패와 팔꿈치 인대 수술을 이겨내고, KBO 13년차 베테랑 투수라는 안정적 위치 대신 루키 신분으로 메이저리그 무대에 뛰어든 도전. 사상 초유 코로나 사태로 가족과 떨어져 홀로 견뎌낸 4개월여의 미국 생활. 마무리라는 낯선 보직에서 출발했다가 동료들의 집단 코로나 감염으로 인해 얻은 선발 기회. 그간 쌓인 응어리를 야구공 실밥에 칼날이 박힌 듯한 슬라이더로 승화시켜 메이저리그 첫 승을 쟁취했다.
◇"견디고 이기겠다"… 약속 지킨 김광현
김광현은 23일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부시스타디움에서 열린 신시내티 레즈와의 홈 경기에서 6이닝 동안 공 83개를 던져 3피안타 무사사구 3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이렇다 할 실점 위기 한 번 없는 완벽한 투구로 시즌 두 번째 선발 등판 만에 메이저리그 첫 승리를 해냈다. 평균자책점은 1.69로 낮아졌다.
김광현은 베테랑 포수 야디에르 몰리나(38)의 리드에 따라 갈고닦은 기량을 마음껏 펼쳤다. 직구·슬라이더·체인지업 등 여러 구종을 고루 구사하며 상대의 타이밍을 흔들었다. 직구는 시속 140㎞대에 머물렀지만 스트라이크존 구석구석을 파고들었다. 레즈 타순이 한 바퀴 돈 뒤부터는 이날 감이 좋았던 100㎞대 커브로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으며 볼 카운트를 유리하게 끌고 갔다. 자신의 전매특허인 슬라이더는 빨랐다가 느려졌다가 수시로 속도가 바뀌며 레즈 타선을 압도했다. 민훈기 SPOTV 해설위원은 "오른손 타자의 스트라이크존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백도어' 슬라이더가 특히 돋보였다"고 했다.
동료들도 그를 도왔다. 포수 몰리나는 노련한 리드로 김광현의 호투를 거들었고, 한·미 혼혈 내야수인 토머스 현수 에드먼(25)은 3회말 결승 2타점 적시타를 때렸다. 불펜진은 3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 팀의 3대0 승리를 지켰다.
김광현은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첫 승 소감을 말했다. 그는 "IMF 때 박찬호 선배와 박세리 선수가 그랬던 것처럼 코로나 확산으로 힘든 국민께 힘을 드리고 싶었다"며 "어렸을 때부터 꿈꿔온 마운드에 올라 승리까지 해서 기분이 좋다. 앞으로 풀 카운트 승부를 줄이도록 보완하겠다"고 했다. 지난 3월 "앞으로 다가올 더 큰 행복과 행운을 놓치지 않기 위해 힘들지만 참고 견디겠다"고 다짐했던 약속을 그는 지켰다.
민훈기 위원은 "레즈 타자들이 적극적으로 승부했고, 수비 도움도 받아 승운이 따랐다"며 "앞으로 상대가 본격적으로 김광현 분석에 나설 텐데, 수년간 '롱런'하려면 이를 이겨내야 한다"고 말했다.
◇배터리 호흡에 애먹은 류현진
류현진(33·토론토 블루제이스)은 같은 날 미국 플로리다주 세인트피터즈버그에서 열린 탬파베이 레이스와의 원정 경기에 선발 등판했지만 시즌 3승 달성엔 실패했다. 김광현과 반대로 포수와의 호흡이 삐걱거려 5이닝 3피안타 6탈삼진 1실점으로 승패 없이 경기를 마쳤다. 20대 신예 포수 리즈 맥과이어(24)는 류현진의 장점인 제구력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허둥댔다. 그의 어설픈 포구 실력 때문에 스트라이크존 경계를 핥듯이 들어오는 류현진의 날카로운 공이 볼 판정을 받았다. 2회말 류현진이 호세 마르티네스를 상대로 2스트라이크에서 던진 몸쪽 꽉 찬 공이 맥과이어의 포구 실수로 볼 판정을 받은 것이 대표적이다. 맥과이어는 4회말 손쉬운 뜬공도 놓쳤고, 5회초 1사 만루에선 3구 삼진으로 허무하게 물러났다. 블루제이스는 연장 10회에서 레이스에 끝내기 안타를 내줘 1대2로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