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이전 옛사람은 서로 편하게 어울릴 수 있는 나이 차이를 어찌 생각했을까요. 다산 정약용(1762~1836)이 서른네 살 때인 1796년 만든 시 모임 ‘죽란시사’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모임을 함께 주도한 동갑내기 채홍원이 "우리보다 아홉 살 많은 사람과 아홉 살 적은 사람 가운데서 나와 그대가 동의하는 사람을 골라 동인으로 삼도록 하세"라고 제안합니다. 다산은 반대합니다. "(그러면) 열여덟 살이나 차이가 나서 앉아 있다가도 나이 많은 이가 들어오면 일어나야 하니 너무 번거롭다." 다산은 "우리보다 네 살 많은 사람부터 네 살 적은 사람까지"로 15명을 모으고 말합니다. "이 열다섯 사람은 서로 비슷한 나이 또래"라고요. 다산의 생애는 정민 교수가 '파란'(천년의상상)에 자세히 썼습니다.
편하게 어울린다는 말이 함부로 대한다는 뜻은 아니지요. 옛 선비들은 서로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았습니다. 대신 성인 될 때 얻은 이름인 자(字)를 불렀지요. 더 나이 들면 자를 부르는 것도 어려워 서로 호(號)를 부릅니다. 다 존중하는 뜻이지요. 나이 많은 선배라도 "야, 약용아"가 아니라 "여보게, 다산" 하고 부르는 것이지요. 한두 살 차이까지 따지는 버릇은 근대 이후 동갑내기가 일제히 같은 학년이 되는 학교가 생긴 이후 일입니다.
엊그제 여야 의원이 언성 높이며 싸우다 급기야 “어린 것이 말이야” “동네 양아치” 같은 말이 나왔습니다. 두 의원은 각각 1962년 음력 11월과 1963년 1월생으로 같은 해 고교를 졸업한 사실상 동갑내기더군요. 나이 말고 수준으로 경쟁하시지요.